황선홍 FC서울 감독이 지난 7월 31일 오후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K리그 FC서울, 강원 전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황선홍 FC서울 감독이 지난 7월 31일 오후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K리그 FC서울, 강원 전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네덜란드 출신의 로널드 쿠만(현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도자로서 아약스·아인트호벤(이상 네덜란드)·사우스햄튼·에버튼(잉글랜드) 등 유럽 리그의 다양한 팀들을 이끌며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감독이다. 비록 감독으로서 초일류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준수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쿠만이지만 그의 지도자 인생을 통틀어 가장 논란이 되었던 시기가 바로 스페인 명문 발렌시아(스페인)을 맡았던 시절이다.

쿠만은 2007년 10월 발렌시아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쿠만의 지도자 인생은 '발렌시아를 맡았던 시절'과 '그 나머지'로 분류될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당시 쿠만은 부임하자마자 팀 개혁을 명분으로 구단의 간판이자 레전드로 꼽히던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다비드 알벨다, 미겔 앙헬 앙굴로 같은 선수들을 잇달아 방출하며 팬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쿠만은 이상한 전술과 선수 기용으로도 도마에 올랐는데, 팀의 좌우 날개를 담당했던 비센테 로드리게스와 호아킨 산체스의 포지션을 맞바꾸어 출전시키거나 심지어 호아킨을 원톱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작 공격수인 하비에르 아리스멘디는 윙백으로 투입하는 등 기형적인 '포지션 파괴'를 남발하며 스페인 현지에서도 뭇매를 맞았다. 라 리가 상위권의 전력으로 평가받던 발렌시아는 쿠만 감독 부임 이후 순식간에 강등권까지 추락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만은 자신의 잘못보다는 선수들의 기량과 정신자세를 비난하는 등 기행을 일삼다가 끝내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당했다.

훗날 잉글랜드 출신의 게리 네빌이 2015-16시즌 발렌시아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처참한 성적 끝에 경질되며 '제2의 쿠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네빌의 감독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고 쿠만처럼 주축 선수들을 한꺼번에 방출하거나 팀을 갈아엎는 수준의 기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쿠만 시절의 임팩트에는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다. 쿠만은 이후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무대를 거치며 지도자로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지만 발렌시아와 스페인 축구계에서는 그의 이름이 영원히 '금지어'처럼 인식되는 흑역사가 됐다.

최근 K리그에서는 웬지 '쿠만의 데자뷰'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이 있다. 바로 FC 서울의 황선홍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낸 서울은 올겨울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했다. '황선홍 축구'의 색깔에 맞춰 새 판짜기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데얀, 오스마르, 윤일록, 김치우 등 팀에 오랫동안 공헌한 선수들이 하나둘씩 서울을 떠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기존 서울 팬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팀 리빌딩 이어가는 FC서울, 팀 주축이던 데얀도 떠나고...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 수원 삼성 구자룡,이정수가 FC 서울 데얀과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7년 4월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 수원 삼성 구자룡,이정수가 FC 서울 데얀과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황선홍 감독은 2016시즌 중반부터 중국으로 떠난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서울의 지휘봉을 잡았다. 황 감독은 포항 시절 K리그와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등 좋은 성과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서울에서도 비록 전북의 매수 파문으로 인한 승점 삭감이라는 행운이 있기는 했지만 부임 첫해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성공신화를 이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2017시즌은 황 감독에게나 서울에게나 최악의 한 해였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군입대, 이적 공백 속에 전력보강에 실패하며 서울은 지난 시즌을 5위로 마감했고 2018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마저 놓쳤다. 구단의 지원이 부족했던 것도 원인이지만 황감독 역시 선수기용이나 전술에서 아쉬운 모습을 반복하며 의문부호를 드러냈다.

황 감독은 지난 시즌 이후 느려지고 노쇠화된 스쿼드에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물론 주세종과 이명주처럼 군에 입대하거나, 팀 사정상 정리가 불가피한 노장들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안에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던 상징적인 선수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황 감독은 포항 시절처럼 중원을 중심으로 빠른 축구를 선호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 것이 바로 데얀이었다. 골 결정력은 여전하지만 노장으로서 수비가담과 활동량에 약점이 있는 데얀은 황선홍 감독의 다음 시즌 전력구상에서 배제됐다. 서울은 데얀에게 은퇴식을 제의했지만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던 데얀은 이를 거절하고 이적을 선택했다.

문제는 데얀이 하필 리그 내 최고 라이벌팀인 수원으로 이적했다는 점이다. 데얀은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 최다득점자이자 2000년대 후반 이후 K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급 공격수였다. 서울 팬들이 받은 충격과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음 시즌 데얀이 소속된 수원과의 슈퍼매치가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일부 팬들은 비록 외국인 선수이지만 구단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간판스타를 하루아침에 라이벌팀으로 이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 황선홍 감독과 서울 구단에 더 큰 불만을 나타냈다. 또한 데얀은 리빌딩이라는 이유로 팽하면서도, 정작 데얀보다 개인성적이나 팀 기여도에서 상대적으로 뒤졌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유리몸 기질을 보이는 박주영과는 재계약하며 '모순되는 행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J리그로 떠난 오스마르(임대)나 윤일록의 공백도 가볍지 않다. 물론 이 선수들은 본인의 이적 의지도 강했던 이유도 있지만, 어차피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들이다 보니 잔류보다 이적이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황 감독이 부임한 이후 공교롭게도 하필 팀 내에서 수년간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선수들이 잇달아 떠나고 황 감독이 데려온 이적생들이 빈 자리를 차지하는 모양새가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기존 선수들이 팀 내에서 차지하던 비중을 감안할 때 과연 대체가능할 만한 카드가 있는지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다.

FC서울 황선홍 감독 향한 평가, 올 시즌 성적에 달렸다

 10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6차전 FC서울과 우라와 레즈의 경기. 서울 윤승원이 선제골을 넣고 동료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10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6차전 FC서울과 우라와 레즈의 경기. 서울 윤승원이 선제골을 넣고 동료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선홍 감독은 데얀과 오스마르가 빠진 외국인 엔트리의 빈 자리를 스피드와 몸싸움 능력을 갖춘 공격수 듀오인 에반드로-안델손을 영입하는 것으로 메웠다. 두 선수 모두 이름값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득점력도 갖춰서 전술적으로 활용도가 더 다양하다.

또한 서울은 올시즌 미드필드진 보강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새로 합류한 신진호, 김성준, 정현철과 함께 기존 하대성, 송진형, 이석현, 김원식, 황기욱에 이르기까지 K리그에서 양적으로는 가장 풍부한 미드필더진을 구축했다고 할 만하다. 올시즌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려는 축구의 방향을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올시즌 황 감독이 초반부터 성적으로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한다면 겨울 이적시장의 행보는 상당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여지가 커 보인다. 이미 지난 시즌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며 황선홍 감독의 리더십에 실망감을 드러낸 팬들이 적지 않다. 서울 팬들의 여론은 황감독을 지지하는 여론과 비판하는 여론으로 갈라져 있다.

분명한 사실은 올시즌의 서울은 전임 감독 시절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황선홍의 서울'이라는 점이다. 올시즌 어떤 성과가 나오든 변명의 여지는 없다. 2018시즌에 어떤 결과를 맞이하느냐에 따라 포항 시절 '황선대원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도, 혹은 'K리그판 쿠만'으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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