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 포스터

소년심판 포스터 ⓒ 넷플릭스


답은 알고 있지만 현실적 상황이나 장벽에 부딪혀 실천이 쉽지 않은 일들이 종종 있다. 도무지 답을 알 길 없는 문제나 쉬운 문제라면 좀 덜하겠지만 전자의 경우처럼 속이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만 14세 미만에 해당하는 촉법소년 처벌 문제도 그럴 것이다. 신체적·사회적 성장이 과거와 달리 한층 빨라졌음에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소년을 교화할 시기를 놓치거나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법이 이를 잘 못 따라간다는 지적이 수십 년째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은 그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배우 김혜수가 연화지방법원 내 소년형사합의부로 발령 온 심은석 판사를, 김무열이 후배이자 같은 부에 소속한 차태주 판사를, 이성민과 이정은이 각각 강원중, 나근희 부장판사를 연기했다.

소년범 혐오하는 진짜 이유

드라마는 총 10회의 분량 중 약 2회씩 독자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1화부터 강렬하다. 소년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촉발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 일부가 촉법소년이라는 사실에 반성보단 법망을 피할 계획이 있음을 간파한 심 판사가 강하게 이들을 압박하고 탐문 등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결국 납득할만한 결과를 끌어낸다.

미성년자 폭행치상 및 치사, 집단 성폭행, 사학 비리 등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대부분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과 연관된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판사들의 판결 과정, 고뇌를 상세하게 다룸으로써 우리나라 소년법과 형법이 지닌 한계와 현실적 고민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일각에선 드라마를 위해 범죄 묘사 및 캐릭터들이 소모적으로 쓰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여러 넷플릭스 드라마에 적용됐던 폭력성 문제 또한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상 비평 정도로 보인다.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어떤 극적 갈등이나 캐릭터성 확보를 위한 게 아닌 법조인과 일반인,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각종 권력관계의 민낯을 드러내기 위한 구조적 장치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야기의 층위를 따지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5년 전 개인적 아픔을 겪은 심은석이라는 캐릭터가 소년범을 대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 피고인 혹은 피해자가 된 청소년 및 아동의 사연, 그리고 부장 판사를 위시한 연화지방법원이라는 조직 시스템 등이다.

심은석 판사는 1화부터 "저는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말을 꺼낼 정도로 소년 범죄에 강경한 자세를 취한다. 곧이곧대로 혐오라는 단어에 천착하기 쉽기에 논란이 일 수는 있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그 혐오는 '범죄', 그리고 그것이 범죄임을 알고도 행하는 소년들 태도에 방점이 찍혀 있지, 소년 그 자체를 향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소년범과 그 피해자들은 저마다 사연과 이유가 있다. 범죄의 질이 나쁠수록, 그 방법이 잔인할수록 사람들은 공분하기 마련이고, 손가락질은 소년들과 법원에 향하기 십상이다. 드라마는 애써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심은석은 자신이 혐오한다던 소년범에 대한 의심이 확증이 될 때까지 파고들다가 몇 번이고 조직 내외부의 압박을 이겨내야 했다. 나름 청렴했고 강성으로 분류됐던 강원중 판사는 결국 자신의 아들 문제로 법복을 벗어야 했다.

이야기의 주요 골격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강 판사에게 접근해 국회 입성을 종용한 정치 세력은 곧 사법부와 입법부, 나아가 행정부 등 주요 권력 기관의 유착 가능성을 암시한다. 물론 강 판사는 자신의 오랜 염원이던 소년법 개정 연구의 결실을 맺기 위해 국회 입성을 선택했지만, 단 한 번의 타협으로 22년간 쌓았던 명성을 날리게 된다.

책임의 보편성
 
'소년심판' 가족극으로 접근 김무열, 김혜수, 이정은, 이성민 배우가 22일 오전 비대면으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가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범죄와 그들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5일 공개.

▲ '소년심판' 가족극으로 접근 김무열, 김혜수, 이정은, 이성민 배우가 22일 오전 비대면으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가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범죄와 그들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5일 공개. ⓒ 넷플릭스


강원중 판사를 포함해, 여러 범죄에 노출된 소년범들을 향해, 그리고 막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심 판사를 말리는 차 판사를 향해 심은석은 말한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다음이 중요하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고. 또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고.

이는 아마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와 제작진들이 건네고 싶은 말일 것이다. 드라마의 골격이 탄탄하고 재미가 쌓임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켠이 그에 비례해 무거워진다. 이는 아마 <소년심판>이 바라보고 있는 시각이 허구나 허상이 아닌 우리 현실에 정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마치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드라마 속 이런 대사들에 누군가는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라며 몸부림치는 한 소년범과 이들의 가족의 말, 그리고 소년재판은 원래 속도전이라며 사안의 경중을 따지기보단 밀려드는 업무 처리의 효율성을 강조하던 나근희 판사의 "제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드린다. 미안합니다. 어른으로서"라는 등 대사의 울림이 크다.

아울러 제작진의 꼼꼼한 취재와 준비가 엿보인다.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게 된 김민석 작가는 약 4년에 걸친 취재의 결과물로 지금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 사법부와 범죄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배우나 제작진이 전면에 나서기 쉽지 않았을 텐데 김혜수, 이성민, 이정은 배우를 비롯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한 기성 배우들이 모였다. 문화 콘텐츠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유희나 오락적 쾌감만을 위한 게 아닌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 데에도 있다고 한다면, 이 배우들은 기꺼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냈다고 할 수 있다.

분노나 혐오의 감정에 오염된 소모적 논쟁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안고 갈 만한 고민을 던졌다는 점만으로도 <소년심판>의 존재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소년심판 넷플릭스 김혜수 이성민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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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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