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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상여시위에 참여한 문정현 신부
 월성원전 상여시위에 참여한 문정현 신부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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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봄바람 순례길 7일째입니다. 대구에서 새벽같이 서둘러 월성 원자력발전소로 떠났습니다. 동해바다의 거센 파도를 바라보며 제주에서, 가덕도에서, 부산에서, 울산에서, 경산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밟힙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나지만 그들은 외롭게 현장을 지키며 하루하루 살아갈 것입니다.

월성원전 앞 천막 농성장 주민들이 순례단을 기다리며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도착하자마자 주민들과 함께 월성 원자력발전소 입구까지 상여시위를 하였습니다.  2766. 원전 근처 나아리, 나산리 주민들이 싸워온 날입니다. 원전이 세워진 후 40년 동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억울한 사연들은 단순히 숫자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바라는 소망은 단 한 가지입니다. 원전이 있는 마을에서 피폭으로 더 이상 병에 걸릴 수 없으니 이주대책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2020년 한수원의 당기 순이익은 6179억 원입니다. 아침 상여시위 때 힘겹게 관을 끌고 가던 암투병 중인 한 여성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월성원전 천막농성 앞 단체사진
 월성원전 천막농성 앞 단체사진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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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제물로 바친 거 아닙니까. 나는 갑상선암에 걸렸습니다. 우리 아들과 딸도 갑상선암으로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집이 핵발전소에서 3킬로 떨어져 있는데 지붕 위로 8개의 고압선이 지나갑니다. 전기를 만든다고 사람을 제물로 쓰면 되겠습니까."(오순자)

주민들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사고 이전까지 믿어왔던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편하게 전기를 쓰고 있지만 원전 인근 주민들의 공포스런 하루하루입니다. 누군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하였지만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타고 오는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한 주민의 절절한 마음을 길동무들에게 전합니다.

"빛이 없는 캄캄한 터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 몸에 방사능이 있는데. 우리 손자가 다섯 살에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나왔어요. 그 손자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 됐는데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습니다. 우리도 사람인데 사람 취급을 안 합니다. 하루종일이라도 말할 수 있어요. 너무 갑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황분희)
     
콜센터 여성 노동자의 눈물
 
한국장학재단 로비에서 농성하는 여성 조합원
 한국장학재단 로비에서 농성하는 여성 조합원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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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대구로 돌아와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민간위탁폐지 정규직 전환 기자회견에 참여하였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은 국가 장학 기금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으로 콜센터는 학생들에게 학자금 대출, 상환 등을 상담하는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콜센터 여성 조합원들은 건물 로비 안에서 바깥이 보이는 유리창문에서 순례단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이동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재단 측은 용역직원과 관리자를 동원하여 여성조합원들의 바깥출입을 통제하였습니다. 농성하던 한 여성조합원은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왔지만 다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한국장학재단 로비 농성장 방문
 한국장학재단 로비 농성장 방문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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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측은 정상적인 노조활동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어렵게 로비에 있는 농성장에 들어갔습니다. 24시간 농성장을 감시당하는 두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문정현 신부님에게 기대어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연대의 손길만이 그들을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용역과 관리자들에게 둘러싸여 또 하루를 견딥니다. 

"저희는 너무 애가 타고 더 이상 어떻게 할지 몰라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저 높은 분들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하루 파업하면 7만 원을 못 벌어요. 그게 없으면 당장 집값, 애들 학원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는데. 그거 포기하고 점거 농성을 하는 거예요. 근데 이사장은 시장 가서 과자 먹고 맛있다고 SNS에 올리더라고요."
 
경산시청 앞 투쟁사업장 연대문화제
 경산시청 앞 투쟁사업장 연대문화제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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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만난 대구지역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민주노총 경북본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연대회의가 경산시청에서 열렸습니다. 택시분회, 경산환경지회,수도검침원 분회, 판매연대 등 대구 경북지역의 노동자들이 연대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모였습니다. 어느 권력에서도 노동자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AIG 어드바이저 관리자 규탄 기자회견
 AIG 어드바이저 관리자 규탄 기자회견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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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봄바람 순례 8일차입니다. 아침부터 대구 범어동 네거리에 모였습니다. AIG 보험설계사들에 대한 관리자의 갑질과 부당노동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하고 성추행, 폭언 이런 일들이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적으로 벌어졌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순례단은 보험설계사분들과 대구 시내 거리행진을 하였습니다.

이날 오후, 경북대 서문 인근에 있는 공사가 중지된 이슬람 사원을 찾아갔습니다. 경북대에는 150여 명의 다양한 국적의 무슬림 유학생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공대에서 석사, 박사, 연구원으로서 학업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무슬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여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지난 7년간 무슬림 학생들은 동네에서 평화롭게 같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사현장을 막았습니다. 법원은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공사현장 앞에 천막을 치고 공사를 못하게 합니다.
 
경북대근처 이슬람 사원 건립관련 혐오와 차별에 대한 간담회
 경북대근처 이슬람 사원 건립관련 혐오와 차별에 대한 간담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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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무슬림 사원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는 혐오의 말을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무슬림 자녀들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골목을 지나 매일 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경북대학교 교수님들과 무슬림 학생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무슬림 학생이 말했습니다.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고 한국에 와서 사람들과도 잘 지내와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지금은 종교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모든 한국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죠. 일부가 그렇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우주를 연구하고 자율주행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온 무슬림 친구들이 차별에 맞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평등길 1110, 대구여성노동자회 상영회
 평등길 1110, 대구여성노동자회 상영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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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를 마치고 대구 여성노동자회에서 '평등길 1110' 공동체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을 도보하며 차별받는 사람들의 묻혀진 목소리를 담은 다큐였습니다.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봄바람입니다.

이틀간 대구·경산 지역을 돌아보며 우리는 심각한 '차별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거대한 핵발전소의 그늘에서 피폭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노동권을 잃고 저항하는 사람들, 종교와 인종차별에 절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차별의 피해자입니다.

태그:#봄바람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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