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던 1994년 데뷔한 배우 김소연은 1998년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오지명 원장의 셋째 딸 오소연 역을 맡았다. 오소연은 의대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레지던트 과정에서 중퇴하는 바람에 전문의가 되지 못한 채 아버지의 병원에서 일하는 캐릭터였다. <순풍산부인과>에서 오소연의 캐릭터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김소연이 당시 고3이었음을 고려하면 본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캐릭터를 소화한 셈이다.

반대로 지난 1월에 공개돼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성인 연기자들이 대거 고등학생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현주 역의 정이서가 1993년생, 이나연 역의 이유미와 양대수 역의 임재혁, 오준영 역의 안승균이 1994년생, 장하리 역의 하승리가 1995년생으로 많은 배우들이 20대 후반의 나이에 자신보다 10살 정도 어린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처럼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따라 실제 나이보다 한참 높은 나이를 연기할 때도 있고 훨씬 어린 캐릭터를 맡을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이 배우는 촬영 당시 실제 자신이 맡았던 캐릭터 남온조처럼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고 이 때문에 캐릭터에 더욱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오는 3일 첫 방송되는 tvN 주말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약관의 배우 박지후가 그 주인공이다.

첫 주연작으로 독립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박지후는 독립영화 <벌새>의 은희 역으로 일약 영화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박지후는 독립영화 <벌새>의 은희 역으로 일약 영화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 (주)엣나인필름

 
200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하던 박지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2016년 엄태화 감독(배우 엄태구의 친형)이 연출한 <가려진 시간>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2017년 웹드라마 <사춘기 여동생[공감]>에 출연한 박지후는 2018년 XtvN에서 방송된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복수노트2>에서 <옥자>의 안서현, <왔다!장보리>의 김지영 같은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2018년까지만 해도 흔한 청소년 배우 중 한 명이었던 박지후는 2019년 단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연예계 전체가 주목하는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2019년 김보라 감독이 연출한 독립영화 <벌새>였다.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났던 1994년을 배경으로 은희라는 소녀가 겪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벌새>는 3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 전국 14만이라는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를 연기한 박지후는 국내외 5개의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2010년대 후반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또한 박지후는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인 '돌꽃영화상'에서 신인상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벌새>를 촬영했던 2017년은 박지후가 고작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음을 고려하면 어린 나이에 상당히 눈부신 연기를 보여줬던 셈이다.

박지후는 <벌새> 개봉을 앞두고 2019년 4월 JTBC 금토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 출연했다. 박지후는 이야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정다희 캐릭터를 잘 소화했지만 <아름다운 세상>은 최고 시청률 5.8%로 높은 완성도와 시청자들의 좋은 평가에도 기대만큼 높은 화제를 몰고 오지 못했다. 박지후 역시 정다희가 조연 캐릭터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박지후라는 배우를 알리기엔 조금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박지후는 연기 잘하는 청소년배우로 업계(?)에 소문은 자자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배우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2020년, 박지후는 드라마 <다모>와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완벽한 타인> 등을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촬영 후 1년 가까운 후반작업을 거친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되자마자 박지후의 인지도는 무섭게 상승했다.

'좀비 액션' 이어 미스터리 드라마 주연으로
 
 박지후가 연기한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온조는 '생존'과 '멜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박지후가 연기한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온조는 '생존'과 '멜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 넷플릭스 화면 캡처


박지후가 연기한 캐릭터 남온조는 학업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교우관계가 좋은 밝고 사랑스런 학생이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10대 소녀답게 자신의 머리를 왼쪽으로 넘기는 게 예쁜지, 오른쪽으로 넘기는 게 예쁜지 절친 청산(윤찬영 분)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남학생 수혁(로몬 분)에게 명찰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한다. 학교에 무서운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좀비사태가 터지면서 온조는 본격적으로 히로인으로서의 활약을 시작했다. 온조는 소방관의 딸답게 친구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고립된 곳에서 오래 버티려면 우선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며 야전화장실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반장인 남라(조이현 분) 역시 "네가 반장했어야 했는데"라며 온조의 리더십을 칭찬하기도 했다. 박지후는 좀비사태를 겪으며 성장하는 남온조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이후 3만이었던 SNS 팔로워 수가 무려 400만 명으로 급증한 박지후는 올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며 대학생이 됐고 3일 첫 방송되는 <작은 아씨들>을 차기작으로 결정했다. 짧은 웹드라마가 아닌 12부작 케이블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것은 데뷔 후 처음이다. <작은 아씨들>에서 박지후는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사립예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 자매의 막내 오인혜를 연기할 예정이다. 

<작은 아씨들>에는 박지후 외에도 <유미의 세포들2>를 끝낸 김고은이 건설회사의 경리로 일하는 첫째 오인주, <백일의 낭군님>으로 유명한 남지현이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활동하는 둘째 오인경 역을 맡았다. 이 밖에도 김미숙과 엄기준, 엄지원, 위하준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작은 아씨들>을 빛낼 예정이다. <작은 아씨들>의 각본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정서경 작가가 집필한다.

박지후는 2021년 2월 <지금 우리 학교는> 촬영을 끝내고 데뷔작 <가려진 시간>을 만든 엄태화 감독의 신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합류해 이병헌과 박서준, 박보영 같은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작년 8월까지 촬영을 마쳤다. 박지후는 OTT 드라마와 케이블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현재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연예계가 스무 살을 갓 넘은 2003년생 젊은 배우 박지후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박지후는 tvN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김고은,남지현과 세 자매로 출연한다.

박지후는 tvN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김고은,남지현과 세 자매로 출연한다. ⓒ <작은 아씨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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