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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거참 이상하네."

남편이 체중계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왜 그러냐 물으니 요즘 평소보다 덜 먹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체중이 줄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는 짐작이 가는 이유가 있었다.

"먹는 것도 중요한데, 너무 안 움직여서 그런 거 아니야? 당신 항상 밥 먹고 나면 앉아있거나 누워있잖아."

회사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한 무리가 되어 다들 구내식당으로 향하곤 했다. 식사 후 그 무리는 다시 세 개의 무리로 나뉘었다. 밥 먹고 자리에서 눈 붙이는 사람들, 회사 건물 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회사 밖을 나서는 사람들로.

남편은 대개 첫 번째 무리였고, 나는 세 번째 무리였다. 특별한 곳에 가는 건 아니었다. 회사 밖 카페로 향하거나, 회사 주변을 걸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콧바람을 쐬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누울까 말까 고민될 때

최근 휴직 후 집에서 점심을 먹게 되면서 행복한 시간이 생겼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개수대에 넣어둔다. 먹자마자 바로 설거지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몸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바닥에 쿠션을 베고 털썩 눕는다. 문득 '밥 먹고 누우면 소가 된다'는 말이 생각나지만, 나는 잠깐 누울 거라고 합리화한다. 창문을 통해 따뜻한 햇볕이 내리쬔다. 햇살을 자장가 삼아 눈을 붙인다. 이만큼 달콤한 순간이 없다.

얼마 전, 바지 지퍼를 올리다가 깜짝 놀랐다. 전보다 배가 볼록 나와 있었다. 체중이 조금 늘긴 했는데, 그게 다 배로 갈 줄이야. 이게 바로 나잇살인가. 남편을 붙잡고서 '그렇게 많이 먹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렇게 배가 나왔을까?'라고 푸념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당신도 너무 안 움직여서 그런 거 아니야?"

남편의 말에 아니라고 대꾸했지만 뜨끔했던 게 사실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고 자리에 누우려다가 멈칫했다. 내가 했던 말이자,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너무 안 움직이긴 했지. 창밖을 보니 날씨가 화창했다. 낮잠 자기 딱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동시에 걷기에도 좋은 날씨이기도 했다.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좀 걷다 올까? 그냥 누울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났다. '일단 나가자. 커피 사러 간다는 생각으로 잠깐 나갔다 오자.'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이어폰을 귀에 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산책길을 걸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산책길을 걸었다.
ⓒ 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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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서는 것까지는 무척 힘들었지만, 막상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하니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흘러나오는 노래 박자에 맞춰 씩씩하게 걸었다. 집 안에서 바라보는 날씨보다, 직접 맞이하는 날씨가 훨씬 좋았다. 바람은 선선했고, 하늘은 파랬다.

목표 지점을 좀 더 먼 곳으로 바꾸었다. 집 앞 카페가 아니라 건너편 공원으로. 좀 걸었더니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이를 말려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시간에도 의외로 걷는 분들이 꽤 보였다. 모자를 쓰고 물병을 하나씩 들고서.

조심스레 사람들이 걷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길이 걷기 좋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가끔 오는 공원이었는데 이런 길이 있는 줄은 몰랐다. 걸으며 보이는 풍경이 꽤 근사했다. 초록색이었던 나뭇잎들은 가을이 되었다며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고, 이름 모를 꽃들은 자기들도 있다는 걸 알리듯 옹기종기 피어 눈길을 끌었다.

걷기 딱 좋은 가을이잖아요
 
파랗고 쨍한 하늘은 가을의 대명사다.
 파랗고 쨍한 하늘은 가을의 대명사다.
ⓒ 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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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 생각은 예전 추억이기도 하고, 현재 고민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기도 했다. 산책로는 어느새 생각의 장으로 변했다. 하늘에는 구름 대신에 내 상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따금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면, 목욕탕에서 소리치던 아르키메데스처럼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갑자기 손목에서 진동이 울렸다.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가 오늘의 목표 걸음 수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고작 30여 분 걸었을 뿐인데. 평소에 얼마나 걷지 않았던 것인지. 그래도 반성보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점심 후 낮잠이 달콤하다면, 산책은 유쾌하고 상쾌했다. 앞으로는 점심 먹고 산책하겠노라 결심했다. 더불어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들도 다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가족들도 오늘 발견한 산책로를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아, 잊지 말고 모자와 물통도 챙겨야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연 오늘의 걷기가 도움이 되었는지 되돌아봤다. 배에 붙은 살이 1g은 덜어지려나? 하지만 살이 빠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나를 붙들던 복잡한 생각들이 덜어졌으니까.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덜해진 만큼 더해진 것도 있다. 힘찬 발걸음, 시원한 공기 그리고 알록달록한 가을 풍경을 얻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한다. 빛을 통해서 영양소를 만들어낸다. 종종 사람들도 광합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함을 털어내고 밝은 에너지를 만드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점심 식사 후, 짬을 내서 걸어보면 어떨까?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비타민 D도 충분한 햇빛을 쐬면 생성된다고 하지 않는가. 잠깐의 산책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걷는 그 시간을 음미하시기를.

2022년의 가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점심시간의 산책을 통해 건강과 활기, 가을 정취를 누려보자.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점심시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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