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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자본 친화적이고 노동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또 다른 한편으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 신자유주의가 본격 도래한 지난 수십 년, 모험·벤처·투자는 칭찬받는 가치로 규정되었고, 기업가 정신은 더욱 추앙받았다. 국경도, 자본과 노동의 이동도, 고용 형태도 유연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불안정'을 높이는 체계였다.

이 '불안정'에는 점점 커가는 부의 양극화, 노동보호 정책의 폐기, 사회복지 약화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이 핵심이었다. 이 체계는 또한 다양한 분야의 안전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했다. 강력한 환경 및 노동 규제를 포기하고, 기업과 투자에 대한 국가나 사회의 개입 수단이 약화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교리 아래서,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세월호 침몰, 연 2천여 명의 노동자 산재 사망을 겪어왔다.

많은 사람이 신자유주의 시대 통제력 상실과 불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에, 201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국경과 안전과 보호를 강조하는 포퓰리즘이 득세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래서일까? 윤석열 정부도 유난히 법치주의, 안전을 강조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법치주의가 한국에서도 20년 넘게 우리의 일상을 좀먹은 불안전과 불안정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김영삼 정권 후기로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양상은 조금씩 달라졌을지 몰라도 모든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핵심 정책으로 공유해왔고 이는 늘 법으로 정당화되었다. 국가가 최소한만 역할 해야 한다던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을 안정화하고 우리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데에 국가는 힘써 '법치'를 활용해왔다. 윤석열의 법치가 우리에게 안전을 가져다주지 못할 이유이고, 윤석열 정부의 법치주의를 비판할 때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만으로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영계와 헌법 해석이 같아요 : 중대재해처벌법 약화 시도

법치를 강조하면서 사실은 자본의 안정을 지키려는 윤석열 정부에게 있어 최적의 먹잇감이 '중대재해처벌법'인 것 같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만에, 정부와 여당은 처벌보다 예방 위주로 가야 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다. 법무부가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가 12월 말 나왔는데, 가천대 산학협력단에서 수행한 이 보고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여 지금보다 더 명백하고 중대한,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보건 의무 위반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무부는 쌍수를 들어 보고서를 환영했다. 이미 2022년 8월 일찍이 주무 부처도 아닌 기재부에서 노동부에,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폭과 수위를 크게 낮춰야 한다는 개정 관련 의견을 전달한 바 있으니 이미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모호하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 보고서의 의견은, 현재 이 법을 위헌법률 심판 신청한 두성산업의 논리와도 같다. 화학물질을 전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16명의 노동자에게 독성 간염이 발생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최초로 기소된 바로 그 두성산업이다. 창원 두성산업은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대형 로펌을 등에 업고 법률 조항이 불명확하며, 처벌이 과하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지지하는 많은 법률가는 이 법은 그동안 계속돼 온 노동재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이며, 안전 문제 예방과 대응 체계를 수립 관리하는 것이 기업경영에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역시 과도하지 않다고 본다.1) 특히 2022년 한 해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건수는 단 11건이고 아직 처벌은 시행되지조차 않았다는 점에서, '강력한 처벌에도 산재 예방에 효과가 없다'라는 정부의 주장은 현실을 왜곡하는 선동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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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법치 :소규모 사업장 장시간 노동 용인

윤석열 정부의 법치가 선택적이라는 점은 소규모 사업장의 장시간 노동을 용인하겠다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2018년부터 주 12시간 연장근로 상한이 시행되고 있지만, 30인 미만 사업장만 여기에 더해 주당 8시간까지 추가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경제적 충격을 줄이고 충분한 준비 기간을 주겠다는 명분이었고, 이 특례는 2022년으로 마무리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2022년 12월 20일 기재부 장관, 노동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나서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 말까지로 예정돼 있던 30명 미만 영세 사업장의 8시간 추가연장 근로제를 연장하자고 '호소'했다.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과로가 발생하지 않기라도 한단 말인가?

더 심각한 사태는, 국회가 2022년 연말에 열리지 못해 추가연장 근로제가 일몰된 뒤에 벌어졌다. 2023년부터 3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을 지켜야 하자, 노동부가 나서서 '52시간을 넘더라도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두겠다'라고 한 것이다. 정부가 근로기준법상의 강행규정을 스스로 어기며 불법을 조장하는 행태다.

노동부 장관은 소규모 사업장의 인력난을 염려해서라고 말했지만, 이런 조치가 '중소기업 기피'를 넘어 '중소기업 혐오증'까지 불러일으킨다는 지적까지 나온다.2) '중소기업 만성적 인력난은 청년들의 노동 기피가 아니라 기업의 부실한 보상' 때문이라는 청년 노동자의 지적은, 소규모 사업장과 관련된 근본적인 경제적 대안 없이 노동자 쥐어짜기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정책의 폐부를 찌른다.

안전 뒷전으로 하라는 공공기관 혁신

정부가 추진한다는 공공기관 개혁 역시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크다. 공공기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하거나 인력을 줄이려는 시도 역시 이전 정부들로부터 지속돼왔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 이후로 겉으로나마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안전 인력이나 예산, 절차 등을 강화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재무 효율성과 생산성 강화를 핵심으로 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고, 370개 공공기관이 이에 따른 혁신계획안을 제출했다. 공공운수노조가 기관별 혁신계획안을 전수조사한 결과, 종전의 기능을 폐지·축소·이관하는 계획을 제출한 기관이 235개에 달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관에서 줄어드는 정원 규모는 6949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의 규모를 줄이겠다고 밝힌 기관도 적지 않다.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와 같은 재해를 예방하는 업무를 맡은 지역난방 안전에 대해서는 열수송관 설비의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정원을 175명에서 141명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의 검사 주기를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정기 검사를 축소해 35명의 정원을 감축하는 식이다.

이런 '혁신'은 당연히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안전을 위협한다.3)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 수립된 공공기관 안전 강화 종합대책(2019.3)에 따라 이미 주요 업무를 2인 1조로 운영하라 지시한 바 있으나 인력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실제로는 거의 그렇게 운영되지 않았다. 보안경비 분야의 경우 2001년부터 2013년까지 2인 1조로 근무하던 업무 중 일부가 경비구역 증가로 인해 오히려 1인 1조로 근무하게 되거나 야간 순찰도 1인 1조로 진행하고 있어, 유사시 옆 순찰 구역에서 지원인력이 도착하거나 기동타격대가 도착할 때까지 초동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인력 부족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함께 위협하는 것이다.4)

정치의 기반을 허무는 노동개혁

중대재해처벌법을 약화하고, 800만 명이 넘는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과로를 용인하고, 재벌 유통사의 이해관계를 위해 중소상인과 마트 노동자를 위협하고,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노동자는 물론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윤석열식 노동개혁과 법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이다.

윤석열식 안전은 실질적인 사회의 생존과 재생산을 보장하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 보전하려는' 치안 강조일 뿐이다. 정치의 최소조건은 사회의 생존과 재생산을 보장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혁은 정치의 발밑을 허물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1)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 전문가 네트워크,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두성산업 사건 재판부에 대한 위헌 심판제청 기각 탄원 기자회견, 2023.1.16
2) 이기범 기자, 8시간 연장 근로 '부활' 추진에 중소기업'기피' 심화되나, CBS 노컷뉴스, 2023.1.24
3) 이효상 기자, '공공기관 혁신'이라 쓰고 '안전인력 감축'이라 읽는다, 경향신문, 2022.12.3
4) 인력부족으로 위협받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사례발표 및 건강권 단체 제언 기자간담회, 2022.11.21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동_개혁, #공공기관, #중대재해처벌법,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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