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 JTBC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이기심과 자기 합리화는 사라지지 않는 본성과 같은 것일까. 2월 14일 방송된 JTBC 법정 예능 토크쇼 <안방판사>에서는 헤어숍 직원의 횡령사건과 학교폭력 등을 주제로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이날의 첫 번째 소송은 헤어숍에 벌어진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공방이었다. 같은 헤어숍에서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 겸 관리자 모준수씨는 직원인 임수민 씨를 고발했다. 고소인인 준수씨는 피고소인 수민씨가 관리자의 허락없이 헤어숍 비품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개인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빈번하다고 폭로했다.
 
두 사람이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일상이 공개됐다. 수민씨는 손님들을 위한 테스트 명목으로 헤어숍 비품을 본인이 먼저 사용하거나 쓰다 남은 물건들을 가져가기도 했다. 간식 구입 용도로 받은 준수씨의 카드로 편의점에서 개인물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준수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단은 가벼운 주의만 주고 넘어갔다. 준수씨가 굳이 개인카드까지 주면서 배려한 이유는 본인 역시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어본 경험이 있는 데다, 수민씨가 첫 제자였기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민씨가 이번엔 점심식사를 위하여 받은 준수씨의 개인카드로 비싼 소고기를 먹으며 무려 10만 원이 넘는 비용을 결제하자 준수씨의 인내심도 폭발했다. 영수증을 확인한 준수씨는 결국 수민씨를 따로 불러내 "이렇게 쓰고 오잖아? 그러면 약오른다니까 너한테"라고 분노를 드러내며 "내가 치사하게 돈 가지고 뭐라 해야 해? 일 잘하면 뭐하냐, 내 돈 다 갖다 쓰는데, 내가 지금 딸 키우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호의가 권리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도 모두 안타까워했다.
 
준수씨는 처음에는 수민씨의 사정을 고려하여 비품을 가져가는 것도 어느 정도 묵인해줬으나, 최근 들어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준수씨의 카드로 나간 수민 씨의 식대는 한 달에 많으면 30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이른 적도 있다고 밝히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변호인단은 이 사건에서 '절도-횡령-배임'의 개념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횡령은 본인이 관리하고 있는 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차지하는 것, 절도는 타인이 관리하는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것. 배임은 업무상 임무를 저버리고 불법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고소인 측은 개인 용도 사용을 근거로 직원의 횡령-배임 주장을, 피고소인 측은 형법상 정당행위 개념을 근거로 사회통념상 받아들여지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각기 변론전략으로 내세웠다.
 
고소인 변호인단 측은 수민씨가 "손님을 위하여 준비된 비품을, 직원이 업무상 임무를 저버린 채 횡령한 것이므로 가중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피고소인측은 조선시대 기미상궁에 비유하며 염색약을 본인이 직접 사전테스트한 것도 업무의 일환이라고 반론했다.
 
하지만 고소인 측은 "피고소인은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비품을 사용한 것이 문제다. 기미상궁이 밥을 다 먹어버린 격"이라며 재반박했다. 또한 업무 수행 비용을 충당하라며 준 카드로 통상적인 식대 범위를 넘어선 비용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 역시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소인측은 장발장(레미제라블)의 사례와 비유하며, 수민씨의 행위가 사회 상규(사회 통념에 비추어 용납될수 있는 행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있기에 위법성이 소멸된다고 해석했다. 또한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수민씨의 재정난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사회 통념에 비추어볼 때 현저히 '부족한 급여'에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복지개념으로 지급된 카드를 사용한 것은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소인 측은 사회적 용인 가능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고, 수민씨가 준수 씨의 카드로 지출한 월 평균 300만~500만 원의 지출을 1년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4800만 원에 육박하고, 이는 수민씨가 월급으로 받는 최저임금(2400만 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라고 꼬집었다.
 
다만 사용금액의 많고 적음은 죄의 성립 여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실제 2011년 버스운수회사에서 '800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처분을 받은 기사에 대하여 법원이 회사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 사회 상규라는 기준이 용인되려면 목적의 정당성, 상황의 긴급도, 불가피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수민씨의 경우에는 세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고소인 측의 판단이었다.
 
피고소인 측 신중권 변호사는 두 사람의 공통적인 문제로 '공사 구분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직장 상사와 직원 관계이면서도 사적으로도 깊은 친분으로 연결된 특수관계다. 수민씨는 준수씨의 호의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남용한 측면이 있고, 준수씨는 처음부터 선을 명확히 정해주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 책임이 있다는 것. 애초에 용도가 제한된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를 준 것은 고소인측의 암묵적인 승낙이 있었기에 피고소인측의 배임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고소인 측은 사회상규나 추정적 승낙이라는 것은, 당사자들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법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준수씨는 수민씨가 자신의 카드를 어떻게 얼마나 활용할지 미리 알았더라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고소인 측은 "관리자의 일시적인 호의나 배려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법적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고소인 측은 "호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민씨가 유능하고 관리자인 준수씨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존재이기에 곁에 두는 것이다. 카드 지급을 호의라고 주장하기보다 해당 금액을 차라리 정식으로 급여에 반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횡령과 배임이 단지 '소확횡'같은 우스갯거리가 아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범죄임을 지적했다. 횡령은 상호간의 신뢰가 무너지는 행위이고 이를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지훈 변호사는 이 사례를 논어에 나오는 범상(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죄를 저지르는 것)을 언급하며 "소확횡이라는 건 결국 범상이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최종판결이 내려졌다. 고소인 준수씨의 승소였다. 다만 판결문에서는 준수씨에게도 호의와 복지에 대한 기준을 애매하게 고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준수씨는 수민씨에게 허용할 수 있는 금액으로 한달 100만 원을 제안하며 통큰 모습을 보였다. 수민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동안 배려해준 준수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 JTBC

 
드라마 <글로리>를 통하여 주목받으며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학교폭력'이 다음 주제로 등장했다. 2006년 국내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고데기 학폭' 사건은 국민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하지만 당시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가해자는 촉법소년 연령에 해당되지 않는 만 15세라 형사처벌이 가능했지만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했다. 보호처분이 전과기록이 남지 않아 가해자들의 장래 신상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타인을 괴롭히며 쾌감을 얻는 학폭 가해자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드라마 <글로리>에는 가해자 집단 친구들의 대화 중 "혜정아, 문동은 아니었으면 다음은 너였어"라는 섬뜩한 대사가 등장한다. 가해자 집단에 동참한 아이들은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자신이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홍진경은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건 안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자를 괴롭히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은 아닐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지훈 변호사는 "학폭은 항상 1대 1이 아닌, 집단이 한 명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집단에 속해 있으면 죄의식은 약해지고 수위조절이 안 되면서 폭력성은 잔인해진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의 기준은 재산상-신체적-정신적 피해 등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가상공간에서의 사이버 따돌림이 유행하면서 빵셔틀보다 악독한 '와이파이 셔틀'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피해 학생의 모바일 데이터를 강제로 공유하고 무제한 요금제 가입까지 강요하기도 한다고. 과거에는 학교 내에서만 이뤄지던 학폭이 이제는 집에 귀가해서도 24시간 계속되는 양상이다. 최근의 학교폭력 가이드북에서는 피해가 의심되는 학생들의 SNS를 주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변호사들이 설명하는 학교폭력의 다양한 실제 사례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일진인 가해자가 본인이 직접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사주하여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례가 있었다. 더구나 가해자가 지역유지의 아들이라 목격자들도 증언을 회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초등학교 학폭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학교에 녹음기를 들고 다녀야 했고, 일부 교사들의 2차 가해로 피해자가 오히려 엄마 탓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비행 청소년들이 어린 후배들에게 성매매와 조건만남을 강요하는 사례도 생각보다 빈번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위가 심한 학폭 사건은 학교가 아닌 교육청으로 이관하여 학폭대책심의위원회가 담당한다고. 씁쓸한 일은 최근에는 학폭위가 열릴 때마다 가해자들이 먼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가해자 측은 학생부에 학폭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사실을 부인하며, 최근 학폭위에서는 가히 법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고 한다. 변호사들은 가정과 교사들의 책임감은 물론이고, 사회 시스템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장치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언 변호사는 학교폭력시 도움을 받는 방법에 대하여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걸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교사와 부모에게 알려봤자 부끄럽거나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며 "제 3자의 어른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럴 때 117(학교폭력상담신고센터)에 연락하면 비대면으로 전문가들로부터 긴급 구조 및 법률 상담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학교폭력을 증명하려면 증거 수집이 중요하다. 변호사들은 채팅방에서 관련 대화창을 저장해놓을 것. 학폭으로 인한 후유증 시 관련 진료기록을 확보해놓을 것 등의 팁을 전했다. 안타까운 사례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의 유서나 일기가 증거로 인정된 경우도 있었다.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촉법소년제 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촉법소년 범죄 중 커트라인에 해당하는 만 13세의 비중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촉법소년을 내세워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한 청소년들의 행태가 연이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든 법이 오히려 청소년 범죄자들을 위한 무기로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변호사들은 개선의 필요성에 모두 공감했다. 신중권 변호사는 "형사처벌에 대한 나이제한을 없애야 한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판단해야지, 나이를 기준으로 형사처벌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밝힌 이언 변호사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초범일 경우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대부분이다. 벌금 비용은 부모가 대는 것이고 집행유예는 그냥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다. 이런 처벌로 아이가 교화가 될까?"라며 의문을 제기하며 실효성있는 소년법을 위한 노력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학폭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학폭 피해자들은 사건 당시부터 수년이 흘러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데기 사건같이 가해자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들 역시 이를 인지하고 악용하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온전히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졌지만, 정작 가해자에게 납득할만한 처벌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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