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밀란의 알렉시스 살레마커르스(왼쪽 두 번째)가 2023년 4월 2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나폴리와 AC 밀란 간의 세리에 A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는 모습.

AC 밀란의 알렉시스 살레마커르스(왼쪽 두 번째)가 2023년 4월 2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나폴리와 AC 밀란 간의 세리에 A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는 모습. ⓒ Xinhua/연합뉴스

 
우리가 알던 '철기둥'이 아니었다. 소속팀과 대표팀 합산 공식경기 3연속 부진에 팀은 무려 8실점이나 내줬다. 최근 A매치에서의 부진과 인터뷰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김민재가 소속팀 복귀 이후에도 최악의 경기력을 이어가며 흔들리고 있다. 체력적-정신적으로 빨리 추스르지 못한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김민재는 지난 4월 3일(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나폴리의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에서 펼쳐진 AC밀란과의 2022-2023시즌 세리에A 28라운드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했다. 하지만 나폴리는 리그 선두의 위용이 무색하게 이날 밀란에게 0-4로 충격적인 완패를 당했고, 김민재는 대량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세리에A 데뷔 후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나폴리가 이번 시즌 4실점을 허용한 경기는 김민재 영입 이후 처음이었다.
 
올 시즌 리그에서 3번째 패배(23승 2무)를 기록한 나폴리는 승점 71점에 머물렀다. 하지만 2위 라치오(승점 55)와의 승점차는 여전히 16점으로 여유가 있다. AC밀란은 15승 6무 7패(승점 51)를 기록하며 3위로 올라섰다.
 
나폴리에게 밀란전 참패가 찜찜한 것은 리그 우승 경쟁보다 UCL(유럽챔피언스리그) 때문이다. 사상 최초로 8강에 오른 나폴리는 밀란과 준결승 진출을 놓고 다음달 12일과 19일에 각각 1, 2차전을 치른다. 나폴리는 올 시즌 자국리그에 이어 유럽 챔피언스리그 동시 석권이라는 대망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밀란전 완패로 다음달 UCL 리턴매치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김민재의 뚜렷한 컨디션 저하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김민재의 뚜렷한 컨디션 저하다. 김민재는 올 시즌 터키 페네르바체를 떠나 나폴리의 유니폼을 입은 이후, 전임자이자 구단 레전드로 평가받던 칼리두 쿨리발리(첼시)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세리에A 최고 수비수'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지난해 12월 생애 첫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은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2023년 들어 김민재의 폼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김민재는 신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축구대표팀 데뷔 무대였던 콜롬비아-우루과이와의 2연전에서도 변함없이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명성이 무색하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콜롬비아전에서 2-0으로 앞서가던 후반 초반, 김민재는 집중력이 흔들리며 상대 공격수를 연이어 놓치면서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고 결국 무승부에 그치는 빌미를 제공했다. 우루과이전에서도 전 경기에 이어 수비 위치선정과 빌드업 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이어갔다. 후반 17분 우루과이에게 내준 결승골은 페널티박스 바로 앞 위험 지역에서 저지른 김민재의 반칙에서부터 비롯됐다. 공격축구를 표방한 클린스만호는 나름 좋은 경기내용에도 불구하고 2경기 4실점을 허용하는 수비력에서 불안을 드러내며 1무 1패에 그쳤다.
 
그래도 남미 2연전은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첫 A매치였고 새로운 감독의 달라진 전술과 철학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김민재 개인의 부진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민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돌연 대표팀에서의 체력적-정신적 부담감을 호소하는 폭탄발언을 터뜨리며 도마에 올랐다.

언론과 팬들은 김민재의 인터뷰를 '국가대표 은퇴 가능성'으로 확대해석하며 파문이 커졌다. 여기에 김민재가 주장 손흥민과 SNS 친구관계를 끊은 사실이 알려지며 대표팀 내 불화설-파벌설까지 이어지는 대혼란을 초래했다.
 
김민재는 논란이 커지자 해명문을 올리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인터뷰 논란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국가대표팀 은퇴설-손흥민과의 불화설-파벌설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손흥민과의 SNS 친구관계도 현재는 복구된 상태다.
 
출전선수 중 최저 평점... 흔들리는 '철기둥'
 
질문에 답하는 김민재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하루 앞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김민재 선수가 27일 파주 NF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질문에 답하는 김민재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하루 앞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김민재 선수가 27일 파주 NF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흔들린 멘탈과 경기력은 소속팀 복귀 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밀란전에서의 김민재는 더이상 철기둥이 아닌 자동문에 가까웠다. 4실점 모두 하나하나 살펴보면 김민재에게 직간접적인 책임의 지분이 적지 않았다.

후반 17분 첫 실점은 김민재의 패스 실수에서 비롯됐고, 2번째 실점에서는 김민재의 어설픈 클리어링이 상대 슈팅 찬스로 이어진 데 이어 김민재의 다리에 맞고 굴절되며 골문을 갈랐다. 후반에도 위험지역에서 상대에게 너무 쉽게 돌파를 허용하는 장면이 속출하는 등, 몸놀림이 전반적으로 둔했다.
 
김민재는 이날 수비 지표에서 클리어링은 2개, 인터셉트 1개, 공중볼 경합 3개 등을 기록했지만, 태클 성공은 단 하나도 없었고, 활동량이나 압박 면에서도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유럽축구 통계 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김민재에게 5.62점으로 출전선수 중 최저 평점을 내렸다.
 
김민재의 부진 원인으로는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강행군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컨디션 저하가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런 조짐은 최근이 아닌, 이미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시점부터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김민재는 2021년 여름 유럽진출 이후로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출전경기수와 이동거리가 급격히 증가했다. 사실 지난해 12월 카타르월드컵 때도 소속팀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출전해 체력과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였고, 우루과이와의 1차전(0-0) 이후로는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전반적으로 기대에는 못 미친 활약이었다.
 
여기에 김민재는 나폴리에서의 맹활약으로 인하여 유럽 빅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올라서며 계속해서 이적설에 휘말린 바 있다. 여기에 휴식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폴리의 세리에A-UCL 경기에 이어, 다시 클린스만호의 A매치 2연전에 소집되어 풀타임을 소화해야 했다. 김민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그의 활약 유무에 따라 대표팀 수비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여론은 선수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논란이 된 김민재의 인터뷰는 잦은 대표팀 차출에 대한 피로도와 부담감을 호소하는 것이 본래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애매한 발언과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가 맞물리며 은퇴설과 불화설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됐다. 김민재는 국가대표에 대한 책임감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뭇매만 맞고 사과해야 했다.

또한 스팔레티 나폴리 감독은 힘든 A매치를 갓 치르고 돌아온 국가대표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 회복을 고려하지 않고 밀란전에서 무리하게 베스트 라인업만 가동하다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
 
이처럼 김민재의 부진은 단순히 선수 개인의 멘탈이나 체력 탓만을 할 게 아닌, 유럽파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의 관리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다. 한국 축구 선수를 통틀어 김민재만큼 유럽 빅리그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엄청난 경기수와 이동거리, 대표팀 내에서의 높은 비중을 감수해야 하는 선수는 손흥민 정도 외에는 찾기 힘들다.
 
프로 데뷔 이래 꾸준히 유럽에서 활약하면서도 10년 넘게 묵묵히 대표팀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손흥민이 체력적-멘탈적으로 초인적인 것일뿐, 그와 비교하여 김민재에게 손흥민만큼 못 하냐고 지적하는 것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김민재는 아직도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이고,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한 번쯤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분명한 것은 최근의 김민재가 여러모로 힘들어하고 있으며 사기가 극도로 떨어져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프로라도 체력과 의욕이 떨어지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고 항상 최상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조만간 김민재를 유럽에서 직접 만나 면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선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고, 선수마다 상황과 컨디션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세심한 접근과 관리가 필요하다. 김민재는 소속팀 나폴리와 축구대표팀에서 모두 대체불가한 중요한 선수이기에, 그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선수의 입장을 반영하고 존중해주는 배려도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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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나폴리 밀란 클린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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