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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환경의 날(6월 5일)을 앞두고 철도박물관을 찾았다. 평일이기도 했지만, 철도박물관은 꽤 한적한 곳에 있어 묵묵히 달리기만 하는 기차의 역사를 조용하게 드러내 주는 듯하였다.

이날은 특별히 42년 동안 철도와 함께 살아온 전직 철도원인 강병규 작가의 '커피로 그린 철도 이야기'를 보기 위해 아내와 대학생 큰아들과 함께 방문했다. 전시는 4월 21일 이미 시작해 6월 30일까지 한다.

필자도 철도공무원 출신이라 철도박물관 방문 자체로 감회가 새로웠지만 커피 가루로 그린 이색 전시회 풍경이 더욱 궁금했다. 강 작가는 기자의 철도고등학교 3년 선배이기도 하지만 선배로서가 아니라 환경의 날을 앞두고 환경친화적인 그림 전시라고 해서 특별히 약속을 잡았다.
 
선로가 마주 보고 달리는 의미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강병규 작가(왼쪽)와 배은선 철도박물관장(오른쪽).
 선로가 마주 보고 달리는 의미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강병규 작가(왼쪽)와 배은선 철도박물관장(오른쪽).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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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쯤 도착하니 강병규 작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등학교 3년 후배이기도 한 배은선 관장이 뒤늦게 나타나 인사했다. 얘기 들어보니 작업복 차림으로 풀 깎기 작업을 하다가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오느라 살짝 늦은 거였다.

강 작가와 나는 관장이 풀 깎기까지 하느냐고 흉을 봤지만, 철도 박사이기도 한 배 관장의 철도 사랑은 아마추어 철도 마니아들의 우상일 정도로 숭고한 데가 있었다.

환경친화적인 철도와 닮은 커피 그림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배 관장은 마치 자신의 전시인 것처럼 자랑하듯 전시 의미를 설명했다.

"퇴임 전 황간역장으로 계시면서 진짜 간이역이 될 뻔한 역을 문화역으로 바꿨어요. 공연이 항상 열리고 언론에 굉장히 많이 알려지고 그랬던 역장님이시거든요."
 
퇴임 전 직접 근무하면서 관광 문화역으로 탈바꿈시킨 황간역 그림 앞에 선 강병규 작가
 퇴임 전 직접 근무하면서 관광 문화역으로 탈바꿈시킨 황간역 그림 앞에 선 강병규 작가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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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된 내용이지만, 배 관장은 철도 역사를 책임진 관장처럼 그 역사적 의미를 신나게 부여했다.

"작년에 제가 철도에 대한 작품들을 좀 전시해 주십사 부탁을 드려서 이번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오는 분들에게 강 작가님의 커피로 그린 그림이 환경친화적인 작품임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철도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고 우리가 계속 자랑합니다."

배 관장 역시 올해로 만 40년 동안 철도를 지킨 사람이라 그런지 환경을 강조하는 속내가 있었다. 왜냐하면, 일반 자동차 교통이나 항공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많은 손님을 태울 수 있는 게 철도라는 것이다.

강 작가의 작품은 친환경 염료인 커피 가루로 달력이나 포스터, 커피 여과지, 벽지 등 버리는 용지 뒷면에 그림을 그린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강 작가가 말을 이어갔다.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즐겨 그렸지만 커피로 그리기 시작한 지는 2020년 무렵이니 몇 년 안 됐어요. 딸이 부평에 살고 있는데 내려 마시는 커피 필터의 얼룩이 꽤 괜찮아 보이고 한 번 내린 커피 필터를 버리는 것이 아까워 커피 찌꺼기를 그림 재료로 삼게 된 것이죠."

거대한 역사화의 융합

커피로 그린 철도 작품 49점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그린 그림이었다. '철도와 역사'를 주제로 한 14점, '철도와 사람'을 주제로 한 10점, '철도와 풍경'을 주제로 한 25점인데, 철도와 역사 관련 그림은 마치 역사화를 보는 듯했다.
 
2007년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 운영 장면을 담은 그림  @강병규
 2007년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 운영 장면을 담은 그림 @강병규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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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설명하는 강 작가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 2007년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 당시의 감동 역사가 진한 커피 색깔과 향기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분단 조국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이들의 꿈, 남북을 연결하고 더불어 대륙을 횡단하는 벅찬 감동이 넘실거렸다.

우리 민족이 분단의 상처를 딛고 남북철도를 연결하고 대륙철도로 뻗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민족 해방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조선해방자호'와 경의선의 마지막 기관사였던 한준기 선생과 북한 기관사, 남한과 북한의 기관차를 통해 남북철도 연결의 꿈을 표현한 '기관사의 마지막 소원'을 설명하는 강 작가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했다.
 
‘조선해방자호의 꿈과 기관사의 마지막 소원 @강병규
 ‘조선해방자호의 꿈과 기관사의 마지막 소원 @강병규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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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차량과 차량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표현한 '연결과 소통'
 철도 차량과 차량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표현한 '연결과 소통'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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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사람은 작가가 철도원으로 살게 된 가족사를 담은 것과 철도 현장에서 선로보수작업을 하는 철도원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인데 마치 섬세한 세밀화 같았다.

필자가 1980년 철도공무원 시절 맡았던 입환 작업(차량 정리작업) 관련 그림인 차량 연결고리 그림은 철도에 얽힌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와 힘든 노동을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지금은 많이 자동화되어 안전해졌지만, 기자가 근무했을 당시만 해도 죽고 다치는 일이 많았다.

어쩌면 기자의 이 글은 철도를 일찍 떠난 기자 대신 철도를 지켜준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기사를 쓰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철도와 풍경은 후배 철도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철도를 일찍 떠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철도를 그림으로 그리게 된 것은 철도원 출신인 작가가 철도원이란 직업과 철도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도만큼 인류 문명과 생활문화, 경제와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교통수단은 달리 없습니다. 또한, 철도는 영화, 음악, 그림, 소설 등 다양한 문화 예술작품의 소재이고, 오늘날의 철도는 어느 면에서는 생활문화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우리 겨레의 애환과 웅혼한 역사를 함께 담은 강병규 작가의 작품들
 우리 겨레의 애환과 웅혼한 역사를 함께 담은 강병규 작가의 작품들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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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간이역으로 사라질 뻔했던 황간역을 다양한 관광객이 찾는 문화역으로 바꾼 강 작가였다. 작가는 철도문화를 생활문화로 더 나아가 철도의 선로처럼 서로 마주 보면서 예술도 함께 즐기는 예술문화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정년퇴직 후 작가로 더 바쁘게 살고 있는 강 작가의 꿈은 앞으로 더 다양한 전시와 아이들 교육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강 작가에게 최초 전시 소감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전시장 입구 안내판에 투박한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평생을 철도원으로 살아온 나의 삶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철도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태그:#환경친화, #강병규작가, #철도그림, #철도박물관, #배은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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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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