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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덕제 한국교총 부회장이 교육부 포럼에서 발표한 PPT 자료.
 손덕제 한국교총 부회장이 교육부 포럼에서 발표한 PPT 자료.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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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 8일 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마련을 위한 포럼'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손덕제 부회장이 한 발언이 논란이다(관련 기사 : 학생인권조례가 일진회 구성 권리? 교육부 포럼 '황당' 발제).

해당 기사를 보면, 손 부회장이 준비한 PPT 화면에는 '이것이 학생 인권?'이라는 제목 아래 "'학생이 임신 출산 할 권리', '소지품 검사, 반성문, 벌청소 거부 권리',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권리', '학생들이 일진회를 구성 할 수 있는 권리', 선생님을 고발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열되어 있다(앞 사진 자료). 학생인권조례를 겨냥한 내용이었다.

S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여당, 한국교총을 비롯한 보수 교육단체들은 17개 시·도 가운데 6개 지역에만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사를 죽인 주범인 양 몰아간다. 사실 왜곡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보다 사람의 권리와 차별 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근본적 태도가 더 커다란 문제다.

아래 인용 글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 ①항이다. 다른 지역 학생인권조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예를 들어,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5조 ①항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차별 금지' 열거 항목에서 '경제적 지위'만 빠져 있고 나머지는 똑같다.
 
"제5조(차별받지 않을 권리) ①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학생인권조례는 상위 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항이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열거한 내용보다 제한적이다.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도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국가인권위원회법>)
 
가장 많은 회원이 있다고 자랑하는 교원 단체 부회장, 그것도 현직 교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태도에는 누군가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보다 가족과 학교, 사회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하다. 김지혜는 최근 펴낸 <가족각본>(창비)에서 가족이 "견고한 각본 같다"라고 했다(책, 9쪽).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은 성별에 따라 세밀하게 구조화된 체계다. 모든 사람을 '남'과 '여'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고 성별에 따라 달리 기대되는 역할이 있음을 대전제로 한다. 남녀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법적으로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해야만 하는 일련의 가족각본을 충실히 따르기를 기대하고 때때로 압박한다." (김지혜, 2023, <가족각본>, 176쪽, 창비).
 
학생인권조례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문제 삼는 부분이 있다. '성적 지향'과 '혼전 임신' 등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가족각본'에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각본'을 불태워버릴 염려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각본'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실재한다.
 
"수많은 아동들이 가족 배경을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겪는다. 아동이 겪는 온갖 놀림과 괴롭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 형태, 가족소득, 가족 구성원의 특징 등 가족에 관한 이유 때문인 경우들이 많다."
(김지혜, <가족각본>, 190쪽)
 
2022년 기준으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국가만 26개에 이른다(조소연, 2022, <한국 성소수자 운동과 '동성결혼' 법제화의 위치>, 2022년 여름 비판사회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331쪽). 트렌스젠더 성별 인정 절차가 마련된 유럽 국가만 40개이다(김지혜, <가족각본>, 73쪽).

외국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0조는 누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이 권리를 국가가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명확히 밝혔다. 아울러 헌법 제11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누구든지'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 당연히 가족 형태와 개인들의 삶의 모습도 다양해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구유형별 가구 구성비'를 보면 1인 가구가 34.5%, 1세대 가구가 19.2%로 1세대 이하 가구가 53.7%로 절반이 넘는다(통계청, 2023년 7월 27일 보도자료,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2010년에 비해 1인 가구는 10.6%가 늘었고, 1세대 이하 가구는 12.3%가 증가했다.  
 
통계청이 2023년 7월 27일 발표한 2022년 ‘가구유형별 가구 구성비’ 자료이다.
▲ 2022년 가구 유형별 가구 구성 통계청이 2023년 7월 27일 발표한 2022년 ‘가구유형별 가구 구성비’ 자료이다.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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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 가족', '동성 커플 가족', '트랜스 젠더 가족'에 관한 고려는 고사하고, 아직 학교와 교육부는 '부모-자녀'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수많은 학교 가정통신문은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교육부가 '나이스'라고 부르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보호자' 접근 서비스는 '나이스 대국민 학부모 서비스'로 되어 있다.
 
교육부가 ‘나이스’라고 부르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보호자’ 접근 서비스는 ‘나이스 대국민 학부모 서비스’로 되어 있다.
▲ "나이스 대국민 학부모 서비스" 교육부가 ‘나이스’라고 부르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보호자’ 접근 서비스는 ‘나이스 대국민 학부모 서비스’로 되어 있다.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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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비롯해 세계는 '불평등 세습'을 커다란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든 똑같이 자랄 기회가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 입시와 취업에서 유명 인사들의 각종 '가족 찬스'에는 분노하면서, 누군가 그려놓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불평등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교육부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차별과 불평등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교육부와 보수 교육계의 학생인권조례 공격은 우리 사회에 매우 위험한 징후다.

태그:#학생인권조례 공격, #한국교총 부회장 발언, #교육부 포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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