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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가이자 음악가인 정율성 선생의 업적으로 두고 설전을 벌인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왼쪽)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오른쪽)의 페이스북 게시글.
 항일운동가이자 음악가인 정율성 선생의 업적으로 두고 설전을 벌인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왼쪽)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오른쪽)의 페이스북 게시글.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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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22일 '정율성 역사공원'을 북한 애국열사능에 비교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향해 "적대의 정치를 그만두고,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자"고 밝혔다.

강 시장은 이날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합니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인다"며 박 장관을 직격했다.

그는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 광주의 눈에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고,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다"며 "뛰어난 음악가로서의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오고,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역사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다"고 반박했다.

이어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는 여전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이 있고, 마르크스 거리가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오늘날의 방식이다"며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과 음악 활동 중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며 "정율성 선생은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은 인물이다"고 강조했다.

또 "나와 다른 모두에 등을 돌리는 적대의 정치는 이제 그만하시고, 다른 것,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반기는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자"며 글을 맺었다.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의 형제 모두가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 청년 시절 정율성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의 형제 모두가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 이상미디어(<정율성>에서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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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날 앞서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에 대해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정율성이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고,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해 단장이 됐다"며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비판했다.

1914년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항일운동을 위해 1933년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갔다.

뛰어난 음악가로 알려진 그는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고, 해방 이후 북으로 귀국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가 인민군으로 전선 위문 활동을 펼쳤다.

휴전 이후에는 북한에 정착했으나 1956년 김일성이 연안파를 숙청하자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 1976년 사망했다.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은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선정된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광주시는 2020년 5월 정율성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동구 불로동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사업비 48억원을 투입되는 역사공원은 올해 연말 완공될 예정이다.

태그:#강기정, #박민식, #정율성,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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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통신 기자를 거쳐 오마이뉴스 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사 제보와 제휴·광고 문의는 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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