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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예비소집일인 15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화여고에서 한 수험생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수험표를 확인하고 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예비소집일인 15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화여고에서 한 수험생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수험표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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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 11월은 늘 '수능'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따라다녔다. 그래서인지 11월이 시작되면 늘 마음이 무겁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곤 했다. 

대학 신입생, 올해는 내 인생에서 수능의 부담감이 사라진 첫 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11월 하면 수능이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수험생이 아님에도 그때 느꼈던 부담감과 불안감 그리고 곧 해방된다는 기대감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작년에 수험생 신분으로 많은 이들에게 과분한 응원과 지지를 받은 만큼, 나도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성적이 오르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보잘 것 없는 내 경험을 짧게 적어보고자 한다. 

수능을 치르기 전에 읽는다면 읽으며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만약 치른 후에 읽는다면 내용에 공감하며 수능 당시를 되새김질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수험표 받으며 실감한 수능...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시험 전날 수험표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 수험표에 적힌 내 이름과 사진이 낯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난다는 해방감, 한편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채웠다.

집에 도착해서 메신저를 확인하니 '짝수형 시험지로 수능을 쳐야해서 불안하다'고 친구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수능에선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방지하려 시험지를 홀수형과 짝수형으로 구분해놓는다).

자리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시험지가 홀수형인지 짝수형인지마저 신경 쓰이는 시기였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변에선 짝수형 시험지로 수능을 봐서 점수가 낮게 나온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짝수형'이기에 같은 번호가 반복되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니 짝수형 시험지를 받게 된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믿고 문제를 푼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수능 당일. 비록 목표 취침 시간에 잠들지는 못했지만, 목표 기상 시간인 새벽 5시 반에 일어날 수 있었다. 중요한 날인만큼 피곤함이나 졸음이 느껴지진 않았다.

고사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고 처음 접한 그 공간이 낯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오니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교실의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교실(자료사진).
 교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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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미리 준비해온 국어 지문을 읽고 있다보니 평소 등교하던 느낌과 비슷해 긴장이 풀렸다. 드디어 수능을 치를 준비가 된 것이다.

아마 읽고 계신 수험생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면 조금 이르게 고사장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영어영역 듣기평가 중 끊기는 음성, 당황했지만

그런데 순탄하게만 흘러가진 않았다. 안내방송 때까지만 해도 스피커 음질이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듣기 평가가 시작하고 영어 듣기 음원이 흘러나올 때 나는 뭔가 큰일이 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듣기음원이 중간중간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끊기고 있었다.

일단은 들은 단어로 듣기 1번 문제를 풀었다. 손을 들어 이의제기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야', '혹시 같은 교실에 있는 수험생들에게 민폐가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듣기 평가음성은 계속 끊겼고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주의 깊게 문제를 들어야 하는데, '듣기 평가는 망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듣기 평가 시간 동안 풀어야 했던, 그러나 못 다 푼 독해 문제들이 방송이 끝난 후에도 남게 됐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비교적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영어 영역에서 난관을 겪으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대로 3교시를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정신을 다 잡고 문제를 풀어 답안을 제출했지만, 지금도 3교시 후반부의 기억이 잘린 것 마냥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이날의 해프닝은 '음질 불량해 듣기평가 망쳤다, 수험생 불만 빗발'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의신청 게시판에 항의글이 올라오는 등 일부 학생들의 불만·항의가 있었지만, 고사장 측의 별도 조치는 없었다). 

나는 결국 평소보다는 낮은 성적을 받게 되었다. 여러분은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어떤 돌발변수가 있어도 마음을 차분하게 유지하며 문제를 끝까지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집 가는 길에 마주한 노을

나는 제2외국어 영역을 안 봤기 때문에 오후 5시에 수능이 마무리 되었다. 오늘을 위해 열심히 교실을 청소했을 고마운 내 자리의 주인을 위해 책상 서랍에 초콜릿을 넣어두고 고사장을 나왔다.

같은 고사장에 배정됐던 친구가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친구가 교문을 넘으며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무려 수능이 끝난 거니까 눈물이 난다거나 환호성을 지르든지 하는 격한 감정을 느낄 줄 알았는데, 그냥 평소에 하교하는 느낌이야. 이상하네."
 
고사장 전경. 수능 고사장을 나오며 봤던,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하늘이다. 본격적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더 아름답다.
 고사장 전경. 수능 고사장을 나오며 봤던,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하늘이다. 본격적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더 아름답다.
ⓒ 양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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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사장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막상 교문을 나서니, 평소 학교 일과를 마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다.

달랐던 건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질 무렵 하늘이 유독 높고 예뻐보였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오늘 아쉬웠던 부분만 생각하며 땅을 보고 걸었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그제서야 '이제 수능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도 시험 종료 뒤 고사장을 나가면서 땅보다는 하늘을 봤으면 좋겠다. 땅만 보며 집으로 가는 것보단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수능이 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될 수험생들에게 지금까지 달려오느라 정말 고생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은 어떤 응원을 들어도 마음 깊숙히 와닿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력한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다. 

대학 입학 뒤 느낀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통한 성장 혹은 경험 자체에도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 많다는 것, 긍정적이고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는 사람은 멀리서 봐도 빛이 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눈앞의 결과보다는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이 수능을 봤던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비슷하다. '인생의 끝'일 것만 같던 수능은, 지나고 보니 결국 내가 치렀던 많은 시험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 이상적인 '나'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수능 이외에도 너무나 많다는 걸 말이다. 당장 눈 앞의 결과가 어떻든, 목표를 위해 노력해온 과정은 앞으로의 삶을 사는 데 있어 큰 원동력이 돼 줄 것이다.

그러니 수능 결과를 미리 걱정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피하지 않고 마주한 스스로를 격려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저녁을 뭘로 먹어야 주변에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그간 못 보고 아껴둔 드라마들 중 어떤 걸 먼저 볼지 고민하기 같은 것들 말이다. 

결국 인생의 최종 목표는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그러니 시험장을 나오면서 걱정보다는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격려 먼저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태그:#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 #듣기평가, #예비소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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