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 김수용 감독 빈소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 김수용 감독 빈소 ⓒ 성하훈

 
1960년대~1980년대 수많은 명작을 연출하며 한국영화 역사를 장식했고 검열에 항의해 창작활동 은퇴를 선언했던 거장 김수용 감독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9년 9월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한 김수용 감독은 경기도 안성공립농업학교를 거쳐 서울교육대학교의 전신인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청소년 시절 문학에 관심을 가져 습작 소설을 쓰기도 했고, 자작 희곡을 무대에 올려 연출과 주연을 겸하는 등 연극에도 자질을 보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인 1946년부터 서울사범학교 연극부 부장 연출가로 활동하던 김수용 감독이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쟁 시기 1951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면서였다. 통역장교였던 그는 휴전 이후 국방부 정훈국에 배치돼 전사 편찬 작업을 하다가 그 즈음 신설된 영화과로 배속됐다. 이때 영화과 과장이던 선우휘의 지휘 아래 군인 교육용 영화를 약 30여 편 만들며 영화에 대해 배우게 된다. 

당시 문관으로 있던 양주남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조감독으로 지목하면서 파견학습의 형식으로 <배뱅이굿>의 조감독 일을 수행하며 연출 수업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1958년 <공처가>를 연출하며 데뷔하게 된다. 

김수용 감독은 유현목, 김기영, 이만희, 신상옥과 함께 한국영화사를 빛낸 소위 '빅 5'에 속하는 감독으로 <혈맥>(1963), <갯마을>(1965), <안개>(1967), <산불>(1967)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내놓은 작가주의 감독이었다. 극영화 109편, 문화영화 12편 등 총121편을 연출했는데, 홍콩영화와 일본영화 연출작 3편을 제외하면 순수 한국 장편영화로는 106편을 연출해 한국영화감독 중 최다 연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지영, 장길수 감독 등이 김수용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거쳐 데뷔했다. 

1965년 연출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김수용 감독의 대표적 흥행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어려운 형편을 이겨낸 가족 드라마로 만들었던 영화는 당시 서울국제극장에서 28만 5000명이 관람해 크게 흥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1966년 <갯마을>로 부일영화상 감독상, 1967년 <안개>는 대종상과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부일영화상 감독상을 받았으며,  2002년 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2009년 2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화 특별공로상, 2017년 22회 춘사국제영화제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검열에 항의해 창작활동 은퇴
 
 김수용 감독

김수용 감독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김수용 감독은 주로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었으나 군사독재의 검열은 창작 욕구를 훼손시켰고, 결국 창작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도시로 간 처녀>(1981)는 버스안내양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를 사실적으로 고발한 작품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버스안내양들과 운전기사들의 불만을 샀고, 이에 전국자동차운수노조와 한국노총의 항의로 제작사가 상영을 중지했다. 이후 재편집을 통해 재상영이 되었으나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1986년 <허튼 소리>의 검열과 관련된 논란은 김수용 감독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걸레스님'이라 불린 중광의 기행과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제작 당시부터 불교계의 품위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조계종의 항의를 받아 영화 완성 후 공동 시사를 통해 두 군데 정도를 자진 수정했다.

그러나 당시 사실상의 검열기관이었던 공연윤리위원회는 조계종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무려 10여 군데 삭제 명령을 내렸다. 이에 김수용 감독은 항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없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1992년까지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겸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198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영화감독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김수용 감독은 또한 1기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심의기관으로 신설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초대와 2대 위원장을 맡아 1999년~2005년까지 영등위의 안착에 기여하기도 했다. 검열로 인한 피해자였던 만큼 심의기관으로 자리를 잡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5일 11시 30분 발인한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을 거쳐 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장례는 한국영화에 대한 고인의 공로를 기려 대한민국영화인장으로 거행된다. 안성기, 이장호, 장미희, 정지영 등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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