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강자가 없었던 3월이었다. 3편의 영화가 100만 이상, 8편의 영화가 4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소소한 흥행을 이어갔다. 3월 개봉작 가운데 규모 면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24일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단 한 편뿐. 개봉 일주일 만에 16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마블 히어로 시리즈에 도전장을 던진 이 영화는 좋지 못한 입소문과 함께 빠르게 힘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부문에서 수상하며 기대를 모은 <스포트라이트>와 <룸>은 평론가와 영화팬 모두에게 좋은 평을 받았음에도 배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3월 한 달간 <스포트라이트>엔 17만, <룸>에는 7만 관객이 들었는데 이 영화들의 객관적 수준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수치다. 한국 영화판이 거대 영화사의 시장지배력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2월 개봉작인 <귀향>과 <주토피아>가 3월 박스오피스 1, 2위를 기록한 상황에서 한국 영화팬들은 신작의 개봉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화사에 기록된 명장의 작품부터 세계 최대 규모 블록버스터까지 흥미로운 면면의 작품들이 4월 한 달을 수놓을 예정이다.

푸르른 이파리가 돋아나고 꽃망울이 고개를 쳐드는 잎새달. 주목할 만한 영화 10편을 꼽아본다.

[하나] 스틸 플라워

스틸 플라워 포스터

▲ 스틸 플라워 포스터 ⓒ 인디스토리


대형 배급사 틈바구니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계에 또 한 송이 꽃이 폈다. 데뷔작 <들꽃>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다. 영화는 박 감독 전작과 같이 사회와 가정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표류하는 젊은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감독의 조용한 집념과 젊다 못해 어리게까지 느껴지는 배우의 진중한 연기가 보는 이들을 깊게 빨아들인다. 이 영화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도 멋진 경험일 것이다. 7일 개봉.

[둘] 33

33 포스터

▲ 33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2014년 4월, 한국 사회는 304명의 아까운 생명이 차가운 바다 밑에서 스러지는 걸 목격했다. 그보다 4년 앞선 2010년 8월 5일. 지구 반대편 칠레에선 700m 아래 매몰된 33명 광부를 구해내기 위한 칠레 정부의 사투가 이어졌다. 첫날 국가비상사태 성명을 발표하고 69일 만에 700m 아래서 33명의 광부를 구출한 그들의 실화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2007년 <언더 더 쎄임 문>으로 감격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패트리시아 리건이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지 자못 기대된다. 지난 시대의 라틴계 미남 스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았다.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셋] 라스트 홈

라스트 홈 포스터

▲ 라스트 홈 포스터 ⓒ (주)브리즈픽처스


이란인 부모를 둔 뉴욕 영화학도 출신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라스트 홈>이 7일 개봉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히어로 앤드류 가필드를 내세운 이 영화는 '참신함' 측면에서 상당수 평론가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월가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경제 관련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올랜도 전역의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유럽에 진출한 미국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에서 지난해 그랑프리를 수상한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다.

[넷]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포스터

▲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포스터 ⓒ 크리스리픽쳐스인터내셔널


무료한 일상을 사는 중년의 남자 앞에 낯선 사람이 나타난다. 국적도, 나이도, 취향도, 성격까지도 전혀 다른 둘의 만남은 기묘한 상황을 빚어내고 둘은 그로부터 변화를 겪는다. 어찌 보면 전형적이라 할 만한 버디 영화의 구성이지만 이런 설정 가운데 재미없는 영화도 드물다. 현실서 쉽게 이뤄지지 않는 색다른 만남이란 언제고 흥미를 자아내는 법이다.

스페인 최고권위의 영화제, 제26회 고야상에서 스페인어 영화상을 받았다. 7일 개봉.

[다섯] 만물생장-끝없는 관계

만물생장-끝없는 관계 포스터

▲ 만물생장-끝없는 관계 포스터 ⓒ (주) 케이알씨지


중국영화계의 흔치 않은 여성감독 리위의 <만물생장-끝없는 관계>가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유명 TV 진행자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다시 극영화 연출자로 변신을 꾀한 리위의 선택이 어떤 결실을 볼지 주목하는 이가 적지 않다.

중화권 내 독보적인 톱스타 판빙빙이 주연을 맡았고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였던 한경이 함께 출연한다. 지난달 5일 개봉한 판빙빙 주연 영화 <양귀비: 왕조의 여인>이 200명의 관객도 모으지 못하고 막을 내린 상황에서 <만물생장-끝없는 관계>는 판빙빙의 한국 내 평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섯] 퀸 오브 데저트

퀸 오브 데저트 포스터

▲ 퀸 오브 데저트 포스터 ⓒ (주)영화사 빅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주자로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베르너 헤어조크의 작품이다. 1960년대 이후 촉발된 뉴 저먼 시네마 운동에서 빔 벤더스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바로 다음 자리를 차지할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는 그 대단한 명성에도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 그렇기에 그의 신작 <퀸 오브 데저트>를 보는 건 영화팬들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니콜 키드먼, 제임스 프랭코, 로버트 패틴슨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작가이며 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더불어 영국 정보국의 스파이로도 활동한 거트루드 벨의 삶을 다뤘다. 스타에서 배우로 꾸준히 전진하는 니콜 키드먼이 독일 영화계의 거장과 만나 어떤 연기를 펼쳤을지 궁금하다. 7일 개봉.

[일곱] 시간이탈자

시간이탈자 포스터

▲ 시간이탈자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누군가에겐 식상한, 누군가에겐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시간 소재 판타지 스릴러가 13일 개봉한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시그널>이 최근 종영한 상황에서 유사한 설정의 <시간이탈자>가 그 덕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tvN 드라마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의 주연배우 이진욱이 조정석, 임수정과 함께 주연을 맡아 한 여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분투한다.

일찍이 <동감>과 <프리퀀시> 등 유사 설정의 작품이 한둘이 아닌 상황에서 <시간이탈자>가 어떤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중국에서 고생고생하다 이를 갈며 돌아왔을 곽재용 감독의 연출은 지켜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여덟] 헌츠맨: 워터스 워

헌츠맨: 윈터스 워 포스터

▲ 헌츠맨: 윈터스 워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잘 나가는 언니들이 여기 다 모였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여전사 퓨리오사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을 비롯, <엣지 오브 투모로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 연이어 출연하며 시고니 위버, 안젤리나 졸리, 샤를리즈 테론의 뒤를 잇는 여전사로 거듭난 에밀리 블런트, <인터스텔라> <마션> <크림슨 피크>로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제시카 차스테인이 한 영화에서 만났다.

남성중심의 오락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지금 <헌츠맨: 워터스 워>가 어떤 결과를 받아들지 자못 궁금해진다. 13일 개봉한다.

[아홉] 브루클린

브루클린 포스터

▲ 브루클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69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빛나는 멜로영화 <브루클린>이 21일 개봉한다. 2014년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얼굴을 알린 이래 연기의 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는 시얼샤 로넌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이다. 그녀의 파트너는 <어바웃 타임>에서 멜로의 맛을 제대로 봤던 돔놀 글리슨. 한국에서도 독자적인 팬층을 확보한 두 배우의 멜로 연기가 적잖이 기대된다.

[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

▲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워쇼스키 형제가 남매를 거쳐 자매가 된 지금, 최고의 형제 감독은 누구일까? 다르덴 형제와 코엔 형제가 일찌감치 앞서나가고 스피어리그 형제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만 루소 형제의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통해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유감없이 입증한 루소 형제는 예고된 대로 속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들고 복귀한다. 이 영화 이후 <어벤져스>의 새 시리즈까지 계약을 완료했다 하니, 이들에 대한 마블의 신뢰가 어떠한지 짐작할 만하다.

서양 액션 블록버스터에 홍콩 액션의 기법을 접목하고 블록버스터 영웅물에 드라마를 적절히 덧입힐 줄 아는 이들의 재능이 이번 영화에서도 만개할지 궁금해진다. 27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시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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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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