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가 가진 힘이 있다. 피와 뼈를 가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겪고 이뤄낸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는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서 정말로 일어났던 이야기라면 얼어붙고 굳어있는 마음까지 두들기고 흔들 수 있으리라, 그런 믿음이 가고는 한다. 특히나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가 수시로 벌어지는 스포츠의 영역, 그것도 청춘과 결합한 학교스포츠의 영역에서라면 더욱 감동적이지 않을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스포츠 기반 창작물이 활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 편이다. 할리우드나 일본 영화에선 스포츠 영화가 끊이지 않고 제작되지만, 한국에선 몇 년 걸러 겨우 몇 편의 스포츠 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규모 있는 상업영화 중에선 스포츠 영화를 손에 꼽을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올림픽이며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각종 프로스포츠가 인기리에 리그를 운영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영화가 그를 발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간간이 등장하는 스포츠 영화가 있다. 그중 일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또 일부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다. 상대적으로 엘리트 체육에 집중된 한국의 현실이 청춘 스포츠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데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들만의 이야기가 또 알아가는 재미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모든 것, 현재와 미래를 걸고서 오늘에 부딪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어떤 영화는 오롯이 제 안에 담아내고는 한다.
 
리바운드 포스터

▲ 리바운드 포스터 ⓒ (주)바른손E&A

 
간만에 마주한 한국산 청춘 스포츠영화
 
<리바운드>는 청춘 스포츠영화를 표방한다. 내놓은 작품들은 다소 아쉬움이 많았지만 지명도 만큼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영화감독 중 하나가 된 장항준의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축구나 야구에 비해 국가대표며 프로리그 성적과 인기가 급전직하, 가히 몰락의 지경에 접어든 농구를 다뤘단 점에서 우려가 있기도 했으나 때를 잘 타며 상당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서 때 아닌 열풍을 일으킨 극장판 <슬램덩크> 개봉 직후 상영일정이 잡혔던 것이다.
 
1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실패하며 손익분기를 넘지 못했으나 장항준 감독의 작품 중에선 꽤나 호평을 받은 작품이 <리바운드>가 되겠다. 전형성과 가벼움, 과도한 신파 등의 비판이 잇따른 데 이유가 없지는 않겠으나 청춘 스포츠영화의 기본은 해냈다는 평가도 나올 만한 작품인 덕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이런 류의 영화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 또 먼지 쌓여 사장될 수 있는 실화를 영화로 재구성했다는 점은 평가되어 마땅하다 판단한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건 부산중앙고 농구팀이다. 과거 제법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어느덧 해체위기에 놓인 이 팀의 미래를 놓고 학교 관계자들이 회의를 한다. 농구팀엔 전혀 관심이 없는 교장은 이 기회에 해체를 해버릴 생각이지만, 동문들의 반대가 우려된다는 다른 교사들의 반대로 형식상으로나마 유지를 하기로 한다. 코치까지 자리를 비운 이 팀의 신임 코치자리는 학교 농구팀 출신으로 마침 학교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양현(안재홍 분)에게 돌아간다. 따로 비용이 안 든다는 게 그 이유다.
 
리바운드 스틸컷

▲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E&A

 
닥친 위기를 극복하다
 
영화는 단 둘만 남은 농구팀에 선수를 모으기 위해 양현이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고교 성적에 대학 진학이 달렸으니 중학교에서 날렸다는 선수들은 올 리가 없다. 그 결과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신경이 좋아 보이는 아이들을 스카웃하고 거리에서 길거리 내기농구를 하는 아이에게 접근하는 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침 운 좋게 제가 과거 농구를 권했다는 2m 넘는 괴물센터가 부산중앙고로 진학하기로 하고, 이를 무기 삼아 중학교 시절 천재가드로 이름을 날렸지만 키가 안 자라 다른 학교의 지명을 받지 못하는 천기범(이신영 분)을 영입한다. 어찌저찌하여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팀을 꾸린 농구팀은 연일 강훈련을 지속하고 대회를 준비한다.
 
영화는 여러모로 일본에서 그 틀이 잡힌 청춘 스포츠물의 구조를 따른다. 하나하나 선수들을 모으는 과정부터가 그렇다. 천재였으나 슬럼프에 빠진 기범을 비롯하여 고질적 부상으로 꿈을 접고 양아치 같은 삶을 살던 규혁(정진운 분), 점프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공을 잡아본 일 없는 순규(김택 분), 길거리 농구만 줄기차게 해왔던 강호(정건주 분), 농구를 사랑하지만 만년 벤치멤버로 경기에 나서본 적 없던 재윤(김민 분) 등등이 모두 만화 같은 캐릭터다.
 
뿐인가. 닥쳐온 위기부터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가며 예고된 무대로 전진하는 모습이 모두 어디서 수도 없이 봐온 청춘오락영화의 모습을 띄고 있다. 심지어는 감독과 선수들이 갈등하다 뭉치는 과정까지도. 신선함도, 구체적 설득력도 빠진 이야기는 그러나 침몰하지 않는다. 특히나 그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역전된다고 보아도 좋을 만큼 만족스러운 감상을 느낀다.
 
리바운드 스틸컷

▲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E&A

 
실화가 가진 놀라운 힘
 
영화는 전형성과 클리셰적 전개를 오로지 한 가지 무기로 돌파한다. 바로 실화가 가진 힘이다. 예선전부터 4강과 결승에 이르는 여러 경기가 영화 중반 이후를 지배한다. 처음엔 선수를 모으고 다음으로는 예고된 실패를 겪으며, 그 다음엔 재기를 해내고, 마침내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가장 오래된 풀이법인 기승전결의 사단구성을 채택한 작품이다. 자연히 중반 이후로는 거듭된 경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데, 매 경기마다 어려움을 겪지만 어떻게든 이겨낸다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슬램덩크>나 할리우드 농구영화들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이겠으나 농구경기의 연출은 여러모로 아쉽다. 현장감과 박진감이 떨어지는 촬영과 편집, 연기가 모두 그렇다. 경기 자체의 묘미를 살리는 데도 상당부분 실패하여 비슷한 류의 영화 중 이보다 못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영화는 분명한 승부수를 가지고 있다. 그건 결국 실화다. 이야기의 막판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을 결승전을 영화는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경기 전반은 여전히 아쉽지만 이 사실이 실화임을 일깨우는 결말부는 그 노골적 신파성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힘을 발휘한다. 최약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여건이 좋지 않은 팀이 교체선수도 없이 결승까지 오르고, 후반전엔 두 명이나 퇴장 당한 가운데 세 명이서 경기를 풀어간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호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한계와 맞닥뜨리는 이 이야기가 실화임을 드러낼 때, 그 사실을 얼마간 알고 있던 이조차도 감동을 느낄 밖에 없다. 제작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영화의 마지막 순간 실제 사진과 배우들의 모습을 맞대는 연출을 시도하는데 이 또한 성공적이다. 감동을 증폭시키는 음악과 결말부의 감동만으로 영화는 한국 청춘 스포츠물의 역사에 나름의 이름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리바운드>의 전형성과 노골적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리바운드 스틸컷

▲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E&A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리바운드 장항준 농구 정진운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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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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