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2 10:42최종 업데이트 24.04.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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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지난 15일 "시민청으로부터 <퀴어문화축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화의 힘> 토론회의 대관을 취소당했다"라고 밝혔다. ⓒ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지난 19일 '퀴어문화축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화의 힘' 토론회가 낙원상가 엔피오피아홀에서 열렸다. 그런데 이 행사는 원래 서울시청 지하에 위치한 시민청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조직위)의 입장문에 따르면 행사 일주일 전인 지난 12일 시민청으로부터 일방적인 취소 통보가 전달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위 행사가 '정치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청은 조직위 측이 신청서를 허위로 제출했으므로 이미 완납한 대관비의 20%는 돌려줄 수 없다고 전했다. 행사의 대외 홍보 내용이 제출한 신청서와 다르다는 것이 근거였다.


신청서와 행사의 대외 홍보 내용이 얼마나 달랐기에 허위라는 판단을 내린 걸까. 조직위가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신청서 상의 행사명은 '축제: 민주주의를 이루는 시민의 힘'이었으며 내용은 '전국 비영리 민간 축제 사례발표'였다고 한다. 그리고 섭외가 완료된 후 확정된 행사의 제목은 '퀴어문화축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화의 힘'이며 행사 내용은 동일한 기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상의 입장을 종합하자면 신청서와 실제 홍보 내용의 차이는 '퀴어 문화'가 들어간 것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퀴어 문화'에 기반한 것은 축제가 될 수 없는가. 민주주의를 이루는 시민의 힘이 될 수 없나. 성소수자(퀴어)는 시민이 아닌가. 같은 내용도 왜 '퀴어 문화'가 붙으면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그건 차별이 아닌가?

'정치적 의도 행사' 금지? 문제적 규정
 

서울시청 ⓒ 권우성

 
두 번째로 이 행사가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대관을 취소한다는 것도 의아하다. 애초에 시민청이 규정하는 대관 불가 기준 중 하나인 '정치적인 의도의 행사'는 실체가 모호하기 짝이 없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행사의 대외 홍보 전까지 대관안내에 소개된 절차에 따라 대관 심의·허가와 대관료 납부까지 진행되었다면 시민청이 신청서 상의 행사를 대관이 불가능한 행사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축제'도 '민주주의'도 '시민의 힘'도 시민청 규정에 어긋나는 '정치'에 해당하지는 않았다는 뜻일 텐데 여기에 '퀴어'가 들어가면 왜 달라지는가. 하지만 조직위 측의 입장문을 보았을 때, 왜 퀴어가 문제적 정치성을 가진 단어인지에 대해 시민청에서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 여기까지 읽었다면 유추가 가능하겠지만 사실 시민청 운영 규정 중 '정치적인 의도의 행사'를 불허한다는 부분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잠시만 검색해보아도 근래에 시민청에서 다양한 주제의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국가와 시의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는 정치적이지 않은 건가. 모든 정책에는 들어가는 예산이 있다는 점에서 얼마만큼의 공적 자원을 투입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정책에는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시민들은 공익적 관점에서 이를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언급한 정책의 모든 성격은 정치적이다. 즉 시민청에서 지금껏 열린 행사들 중 '정치'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 꽤나 많았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보여준 '차별의 정치'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 신규 브랜드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리하자면 시민청이 불허한다는 '정치적인 의도의 행사'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하기에 이 규정은 자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많다. 지금껏 정치성을 가진 여러 행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열렸지만 퀴어 문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힘을 실현하는 사례를 논하는 토론회만 금지된 것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역설적인 것은 이런 서울시의 행동이야 말로 사실은 매우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정치적 행동은 '정치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괜찮을지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매우 질이 낮고 유해하다. 정치적으로 '유해한 집단'을 판별하여 이들의 공공 공간 진입을 선택적으로 막아버리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집단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이거나 그간 서울시에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은 쪽이라는 점에서 서울시의 행동은 매우 문제적이다.

사실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광장·공공시설·대중교통과 같은 공간들은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공중화장실 사용자를 성별이분법에 속하는 이들로만 제한하는 정치적 선택은 그 이분법에서 벗어난 트랜스젠더나 논 바이너리(여성/남성으로 구분된 이분법적인 성별정체성이 아닌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를 공중 화장실에서 배제한다.

짧은 머리를 하고 치마를 입지 않는 등 성별이분법에 따른 성역할을 따르길 거부하는 시스젠더 여성들도 이런 화장실에서 다른 사용자들에게 공격을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불평등한 이동권에 저항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어떠한가. 저항의 의지를 드러낸 순간 이들은 '일반 시민'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어 겨우 지하철에 탑승하는 정도의 시위조차도 계속 막히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대중교통에 진입하는 것조차 금지되고 있는 셈이다. '불온한 정치적 존재'로 지목된 성소수자들의 축제가 매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시청광장 개최에 실패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서울시, 기본이 안 되어 있다

공공 공간에 누구를 들여보내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 여기에는 늘 기준이 있기 마련이고 결국 누군가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선택은 매우 정치적이다. 그리고 이 '정치적 선택'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근거한다면 이는 전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서울시는 시민청에 '정치적 행사'를 진입시키지 않는 규정을 통해 그 공간이 중립적이고 비(非)정치적인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건 서울시가 소수자를 배제하는 차별에 근거한 정치를 통해 그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사례로 든 것처럼 이러한 악성 정치는 시민청 뿐만 아니라 서울의 여러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다양한 정체성의 시민들이 모이고 서로의 존재를 축복하며 평등을 실현시켜온 행사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행사는 늘 개최에 있어서 혐오 집단과 서울시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며 민주주의를 이룩할 문화의 힘을 논하고자 했지만, 소수자의 존재를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차별의 정치에 의해, 원래 사용하려던 공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차별의 정치'의 주체가 다름 아닌 서울시라는 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평등과 차별 없는 민주주의를  누구보다 추구해야 할 주체가 오히려 이를 나서서 박살을 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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