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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언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으로 알려진 그곳에 경원대학교 해외봉사단인 아름샘이 지난 2월 10일 열흘간 봉사를 다녀왔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봉사단원들은 2010년 11월 선발돼 3개월간 준비기간을 가졌다.

봉사단 이름인 '아름샘'은 아름다운 샘을 뜻한다. 아름샘의 모토는 '마르지 않는, 샘솟는 사랑'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름샘이 동티모르에 남겨놓은 것이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까지는 못 되더라도 현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그리고 이 글이 동티모르 소식에 목말라 하는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주

포로스의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늘 즐겁다.
 포로스의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늘 즐겁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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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는 국민생활수준이 낮고 사회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기 힘들다. 그나마 교육을 받는 아이들조차도 학교에서는 예체능 교육을 하지 않아 다양한 활동을 해볼 기회가 적다. 그래서 아름샘 봉사단원들은 가면 만들기, 율동, 볼링, 제비뽑기 게임, 스크래치 그리기, 종이접기 등을 준비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예체능 교육활동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했다.

봉사단이 교육활동을 진행하게 될 포로스 초등학교는 우리가 숙소로 사용하는 라우템 주 도서관에서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야 만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마을로 이어진 유일한 길을 지나가는데 안 그래도 좁은 길가에 가축들이 누워있다. 닭이나 염소는 차가 오면 도망가지만 조금 큰 돼지나 말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가축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교육활동은 5명이 한 팀이 되어 한 학년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포로스 초등학교는 2부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봉사단원들은 오전엔 1, 2, 4 학년을 교육하고 오후에는 단원 중 일부는 노력봉사를, 나머지는 3, 5, 6학년 교육봉사를 하러 다시 학교로 가야 한다.

포로스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예쁘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한다.
 포로스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예쁘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한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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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포로스 초등학교. 버스에서 내려 학교를 바라보니 벌써부터 아이들이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서 기대에 찬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교실에 들어서니 "본디아!(Bondia, 동티모르어로 '안녕')"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첫날에는 각자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이들은 쑥스러운지 모기만한 소리로 이름을 말했다. 가면 만들기 활동을 할 때에는 고체풀을 처음 보는지 손가락에 풀을 묻혀서 맛보는 아이도 있었다. 로스팔로스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축들과 드넓은 잔디를 뛰노는 포로스의 아이들. 더운 날씨에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사용하는 도서관의 딱딱한 맨바닥에 누워 자느라 피곤하지만, 우리와의 활동을 기대하는 포로스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활동준비를 하게 된다.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이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거리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울고, 화나서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고... 초등학교 1학년은 무서워

예상치 못한 일이 난무하는 1학년 교실. 1학년 교육활동을 할 때면 단원들은 잔뜩 긴장하게 된다. 사실 1학년 아이들은 말이 초등학교 1학년이지 알고 보면 5~7살의 유아들이다. 우리가 준비해 간 활동은 이름표 만들기, 모자이크, 가면 만들기 같은 그리는 활동이 많았다. 동티모르에서 지역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는 NGO단체로 우리의 동티모르 봉사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지구촌 나눔운동' 간사님은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하니 샘플을 보여주거나 그림 그릴 주제를 정해주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첫째 날은 이름표 만들기를 진행했는데 봉사단이 샘플을 보여주며 크레용으로 이름표를 꾸미라고 하자 이름까지 샘플 그대로 따라 그린다.
2학년만 되도 집, 차, 나무를 쓱쓱 잘도 그리지만 1학년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너무 산만해 그림은커녕 집중시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그것까진 괜찮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첫날부터 터졌다. 이름표 만들기를 한창 진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흑흑 우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밀리카가 울고 있었다. 이름표를 다 만들면 흰색이나 청색의 끈을 고르게 해서 원하는 색으로 이름표 끈을 달아주었는데 밀리카가 "난 흰색 끈을 갖고 싶은데 선생님이 청색 끈을 줬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겨우 밀리카를 달래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이번엔 1학년 교실의 무법자, 안토니오가 다른 친구들의 크레용과 풀을 빼앗고 있었다. 안토니오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더니… 헉! 이럴 수가, 잔뜩 화가 나서는 책가방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지 빠르다더니 반항하는 시기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 단원들은 당황했는데 평소에 자주 일어나는 일인지 1학년 담임선생님은 태연자약하시다. 이렇듯 예측 불가능한 1학년 교실. 그래도 뭐든지 따라해 보려 하고 오후 교육시간에 언니, 오빠들의 수업을 구경하러 다시 학교에 놀러오는 귀여운 1학년 꼬마들을 만나는 것은 교육활동의 큰 즐거움이었다.

동티모르 포로스 마을의 최신동요가 된 '곰 세마리'

곰 세마리 율동을 배우는 중. 아이들도 재밌어 하지만 현지 선생님들도 흥미로워 하시면서 율동을 따라해 주셨다.
 곰 세마리 율동을 배우는 중. 아이들도 재밌어 하지만 현지 선생님들도 흥미로워 하시면서 율동을 따라해 주셨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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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을 위해 또 준비해 간 것이 곰 세 마리 동요와 율동! 사실 한국에서 곰 세 마리 동요에 맞춰 율동을 연습할 땐 '이걸 어떻게 해. 유치원 때 이후론 율동해 본 적도 없는데' 하는 생각에 다들 민망해 했었다. 그런데 포로스에 오니 아이들 앞에서 모범적인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는지 모두들 그 어느 때보다 깜찍발랄하게 율동을 선보인다.

음악에 맞춰 한 동작씩 보여주고 가사 뜻을 알려주었다. 동티모르 아이들은 곰을 모른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서 곰을 소로 바꾸어 설명했다.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현지인인 돌리와 오따, 마틸데가 떼뚬어로 아이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봉사단원들이 워낙 적극적으로 율동을 하니 처음엔 수줍어하던 아이들도 음악이 나오면 열심히 봉사단을 따라 율동을 한다. 가사가 단순해서 그런지 벌써부터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도 있다.

4학년 율동시간에는 아예 'Gom semariga(곰 세 마리가)...'라는 식으로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옮겨 칠판에 적어주었더니 아이들이 공책에 적어서 외워오기까지 했다. 곰 세 마리 노래는 삽시간에 온 아이들에게 퍼져 곰 세 마리 노래를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곰 세 마리는 2011년 2월, 포로스 마을을 강타한 최신동요가 되어버렸다.

22명 아이들 몰래 벌인, '볼링게임 승부조작사건'

아이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볼링 게임
 아이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볼링 게임
ⓒ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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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통에 물을 담아 만든 볼링핀. 생수통을 주워오느라 밤중에 쓰레장까지 다녀왔지만 재밌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보람이 있었다.
 생수통에 물을 담아 만든 볼링핀. 생수통을 주워오느라 밤중에 쓰레장까지 다녀왔지만 재밌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보람이 있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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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셋째 날인 2월 16일, 2학년 교실에서 볼링 게임을 진행했다. 원래 계획했던 페이스페인팅 활동을 체육대회 날로 미루고 급하게 내놓은 대안이 볼링 게임이었다. 활동 전날 밤, 볼링핀을 만들기 위해 쓰레기 장에 가서 버려둔 생수통 20개를 주워왔다. 1.5리터 생수통의 4분의 1정도를 물로 채우니 금세 볼링핀이 만들어졌다.

다음날 아침, 20개의 생수통 볼링핀과 공 두 개가 담긴 커다란 박스를 들고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22명의 아이들을 11명씩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볼링 게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자는 청팀의 로말도와 백팀의 루카스. 두 아이가 공을 손에 들자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떠난 공이 생수통 볼링핀을 와르르 무너뜨리자 양 팀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아이들은 금세 볼링에 재미를 붙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양 팀의 경쟁이 과열되었다. 청팀인 아데리토는 자기 팀 선수가 백팀 선수보다 볼링핀을 더 많이 쓰러뜨릴 때면 백팀 진영으로 가서 만세를 불렀고 루벤과 헬더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약을 올렸다.

두 번 게임 모두 2:0으로 청팀이 승부를 굳혀나가자 백팀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쯤되면 아무래도 백팀의 사기를 올려줄 약간의 승부조작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단원들은 쓰러진 볼링핀을 다시 세우는 척 하면서 백팀 쪽 볼링핀이 잘 넘어가게끔 안에 들어 있는 물을 조금씩 버렸다. 그리고 나서 태연하게 다음 주자를 앞으로 불렀다. 백팀의 주자는 2학년의 젠틀맨 시도니오. 시도니오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스친다. 그리고 마침내 공이 굴러가는 순간, 시도니오의 공이 백팀의 볼링핀 열 개를 전부 쓰러뜨리자 백팀 진영에서 "와!"하는 탄성소리와 함께 서로 얼싸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청팀에겐 미안하지만 백팀의 사기를 올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2:1로 청팀이 이겼지만 백팀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그리고 봉사단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시도니오는 일약 백팀의 히어로가 됐다.

"젊은이들, 땅은 꼬챙이로 파야하는 거야"

모따라 마을 농장에 나무 울타리를 심는 활동. 2인 1조가 되어 다들 열심히 울타리를 심었다.
 모따라 마을 농장에 나무 울타리를 심는 활동. 2인 1조가 되어 다들 열심히 울타리를 심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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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교육활동이 끝나고 점심식사 후, 봉사단원의 행선지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단원 중 일부는 노력봉사활동을 하러 모따라 마을로, 나머지는 오후 교육활동을 하러 다시 포로스 초등학교로 들어갔다.

모따라 마을에서 할 일은 가축의 농장 침입을 막기 위해 나무 울타리를 심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에 내려 다시 트럭으로 갈아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면 모따라 마을 농장에 닿는다. 트럭에서 내린 봉사단원들에게는 삽이 하나씩 주어졌다. 남자 단원들이 나무를 가져 오면 여자 단원들은 나무를 미리 파놓은 구멍에 심고 흙으로 다져 고정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한 번밖에 개간하지 않아서 그런지 흙이 너무 단단해 울타리를 심을 구멍을 파기도 어려운 데다 흙을 덮고 다지는 작업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툴게 작업하고 있는데 우리를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현지 마을주민들이 삽 대신 쇠로 된 길쭉한 꼬챙이를 가져와 땅을 파시는 게 아닌가.

처음엔 '우리가 삽을 가지고 있어서 쇠꼬챙이를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죄송한 생각이 들어 삽을 건네드렸더니 예의상 받으셨다가 다시 쇠꼬챙이로 땅을 파신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삽으로 파는 것보다 쇠꼬챙이를 이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울타리를 심을 구멍은 약 1m정도 깊이로 파야 하는데 이 작업을 하기에는 표면적이 넓은 삽보다 길고 가느다란 쇠꼬챙이가 적합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일부 봉사단원들은 모따라 마을 농장처럼 기름지지 않은 땅은 단단해서 파기가 힘들기 때문에 삽보다는 오히려 흙을 잘 부술 수 있는 쇠꼬챙이가 더 유용할 거란다. 처음에는 쇠꼬챙이를 무시했었는데, 이 작업을 할 때는 삽보다 쇠꼬챙이를 쓰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땡볕 더위 아래서 일하다보니 얼굴과 팔다리가 금세 벌겋게 익는다. 한참 동안 땀을 흘린 후에 주어진 잠깐의 휴식시간. 봉사단은 간식으로 나온 사과 한 알씩을 받아들었다. 동티모르에 온 뒤 늘 삶거나 튀긴 야채만 먹다가 처음으로 받아든 소중한 과일. 한국 사과보단 훨씬 작지만 땀 흘린 후에 먹어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달고 맛있게 느껴진다. 노력봉사를 다녀온 후 로스팔로스에 오고나서 처음으로 머리를 감았다. 처음에는 좁은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을 엄두가 안 나 모자를 쓰고 버티려고 했는데 온 몸에 땀을 흘리고 나니 옆에서 자게 될 동료 단원들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같이 봉사활동을 온 다른과 후배 미연이가 머리에 물을 부어주어 깨끗이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아, 개운하다.

울타리를 심는 노력봉사활동 중 잠깐 가지게 된 휴식시간. 간식으로 받은 사과를 먹을 때 정말 행복했다.
 울타리를 심는 노력봉사활동 중 잠깐 가지게 된 휴식시간. 간식으로 받은 사과를 먹을 때 정말 행복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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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태그:#동티모르, #아름샘, #경원대, #해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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