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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비평의 시작은 그 대상이 문학이든 영화든 미술이든 정치든 사회든 교육이든, 그 내재하는 현상 속에서 존재하는 하나 이상의 구조를 발견해 내고 그 구조 속에서 공통점을 이루거나 혹은 대립각을 형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분석된 요소와 그것들이 이루는 구조에는 반드시 작가나 감독, 혹은 무형의 집단세력, 계층 등에 의해 담지 된 의미가 존재하며, 그러한 의미를 비평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 이론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비평이라는 장르에 대한 내 개인적인 정의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 시작한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무슨 위에서 이야기한 소설 속의 구조와 그 구조에 담긴 작가의 의미를 완벽하게 파악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려움을 실감하게 한 작품이긴 했지만, 적어도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자 함에 있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기에 하는 말이다.

"농담"은 "거짓말"과 달리 화자와 청자 모두가 "사실이 아님"을 아는 상황에서 전개되는 "거짓" 된 말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농담은 현실에 대한 유머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필요악을 담지하는 비유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본,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농담"은 바로 가족주의인 것 같다.

박완서는 "작가의 말"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것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 더욱 깊이 배어든 작가의 회의는 자본주의라기 보다는 가족주의인 것 같다. 일흔에 이른, 우리 사회를 70년이나 겪은 노 작가에게서 이 정도의 가족주의에 대한 회의를 엿볼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기에 더욱 놀랍다.

소설의 이야기는 크게 심영빈의 불륜과 그를 둘러싼 가족사, 그리고 영빈의 매제인 송경호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송씨 집안의 이야기, 이렇게 두 축으로 구성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영묘(영빈의 친동생이자 송경호의 아내)의 시집과 친정 이야기인 셈이다.

박완서는 이 두 집안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개개인의 존엄과 개성, 자유가 얼마나 짓눌리고 있는지 논파해 나간다. 특별한 비평적 시선 없이도 가족주의 속에서 매몰되는 개개인을 보며 가슴아파할 수 있음은 100% 이야기꾼으로서의 박완서의 자질일 것이다.

그것을 더 빛내 주는 것은 영빈의 불륜 대상인 현금과 영빈의 형 영준이다. 영빈과 현금의 관계는 마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연희와 준영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가족"이라는 소규모의 국가에서 독립된 인격간의 관계는 자유로 충만하며, "가족"내에서 짓눌리고 억압된 개인을 부활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일찌기 도미함으로써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조기에 내려놓은 영준의 존재 역시,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개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보여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현금 역시 결정적일 때 영빈의 아기를 갖고 싶어한다는 점이나, 영준 역시 자신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모교에 10억을 기부한다는 명목으로 귀국해 가정의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에서 이들 역시 완전히 가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함을 알 수 있다.

"가족주의"는 본질적으로 파시즘적이다. 본질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이 파시즘은, 논리와 친밀하진 않지만 대중의 일반적인 일상과 친밀하다. "가족"이라는 대의 앞에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의 일상사는 자유롭지 못하고, 이 대의는 대의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삶의 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개개인의 삶을 억압하며 그것에 반하는 어떤 논리적 반박도 제압한다.

요즘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들 역시 "가족주의"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그 규모가 방대하여 개개인들의 일상적 삶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함에 반해, "가족"은 이 땅을 살아가는 그 사람의 삶 자체에 직접적이고도 강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완서의 이야기는 이 어려운 주제를 놀랍도록 간결하게 풀어내 독자들의 가슴에 공감을 준다. "효"라는 대의 앞에서 끝내 자율적으로 삶의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 경호와 영묘, 늘상 어머니 눈치만 보게 되는 영빈, 가장으로서의 책임, 영묘와 그 동서들간의 갈등, 영묘와 시어머니간의 갈등, 영빈과 수경의 갈등.

모든 문제의 기저에는 자본주의가 아닌 가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가족주의 속에서 짓눌리는 우리 삶의 현실을,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박완서는 알기 쉽게 폭로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농담 - 개정판

박완서 지음, 실천문학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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