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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로로 확정된 직후 한 당직자를 껴안고 기뻐하고 있다.

단일후보 노무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민주당과 국민통합21 사이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당초 1차 여론조사가 끝나더라도 역선택 방지 장치에 따른 무효 가능성, 조사결과를 둘러싼 불복시비 등으로 우여곡절이 있으리라던 일반적 관측과는 달리, 단일후보 발표와 승복 입장 발표는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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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단일후보 확정됐다 예상엎고 여론조사 2곳 모두 승리 정몽준 "노 후보 승리 축하한다"

여론조사 결과 철통같은 보안
TV와 <오마이뉴스> 신속보도 인상적

필자는 발표 직전까지 발표 내용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심야에 두 후보 진영의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발표 15분 전까지도 양당 후보 주변의 관계자들조차도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평론을 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로서도 속수무책의 상황이었다. 조사결과에 대한 처리에 있어서만은 철통같은 보안이 지켜진 셈이었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신속성을 과시하던 <연합뉴스>조차도 발표가 있기 전까지 조사 결과에 대한 사전정보를 보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의 인터넷 사이트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오마이뉴스>만이 노무현 후보가 다소 유리할 것이라는 발표 현장 주변의 이야기들을 발표 직전에 전하고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섰다는 내용이 보도된 것은, 필자가 파악한 범위에서는 TV3사, 중앙일간지의 인터넷 사이트들 통털어 <오마이뉴스>가 가장 먼저였다. / 유창선 기자
24일 밤 12시에 기자회견이 시작되는 순간, 민주당의 신계륜 협상단장과 국민통합21의 민창기 협상단장의 표정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를 읽을 수는 있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신계륜 단장의 표정에는 약간의 여유가 돌았던 반면, 민창기 단장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예고한 대로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였다.

무엇보다 신속한 발표와 승복의 과정은 심야의 TV를 지켜보았던 국민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침 24일 각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대부분 두 후보 사이의 오차범위 내의 접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 터라, 과연 탈락한 쪽의 깨끗한 승복이 가능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과연 기자회견에서 단일후보 결정합의까지 발표될 것인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정몽준 후보 '승복'...후보단일화 최대 고비 넘어

그러나 국민통합21의 민창기 단장이 직접 "단일후보로 노무현 후보가 결정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순간, 단일후보 결정의 매듭은 지어질 수 있었다. 민 단장은 이어 결과에 대한 승복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잠시 후 국민통합21 당사에서는 단일후보에서 탈락한 정몽준 후보가 기자회견을 갖고 승복 의사를 밝혔다. 비록 침통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의 최대 고비를 넘게 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승자가 되었고 패자가 되었느냐에 상관없이 이같은 깨끗한 승복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페어플레이의 모습으로 다가올 만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정몽준 후보에게 "월드컵을 이끈 스포츠맨답다"는 덕담을 하기도 했다. 그 동안 경선 불복, 규칙 위반같은 정치권의 온갖 '더티 플레이'에 염증을 느껴온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만의 '페어플레이'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바로 당일까지도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벌였고, 피 말리며 결과를 기다리던 당사자가, 자신의 탈락 결과를 곧바로 받아들이고 승복한다는 것이 사실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 후보가 보여준 흔쾌한 승복 자세는 높이 평가해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되자, 환호하는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 및 당직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같은 승복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정치문화가 적어도 규칙불복 행태만큼은 설 자리가 없을 정도까지는 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에 불복했던 이인제 의원의 정치적 위상이 추락하고 이제는 갈 곳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상황을 보면서, 이제 승복의 문화만큼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대선판도가 급변하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1강2중 구도가 해체되고 양강구도가 등장하게 되었다. 정몽준 후보는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살려주고 자신은 무대에서 사라지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노무현 후보 입장에서는 한때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자리했던 후보단일화가 거꾸로 자신을 다시 살려주는 전기가 된 셈이다. 국민경선에서의 후보 선출 이후 계속적인 지지율 하락을 겪어야 했던 그의 입장에서는, 이번 후보단일화야말로 '노풍(盧風)'을 다시 불게 할 수 있는 전기가 된 것이다.

후보단일화 시너지...노풍 재점화의 길 열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을 경우에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보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발동한다면 노풍이 다시 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열렸지만, 판세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 앞으로의 판세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하기에 달렸다는 점이다. 그간의 과정에서 노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던 데에는 다른 무엇 이전에 노 후보 자신의 문제가 큰 요인이 되었듯이, 노 후보 자신과 민주당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그의 지지율 추이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내부적으로는 그 동안 분열되었던 대오를 다시 추스리는 한편, 이제 국민통합21까지도 껴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 후보의 지도력과 포용력이 어떻게 발휘될지 또한 관심사이다.

둘째, 한나라당의 대선전략의 수정이라는 변수가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이제까지는 정몽준 후보를 더 의식하며 대선전략을 짜왔었다. 그러나 이제 노무현 후보와의 양자대결구도를 맞게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노픙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 다시 보혁구도로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한나라당의 대응전략이 새로운 정치의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포지티브한 경쟁전략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는 보수화전략으로 갈 것이냐를 놓고 당내 논란도 있겠지만, 박빙의 판세가 지속된다면 보·혁구도론이 필승전략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커보인다.

▲ 25일 자정께 신계륜 민주당 협상단장이 합의 원칙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민창기 국민통합21 협상단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셋째, 노무현-정몽준 두 사람 사이의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변수가 또한 있다. 정몽준 후보가 일단 승복했다고는 하지만, 양당의 공조를 가로막을 요인들이 많은 편이다.

무엇보다 이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국민통합21의 구성원들의 마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도 관심사이다. 그들 역시 대선 이후의 입지를 생각하면 향후 입지 보장을 전제로 하는 공조체제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반대로 그같은 과정에는 여러 암초가 자리하게 될 위험이 크다.

노무현-정몽준 손잡고 전국 누비게 될까

결론적으로 노무현-정몽준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전국을 누비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이번 후보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히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양측 간의 공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후보단일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대선판세는 여전히 유동적인 가운데 대혼전 양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 노 후보의 초미의 과제는 후보등록일 전에 발표될 마지막 여론조사들에서 단일후보로서의 변화된 지지율을 입증하는 일이 될 것이다.

16대 대통령선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 봄 국민경선 드라마로 시작되었던 이번 대선은 노풍, 정풍의 과정을 거치며 이제 후보단일화를 통한 대혼전의 상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난 봄에 시작된 정치 드라마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12월 19일,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숨막히는 승부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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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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