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시대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등의 작품을 유배문학이라 이름 붙인다면 근·현대 문학 가운데 '빵(교도소의 속어)문학'이라는 장르도 있을 수 있지 않나 싶다.

▲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책. 니체가 말한 피로 쓴 글이란 이 책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 강곤
이 '빵문학'의 특징을 들자면 세상과 격리된 가운데 행하는 글쓰기로 깊은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대부분이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을 치열하게 살아온 정치범들이 그 저자라는 점에서 높은 도덕성과 함께 여간해서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빵문학'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해왔다. 70년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그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깊이 있는 통찰과 시대의식을 던져주어 고민하는 청년들의 필독서가 되었다면, 박노해의 <참된 시작>은 후반부 투철한 계급의식에 비롯한 시편들이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혼란 가운데 세상으로부터 자신으로 회귀하는 시인의 변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90년대 후반 들어 뒤늦게 우리말로 출간된 서승의 <옥중19년>은 한국 행형사와 인권사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빵문학'과 그것을 낳았던 시대에 대해 가감 없이 기록함으로써 한 사람의 개인사를 역사로 편입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13년간 옥살이를 했던 황대권의 서신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 책은 본격 '빵문학'과는 조금 다른 차이를 갖고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야생초'라는 특이한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고 또 하나는 홍보 과정에서 '느낌표'라고 하는, 전례 없는 파괴력을 가진 매체의 힘을 빌어 '빵문학'으로는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는 점이 그렇다.

먼저 책이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었다는 것은 출판사에게는 큰 행운이지만 그것이 이 책이 만난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고 그보다는 <야생초 편지>가 갖는 내용상의 특성이 더 중요하리라.

▲ 재생용지로 만들어져 가볍다. 내용도 그렇게 보이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는 그 이상이다.
ⓒ 강곤
이 책은 그 동안 있어 왔던 '빵문학'의 범주(불행한 시대에 고통 받는 개인-개인을 성찰을 통한 세상과의 화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야생초'라는 소재에 집착함으로써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인 해탈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독자에게 다가서고 있다.

이러한 장점은 서술의 평이함이나 가볍고 빠르게 읽혀지는 속도, 편집에 있어서의 독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 등을 넘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빵문학'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그 새로운 가능성을 비췄다는 측면에서 매우 가치 있는 한 권의 책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관악주민신문에도 실립니다.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2012)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여기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