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오란 산수유와 백목련이 자태를 뽐내는 한 낮, 트로트의 신동 진욱(4학년)군을 찾아 만안 초등학교로 향했다. 신나게 공을 차거나 뛰노는 아이들로 학교 운동장은 시끌벅적하다. 한 아이에게 진욱이를 묻자, "곤지암 수련회 때도 '있을 때 잘해'를 엄청 잘 불러 인기 짱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산뜻하고 청결한 복도를 따라간 교실에는 청소 당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진욱이요, 춤 잘 추고 노래도 잘 하구 성대모사도 아주 잘해요. 맛있는 것도 잘 사주고 여자친구들 보호도 잘해요." 현민이와 지환이의 말에 급우들은 이구동성으로 진욱이가 같은 반인 것이 자랑스러운 듯 앞다투어 말한다.

교실에서 만난 진욱은 붉게 코팅한 머리에 귀걸이가 눈에 뛸 뿐, 용모 단정한 또래집단의 아이였다. 진욱에 대해 담임은 "학습시간이 부족해도 공부에 충실하며 성실"하다며 "사회성이 좋고 급우들간에 인기가 있어 반장이 되었는데 통솔력이 뛰어나고 매사에 적극적"이라며 극찬을 한다.

욱이는 진용원(46세)씨와 박명순(46세)씨 사이에서 태어난 3형제 중 막내로서, 큰할머니(90세)와 맏형 민(군복무 중)과 작은형 별(대학생) 틈에서 알콩달콩 귀염받는 사랑둥이다.

"태몽에서 실같은 사다리를 타고 한없이 올라간 곳이 천국이었지요. 청초한 햇살을 받으며 아름다운 꽃길을 하염없이 걸었기에 딸의 재롱을 은근히 기대 했었는데..."라며 엄마는 말문을 연다.

욱이는 93년 2.1Kg으로 작게 태어났지만 딸 못지 않은 애교 덩어리다. 3살 무렵 아장아장 시장까지 따라온 아이를 잃었던 생각을 하면 엄마는 지금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않는다.

4시간 동안 찾아 헤매다가 욱이를 발견 한 곳은 '쿵짝쿵짝' 음악이 울려 퍼지는 레코드 점 앞이었다. 애타며 헤매던 엄마와 대조적으로 아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 후로도 종종 화장품가게 오픈 행사장이나 음악이 흐르는 곳이면 으레 자석에 이끌리듯 욱이가 가는 장소임을 엄마는 직시하게 되었다.

동네에서도 욱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안녕하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는 기본이다. 곁에 있는 엄마에게조차 "도대체 저 애 엄마는 누구냐"고 물어 올만큼 인사 잘하기로 유명하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을 마주치자 "안녕하십니까" 두 손을 공수한 체 낭랑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선생님들은 그런 욱이를 보고 "옛말에 아이는 속으로 예뻐하고 겉으로는 엄해야 한다더니...가정교육이 참 잘 되었어"라며 동료들끼리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빠 역시 욱이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가정교육은 가혹하리만큼 엄하다. 가령 10분만 놀다 온다고 했는데 약속을 어겼을 때에는 가차없이 회초리를 든다. 아빠의 호령 앞에서는 욱이뿐만 아니라 형들까지도 죽는시늉이라도 할만큼 싹싹 용서를 빈다.

욱이는 "입싼 친구가 제일 싫다."며 좀처럼 밖에서의 일을 말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다. 얼마 전에는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아빠한테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은 날이 있었다. 다른 날과 다르게 억울해 하기에 사유서를 쓰게 하자, "할머니의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2정거장까지 걸어가며 도와 드렸다."는 것이다.

100여 곡의 노래를 자유자재로 부르는 욱이는 영리하고 다재다능한 아이다. 5살 때, 영어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만큼 웅변도 뛰어나게 잘 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빠는 욱이를 태우고 운전을 하며 수시로 남진의 노래를 틀었다.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 놀랍게도 욱이는 고개 흔들고 다리 떠는 모습까지도 가수 남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집안에서도 수저나 매니큐 등을 마이크 삼아 또랑또랑하게 노래를 불렀다. 엄마 친구인 최월례(국악인)씨가 놀러 왔다가 욱이의 재능을 발견하며 5살 때 사할린동포 위문공연에 동행했다. 욱이는 '꽃을 든 남자. 각설이 타령' 등을 거침없이 부르며 무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부 보조금으로 사는 영세한 노인들이지만 즉석에서 주머니를 털어 1천원부터 5천원까지 7만원이 모아졌다. 사탕을 한 움큼 쥐어 주기도 하고 심지어 3시간을 걸어가서 꽃을 사오는 노인들도 있었다.

이런 욱이의 재능은 유치원 때 KBS '그대로 멈춰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김방옥씨에게 발탁되었다.

홈쇼핑, 에너지절약 광고모델을 비롯해 각 방송사의 '뽀뽀뽀. 맑은 노래 고운 노래' 등 수 많은 어린이 프로에 출연을 했다. 연기 또한 능수 능란해 왕건. 도시괴담 등에 출연하는 아역 탤런트로서, 한국영화공사의 '바다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이 되어 육지를 모르는 미소년 연기를 거뜬히 해 냈다.

성인도 견디기 힘든 긴 수중촬영에 잘 견디어내자 여기저기서 칭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욱이는 탤런트란 이름보다 가수로 불려지길 원하기에 주로 트로트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에는 김경목 작사 작곡의 자신의 노래 '얄미운 여자. 꿈속의 여인'과 평소 즐기던 곡을 수록한 '욱이의 트롯 일기장' 음반을 내며, 한국 연예인협회에 최연소 가수로 등록이 되었다. 욱이의 타고난 끼는 '남인수 전통 트롯트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수준이다.

늘 바쁜 공연으로 학원은 엄두도 못 낸다. 집에서는 작은형이 종종 학습에 필요한 도움을 주지만, 친구들에게 숙제를 가르쳐 달라고도 말한다. 안 가르쳐 주면 "있을 때 잘해~" 노래로 응수하는 익살스런 아이다. 특히, 음악과 과학을 좋아하지만 모든 과목시험 성적이 좋은 편이라고 엄마는 귀뜸을 한다.

지난해에는 재일교포위문 공연에 동참했다. 일주일간 일본 무대를 열광시키자, "교포 세계에서는 나훈아씨가 우상인데, 그 다음이 너라"며 극찬이 쏟아졌다. "우리나라 명절만큼 교포세계에서는 광복절이 큰 비중을 두는 날이라"며 "금년 8.15에 초청할 테니 꼭 와 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욱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무척 좋아한다. 틈 있을 때마다 안양 6동 경로당에 가서 공연을 해주면 노인들은 하나같이 좋아한다. 군부대로 공연 갔을 때도 군인들은 환성을 지르며 난리가 아니었다. 안양 1번가 축제초청을 비롯하여 금년 5월까지 공연예약은 빈틈이 없는 상태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일단 무대에 서면 욱이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자재로 흔들며 신바람이 난다. 하지만, 땀을 쪽~ 흘리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맘은 애처롭기만 하다.

욱이는 "아무리 피곤해도 무대 위에 서면 신명이 나고요. 열광하며 박수 칠 땐 정말 기분이 좋아요. 버스를 타면 '너 TV에 나왔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요."라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라소니, 동물에 이르기까지 성대묘사도 잘 하지만, 공연 전에는 아무리 배고파도 물만 마실 뿐 긴장하며 참는다. 욱이는 수익금 중 일부는 옥천 보육원 골프부를 돕는데 지원하고 있다.

형들이 보고 싶다며 두 달에 한번은 보육원에 가서 함께 밥 먹고 골프도 친다. 보육원에 가면 유치원 아이들이 "오빠! 오빠" 부르며 언제 또 오느냐고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이 늘 아른거리는 욱이다.

아무리 늦게 잠을 자도 아침 6시30분이면 자명종처럼 어김없이 일어난다. 냉수 마시고 머리 손질하며 옷을 반듯하게 입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는다. 연습이라도 흥얼거리거나 대충하지 않는 것이 욱이만의 프로정신이다.

'트로트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라는 욱이의 말처럼 진욱이의 노래가 삶에 지치고 힘든 국민들의 마음에 잔잔한 청량제가 되어 주길 기대 해본다.

태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