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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음력 춘삼월 꽃내음 향그러운 봄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의 가슴도 기지개를 켠다. 이 새봄, 멀리서 마파람의 향기가 짙어오는데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이 시기에 냉이국의 고소한 향을 즐겼다. 하지만 그 좋은 냉이도 된장이 없으면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된장과 어우러진 고소한 냉이의 뿌리는 영양소를 듬뿍 담은 단맛을 내고, 은근한 봄 냄새를 전한다.

이렇게 한국의 음식에선 된장의 중요성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의 대표적 음식 중에는 김치와 함께 된장을 빼놓을 수가 없을 만큼 우리 민족은 된장, 김치와 함께 살아 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한국에선 언제부터 된장을 먹었을까? 기록이 없어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고구려에서는 장을 잘 빚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장을 먹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농경사회의 주식인 곡류로부터 취하기 어려운 단백질을 콩에서 섭취하는 지혜가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초·중기에 쓰여진 <구황촬요(救荒撮要)>의 조장법(造醬法)항과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의 장제품조(醬諸品條)에는 좋은 장을 담그는 방법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어서 한국 식생활에서 장류가 얼마나 중요한 식품이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제품조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아니 하면 좋은 채소와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설혹 시골 사람들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어도 여러 가지 좋은 맛의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김치는 어땠을까?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보면 <염지>라 하여 "무를 소금에 절인 음식, 겨울 내내 반찬되게 했다"는 글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엔 오늘날 총각김치와 흡사한 김치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여기에는 또 오이소박이를 비롯하여 동치미ㆍ배추김치ㆍ용인오이지ㆍ겨울가지김치ㆍ전복김치ㆍ굴김치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김치는 조선시대 고추의 영향으로 현대의 것과 비슷한 것으로 발전했지만 이전부터 우리 겨레는 김치와 유사한 반찬을 오랫동안 먹어온 것으로 추측한다.

▲ 김치에서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던 미군(강기철 그림)
ⓒ 강기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이렇게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된장과 김치를 냄새가 역겹다고 싫어했으며, 그것을 먹는 우리를 야만인 취급했다. 예전에 미군부대에 근무했던 카투사들의 얘기를 들으면 김치 때문에 미군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아 그때문에 어쩔 수없이 김치를 화장실에서 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학자들까지도 된장 속에 "아플라톡신"이란 발암물질이 있다고 해서 된장을 암을 일으키는 식품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메주의 곰팡이를 소금물로 씻으며, 햇빛에 말리고 숙성시킬 때 아플라톡신은 이미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스스로 무식함을 인정하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식품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말 된장과 김치가 건강에 좋다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밝혀졌을까?

쇠고기보다 더 좋은 된장

우선 된장에 대해서 살펴보자. 된장의 주재료는 콩이다. 노란 콩의 경우 단백질 41.3%, 지방 21.6%, 수분 9.2%, 섬유질 3.5%, 회분 5.8%, 칼슘, 인, 철분, 비타민B₁, B₂등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 있다.

쇠고기는 단백질이 18.6g 들어 있는데 반해 콩은 40g이나 들어 있다. 따라서 콩은 쇠고기보다 훨씬 좋은 영양소의 결집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한때 오로지 가축의 사료로만 쓰던 콩을 이제는 좋은 식품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것은 콩이 항암과 질병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다.

▲ 된장찌개
ⓒ 강기철
미국 알라바마 의과대학의 반즈 박사는 동양인에겐 왜 유방암, 심장질환이 상대적으로 적은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 동양인들이 즐겨 먹는 콩에 유방암을 억제하는 성분인 '아이소플라본 제니스틴'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텁스대학에서 "콩이 폐경기 여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임상실험"을 한 결과 환자들에게 동양인들의 섭취량과 같은 분량의 다양한 콩음식을 몇 달간 먹게 한 뒤 건강상태를 점검했을 때 폐경기증상을 앓던 환자들은 콜레스테롤치가 낮아지고, 골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반즈박사는 콩에 '아이소플라본', '트립신저해제', '사포닌', '피놀산', '피트산' 등의 다양한 항암제가 들어있는 귀중한 식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2일자 중앙일보 박태균 기자의 보도를 보자. 서울대 식품영양과 이연숙 교수는 "콩에 많이 들어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골다공증 예방 등 뼈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거의 없다"며 "미국심장협회는 콩을 즐겨 먹으면 건강에 해로운 콜레스테롤인 저밀도지단백(LDL)의 혈중(血中)농도가 낮아지고 건강에 유익한 고밀도지단백(HDL)의 농도가 높아진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또 같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들어있다. “학자들이 콩을 즐겨 먹는 국민에게 대장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 호르몬 관련 암의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주시하고 있다. 피부 노화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제호 교수는 폐경 여성은 매일 두부 2모씩을 먹거나 청국장, 된장국 등 콩음식을 즐겨먹을 것을 권했다.”

그럼 이 좋은 항암식품, 콩을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을까? 아무리 좋은 음식물이라도 소화흡수율이 떨어지면 문제가 있다. 콩의 소화흡수율에 대한 비교를 보면 생콩이 55%, 삶은 콩이 65%인데 비해 된장은 무려 85%에 이르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된장의 우수성이 여기서도 증명이 된다.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장독을 열어 놓았다. 그 이유는 항아리의 금줄로 쓰인 새끼와 함께 장독 속에 미생물이 들어가 잘 발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 겨레는 콩을 제대로 섭취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 된장이란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콩을 발효시키는 것은 곰팡이, 바실리스서브틸리스, 효모 등 세 가지라는데 똑같은 콩발효문화권인 일본과 네팔은 바실리스서브틸리스만, 인도네시아에선 효모만 쓰고 있다 한다. 그러나 유달리 우리는 세 가지 모두를 쓰고 있어 효과적으로 콩을 식품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숨쉬는 항암식품, 김치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땅속에서 김치를 꺼내 먹는 것을 본 서양인들은 한국인을 미개인라고 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장기술 즉, 땅속 김치가 가진 오색(五色)과 오미(五味)의 어우러짐을 모르는 소치인 것이다. 하지만 김치는 지금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김치를 먹음으로써 풍부한 비타민과 무기질(칼슘, 인 등)을 섭취하여 튼튼한 간장을 만들고, 대장에서는 젖산균이 음식찌꺼기와 결합하여 체내에서만 합성되는 비타민K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김치의 주요 부재료인 고춧가루 속에는 '캡사이틴'이란 성분이 들어있는데 동물실험에서 이 '캡사이틴'을 넣은 혈액 암세포는 세포벽이 굳어지면서 성장을 멈췄다고 한다.

잘 익은 김치는 일반 유산균 음료보다 유산균이 100배나 더 많아서 외부에서 침입한 이질균이나 장티프스균을 막아준다. 콜레스테롤이 뭉쳐있는 일반 쥐에 비해 김치를 먹인 쥐들은 혈장이 매끄럽게 청소된 것을 발견했으며, 간에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38%까지 낮아졌다는 보고가 있다. 또 김치를 먹었을 때 변으로 지방과 답즙이 많이 분비되는데 이 담즙은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

미국에서 인기 끄는 한국음식

▲ 미국 LA에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음식을 파는 우래옥
ⓒ 강기철
지난해 10월 16일자 중앙일보에는 유지상 기자의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다.

"콩을 발효시켜 만든 된장은 한국 음식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천연 조미료입니다. 기본 반찬인 김치도 몸에 좋은 발효식품이구요. 또 나물은 어떻습니까? 지져먹고, 볶아먹고, 삶아먹고… 이렇게 야채를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 나라는 없을 겁니다.

미국 상류층이 몰려 사는 베버리힐스에 분점을 낼 땐 주변 사람들이 무리라며 말렸죠. 하지만 지금 그 곳 손님 중 99%가 외국인입니다. 2~3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죠. 그렇다고 우래옥의 음식이 미국인 입맛에 맞춘 퓨전 스타일은 아닙니다."

미국 뉴욕과 LA의 한식 음식점 '우래옥' 사장 최영숙(51)씨는 16일 신라호텔 요리교실에서 주한 외국대사 부인 20여명을 모아놓고 한국 음식을 가르치면서 한식의 매력을 이렇게 자랑했다는 이야기다.

최 사장의 말은 한국 음식의 주체, 주인,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한국음식’을 내놓고 있다며, 한국산 재료와 양념을 쓰고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명제를 최 사장은 미국의 한복판에서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하겠다. 우리가 푸대접하는 우리의 문화가 미국인들에겐 대단한 것이 되고 있음이다.

문화사대주의에 밀려나는 우리 고유의 음식

▲ 일본의 된장, 간장을 사먹는 일부 문화사대주의에 물든 한국인
ⓒ 강기철
그런데 요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식품인 된장을 비롯한 장류의 수입이 연간 320만$, 지난 10년 새 20곱의 증가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된장, 김치 등 우리의 전통식품을 장악해 가고 있음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사대주의 정서에 우리의 맛이 밀려나면서 외화가 새나가고, 영양, 음식이 밀려나고,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된장에서 콩의 비율이 높을수록 항암성이 높다. 하지만 일본의 장은 기후와 땅의 조건 때문에 콩만으로는 잘 발효되지 않아서 쌀과 보리를 1/3이나 섞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비싼 일본 장을 수입해 먹는다면 그야말로 문화사대주의가 아닐까?

병원에 가면 모두가 아픈 사람이다. 환자뿐 아니라 그 식구들도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잘못된 식생활을 고쳐서 그 병을 예방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포기하고 있다.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무엇이 좋은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예전에 우리 겨레가 대대로 먹어왔던 식생활을 복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병으로부터 지켜낼 방법이다. 햄버거, 피자, 콜라 대신에 이제라도 우리의 된장, 김치 그리고 우리의 현미밥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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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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