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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시대 전통무예전의 포스터
ⓒ 이진욱
5월 31일 수원 화성 연무대, 현재 활터로 되어있는 이곳에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첨단 전자전의 시대에 칼부림(?)을 하는 무사들이. 그것도 500여 명씩이나 무사들의 칼끝이 햇살을 등지고 바람을 가를 때마다 신기한 듯 눈길을 보내는 시민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타져 나온다.

올해로 5회 째를 맞는 '정조시대 전통무예전'. 정조대왕은 화성행차시 이곳 연무대에서 군사 사열을 했는데, 이 행사가 오늘날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행사가 열린 연무대는 정조시대 대규모 군사훈련장이며, 정조의 화성능행차시 대규모 군사훈련, 사열을 하던 곳이다.

형식적으로는 정조의 군대 사열 행사의 재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각종 전통무예의 시범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 사단법인 24반무예협회, 한민족 전통마상무예협회 등 전통무예단체들이 모두 참가하고, 국방부 전통의장대·취타대 등도 함께 하여 전통무예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이다.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대한택견협회, 정조시대 정통무예전 집행위원회가 주관하였다. 행사 성격상으로는 관광상품성이 짙다. '무예 명인전'이나 '고수전' 같은 의미를 찾기에는 무리이다.

식전행사로 태장고등학교 취타대 공연, 애기택견 공연, 어린이 24반무예 공연, 검무 공연이 있었고, 본행사에서는 국방부 전통의장대·취타대의 공연과 18반무예 공연(시범), 택견 공연(시범), 마상격구·마상무예 공연(시범)이 있었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런 장면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24반 무예(二十四班 武藝)란
200년을 걸쳐 정조때 집대성된 조선무예

▲ 무예도보통지에 나온 그림

조선시대 정조의 명으로 1790년 장용영(당시 수원 화성 연무대에 주둔하던 부대)에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책을 간행하는데, 여기에 소개된 무예를 24반 무예라 부른다. '圖譜'는 어떠한 사물을 그림과 해설을 통하여 설명하므로써 계통을 세워 분류하는 것을 뜻한다. '通志'란 모든 것을 총망라한 종합서임을 뜻하고 있기 때문에 책이름만 보아도 무예, 기예를 그림을 통하여 설명한 종합서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무예도보통지는 소개된 모든 무예의 동작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그림과 더불어 설명되어 있다.

24반 무예의 뿌리는 선조때까지 올라간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무기와 기술이 정예화된 왜군의 침략을 받아서 참담한 경험을 하게 되고, 위협감을 느낀 중국은 병력을 파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당시 인재를 총동원하여 조선, 중국, 일본 3국 무예의 정수를 뽑아 독특한 무예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왜란, 호란을 거치면서 동양 3국의 모든 무예가 선보이고 이중 가장 우수한 무예들이 선조때부터 정조에 이르는 200여년간 집대성되어 이루어진 것이 24반 무예이다.

24반 무예는 지상무예 18기와 마상무예 6기로 나뉜다. 우선 검을 기초로 하는 본국검, 제독검, 쌍수도, 예도, 왜검, 쌍검으로 검법이 6가지 이며, 검 이외에 장창, 죽장창, 기창, 당파, 낭선, 등패의 창종류와, 삼국지에서의 관우가 썼던 월도, 협도, 그밖에 편곤, 공방, 권법 그리고 마상술 6가지 등 총 24가지 기예로 이루어져 있다.

24반 무예는 일제시대와 분단의 질곡 거치며 거의 잊혀질 위기에 있다가, 80년대부터 차츰 뜻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어현재 각 지역의 모임과 대학 동아리 등에서 활발한 수련과 보급활동을 하고 있다. / 이진욱

▲ 어린이 무사의 검법 시연 목검을 휘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 이진욱

흔히 칼을 쓰는 무술이라 하면 검도를 떠올리기 쉬우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검도와는 달리, 24반무예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실전을 통해 축적되고 정조대에 이르러 집대성된, 실용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우리나라 전통의 무예이다.

여기에는 지상에서 하는 본국검, 예도, 제독검 등의 무예와 말을 타고 하는 마상무예로 나뉜다. 한동안 잊혀졌다가 70년대 말부터 차츰 복원되어 오늘날엔 전국각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 김재성 사범의 무예춤 공연 '평화를 노래하는 검무'
ⓒ 이진욱
▲ 18반무예 시범
ⓒ 이진욱

택견은 이미 널리 알려진 맨손무예이며, 중요무형문화재 76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무예이지만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몸놀림, 격렬한 투기임에도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경기방법 등이 독특하다. 지금은 널리 보급되어 국민생활체육으로도 보급되고 해외에도 택견단체들이 설립되었다.

▲ 택견의 겨루기 시범
ⓒ 이진욱
▲ 국방부 전통의장대의 시범
ⓒ 이진욱

행사는 약 3시간 가량 진행되었는데,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여 보는 이들을 지루하게 한 점은 시정해야 할 것이다. 충분한 사전연습이 부족한 듯 싶었다. 하지만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면서 땀을 흘려 행사를 치렀다. 짚단 베기 시연을 한 사범들은 며칠동안 반복적인 동작을 연습했을 정도.

▲ 최형국 사범의 쌍검 시범. 양손에 칼을 들고 하는 쌍검은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 이진욱

흔히 볼 수 없는 마상무예를 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롭다. 말을 타고 적을 베거나 쓰러뜨리는 무예와, 활쏘기 시범 등은 사극에서 보았을 테지만, 마상격구라는 경기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다. 격구는 말을 타고 장시라는 채를 이용해 공을 쳐서 상대방의 문에 넣는 경기이다. 예부터 무관이나 귀족 집안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부예도보통지에도 격구는 무예가 아니나 무예수련에 필요하므로 싣는다는 단서가 나와있다.

▲ 마상무예의 베기 시범
ⓒ 이진욱
▲ 마상격구 시범. 공을 쳐서 상대방의 문에 넣는 경기이다.
ⓒ 이진욱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칼과 창, 맨손을 휘두르는 전통무예는 아직 그 혼을 잃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각 지역의 수련장, 전수관이나 대학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수련하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고, 해외에도 보급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우리 전통무예에 대한 연구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 베기 시범. 단순해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과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 이진욱

조상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고리로서의 전통문화, 전통무예 역시 오늘날 잃어버려서 안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임병양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24반 무예의 집대성이라는 보석으로 가꾼 선조들의 지혜는 정말 대단하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무예를 만나보자.

"무예는 전승되어야 할 훌륭한 문화적 유산"
[인터뷰]24반무예 최형국 사범

▲ 최형국 사범
ⓒ이진욱
양손에 칼을 들고 하는 쌍검이 주특기인 24반무예 최형국 사범. 그는 올해로 무예를 접한지 꼭 10년째가 된다. 1998년 사범 심사에서 장원을 했고, 1999년 고양시 지역축제극 ‘도원수 권율’(이윤택 감독)에서 일본무사를 무찌르는 조선무사 연기를 시작으로 정조시대 전통무예전 출연, 화성 백중제 검무(劍舞)시연, 국립극장 ‘전통무예제전’출연, 2002년 월드컵 공연 등 다양한 무대에 섰다. 작년에는 ‘수원 화성의 전통무예를 활용한 관광마케팅 전략’이라는 석사논문을 내놓았다. 훌륭한 전통문화인 우리 무예가 외면받고 있는 현실에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으기 위해 ‘관광마케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 대학시절부터 우리문화에 푹 빠져 지낸 그는 풍물패 활동을 하기도 한다.

정조시대 전통무예전을 준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서 했는지.

- 24반무예와 관련한 전체 의상 연출을 담당했고, 진행상 인원 통제, 전체 리허설 감독, 쌍검무 시범, 베기 시범을 했다.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 24반무예가 아직 그리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인원동원을 하기가 힘들었다. 재정적인 문제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무보수로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경기문화재단이나 수원시의 지원은.

- 주어진 예산이 너무 적었다. 이 예산은 대부분 전국에서 올라온 참가인원들의 차비, 식대 등으로 쓴다. 그러고 나면 중앙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사범들은 거의 돈한푼 안받고 땀흘려가며 행사를 치른다. 배정된 금액이 너무 적다. 경기문화재단이나 수원시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동원된 인원은 약 70명 정도이고, 함께 한 51사단, 국방부 의장대, 대학 동아리 등까지 하면 족히 4~5백명은 된다.

행사 결과에 만족하는지.

- 늘 아쉽다. 높은 수준의 훌륭한 시범을 보여드려야 하지만, 수련을 열심히 하고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숙련된 사범들은 적다. 그래서 대학생 동아리들이나 향토사단, 국방부 의장대 등이 대거 함께 출연하는 것이다. 앞으로 수준높은 사범들을 많이 모시고 기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진행상에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나 나름대로의 생각은.

- 전체 출연자들이 모여 당일 리허설 한번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난다. 너무 급하게 준비한 것이다. 상시적인 행사 조직위나 구성위가 구성되어 평소에 준비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흔히 알려진 검도와 24반 무예의 차이를 쉽게 설명한다면.

- 검도는 흔히 알려진 대한검도나 해동검도를 지칭한다. 이들은 한가지 검만을 사용한다. 24반무예는 도검, 칼류만 10가지이다. 창과 봉류가 8가지, 맨손(권법) 1가지, 마상무예 6가지를 포함하여 24가지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무과시험에도 있던 무예이다. 검도와 비교하기에는 훨씬 범위가 넓다.

작년에 낸 ‘수원 화성의 전통무예를 활용한 관광마케팅 전략’이라는 석사논문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 우리의 관광정책이나 상품은 겉에 보이는 것만을 상품화한다. 이것은 죽은 관광자원이다. 관광자원이 실제로 살아있는 것으로 되려면 유무형의 자원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화성에서 24반무예가 널리 행해졌다. 이러한 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때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무예를 익히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 무예 자체가 갖는 독특한 성격이 있다. 무예를 통해 자기수양 등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24반무예가)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우수한 것임을 수련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후대에 전승되어야 할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행사 중에 사회자가 우스갯소리로 ‘아줌마들 허리살 빼는데도 특효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현대인들에게 우리 무예를 홍보한다면 어떤 점을 이야기하겠나.

- (24반무예는) 실전에서 체화된 군사무예이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실질적인 자세들이 많다. 특히 허리를 비트는 등 몸을 유연하게 쓰는 자세가 많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전체자세만 1000가지가 넘는다. 이왕 운동을 할 것이라면 우리 무예도 배우면서 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또 각종 무기를 사용하면서 총체적인 무예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장점이다.

24반무예협회에서 속한 역할은. 그리고 현재 하는 일은.

- 현재 24반무예협회 중앙사무국 지도사범으로 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조선시대 검법(24반무예)을 지도한다. 수원의 ‘사이좋은 어린이집’에서 풍물강사를 하고, 택견강사도 한다.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는데 재택근무가 많기 때문에 무예를 할 시간이 된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중이다. 무예와 다른 분야를 접목시켜보려 하는데, 경영학, 체육학 등 어떤 분야로 접목할 것인지 고민중이다. / 이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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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을 하고 학교수업도 하며,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 (http://asteacher.ner)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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