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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조금씩 성격이 다른 소로우의 글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글들의 내용과 분량 그리고 씌어진 시기가 제각각이어서 어떤 일관성 있는 흐름이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시대를 앞서 살았던 지성 소로우의 탁월한 통찰력과 경이로운 관찰력을 읽을 수 있는 글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사소한 결점을 가리고도 남는다.

표제작인 <시민의 불복종>은 인도의 성자 간디, 한국의 함석헌 선생 등 세계의 많은 인권 및 사회개혁 운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글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만하다고 느꼈다.

<시민의 불복종>은 ‘국가(정부)가 개인의 양심에 비추어 옳지 못한(불의의) 행위를 저지르고 이를 권력을 통하여 개인에게도 강제할 때, 양심을 갖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또한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소로우 자신의 대답이라 하겠다.

양심을 지니고 있는 자유인이라면 누구나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불의의 정부에 대하여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부의 불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방조 내지는 조장하는데 자신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가 ‘정의에 의한 지배’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소로우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 중 하나인 투표도 일조를 하고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투표는 모두 일종의 도박이다. 장기나 주사위 놀이와 같다. 단지 약간의 도덕적 색채를 띠었을 뿐이다.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옳으냐 그르냐 노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투표자의 인격을 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지겠지만 옳은 쪽이 승리를 해야 한다며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 문제를 다수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임은 편의의 책임 정도를 결코 넘지 못한다.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접어놓은 페이지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 <시민의 불복종> 13쪽에서 -
이 얼마나 신랄하면서도 명쾌한 통찰인가! <시민의 불복종>에서 발견되는 소로우의 이러한 탁월하면서도 빛나는 통찰이 아직까지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한다. 그것은 <시민의 불복종>이 씌어진 지 150년이나 지난 아직까지도 그가 꿈꾸던,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고 개인을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국가’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국가가 가능하기는 한가? 나는 깊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하면 두번째 글로 수록된 <돼지 잡아들이기>는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만드는 코믹한 소품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생생한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글의 진행은 소로우가 소설을 썼더라도 상당한 재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문장가로서의 소로우의 진면목이 발휘된 글들은 역시 일련의 자연 에세이이며 이 책에 소개된 <가을의 빛깔들>과 <야생사과>는 그 백미라 하겠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월든>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만 그의 자연 에세이는 날카로운 자연에 대한 관찰과 함께 그 자신의 생생한 체험이 함께 녹아들어 있어서 마치 눈에 보이는 듯한,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한 실감을 읽는 이에게 전해준다.

9월말 꽃단풍나무로부터 시작되어 느릅나무, 사탕단풍나무를 거쳐 11월초 붉은떡갈나무로 마무리되는 북미의 화려한 가을의 색채를 눈부시게 묘사한 <가을의 빛깔들>은 우리의 고단한 마음까지도 화려한 단풍으로 물들여 놓는다. 그런가 하면 <야생사과>에서 보여지는 사과나무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놀라울 정도의 관찰력은 사과라 하면 ‘홍옥’과 ‘부사’를 떠올리는 것이 고작인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특히 어린 잎사귀와 가지를 먹어치우는 황소에 맞서서 자신의 생존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야생사과나무가 택하는 특별한 성장의 전략에 대한 글은 수 년 또는 수 십 년 동안 이를 지켜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경이로운 관찰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책 말미에 덧붙인 그의 연보에 따르면, 소로우는 45세에 폐결핵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혹한의 겨울날, 그는 숲에 들어가 나무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세다가 독감에 걸리고 이것이 기관지염으로 악화되고 다시 이것이 폐결핵으로 더욱 악화되고 만 것이다.

결국 그의 죽음은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자연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과 애정이 불러들인 셈이다. 아마 자연은 날카로운 눈과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소로우에게 태고로부터 간직해온 자신의 비밀을 들켜버리는 것을 꺼렸는지도 모르겠다.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강승영 옮김/도서출판 이레 펴냄/1999년 8월)

시민의 불복종 - 야생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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