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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1970년대 초에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행되고 1990년대 초에 한국말로 번역ㆍ출판된 책 <식물의 정신세계>를 2000년대 초에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금세기에 들어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 보여 준 눈부신 발달 속도를 생각해볼 때, 이 책의 저자들과 독자인 나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30년이란 시차는 단지 한 '세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한 '시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세월의 단절을 거뜬히 뛰어 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앞서 나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30년이나 묵은 과학 관련 책 한 권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뿐더러 오히려 시대의 첨단에 서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 책이 보여 주는 식물 왕국의 놀라운 비밀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충격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들이 30년 전에 이 책을 통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미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도 느끼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나타내며,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과 교감하며 인간의 마음과 의도까지도 간파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주와도 교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들은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많은 문헌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이 되어 왔기에 아직까지도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더 놀라울 지경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분석하고 나누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공이 클 것이다. 사유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속성으로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도 인간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근거라고 믿었던 철학자들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 분야의 지식만으로도 이 세상의 법칙을 해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인도 태생의 위대한 과학자 찬드라 보스 경(Sir Jagadis Chandra Bose)의 말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진리가 머물고 있는 이 광막한 자연이라는 거주지에는, 각기의 문이 달린 수많은 통로들이 달려있다. 물리학자, 화학자, 생리학자들은 자신들만의 전공 지식을 갖고 이 각기 다른 문을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다른 분야와는 관계없는 자기들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현재 광물의 세계니, 식물의 세계니, 동물의 세계니 하면서 분야를 나누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적 태도들은 타파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탐색들의 목표가 전체적인 앎에 도달하기 위한 것임을 유념해야만 한다."

이러한 찬드라 보스 경의 지향점은 이 책에서 식물의 비밀들을 탐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이 책은 식물의 비밀들을 탐구함으로써 보편적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이 책의 저자들은 식물의 놀라운 능력들을 밝혀낸 여러 가지 과학적 실험 결과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식물의 그러한 능력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식물이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명체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매우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거짓말 탐지기에 쓰이는 검류계를 식물의 잎에 연결한 상태에서 날카로운 칼이나 전정 가위를 들고 다가서면 검류계가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은 위협을 느낀 식물이 보이는 반응이다. 하지만 다가서는 사람의 속마음이 정말로 그 식물의 가지나 잎을 자를 생각이 아니라 짐짓 거짓으로 그런 흉내를 낸 것이라면 검류계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1960년대 말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 전문가였던 백스터(Cleve Backster)에 의해서 발견되어 후에 '백스터 효과'라고 이름 붙여진 이러한 놀라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식물도 사람처럼 느낄 수 있고 또한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떨고 홍당무는 토끼가 나타나면 사색이 된다는 것이 단지 동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식물의 지각 능력과 소통 능력은 자기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아준 사람에게는 수백 킬로미터의 공간을 넘어서까지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 장비 전문가였던 소뱅(Pierre Paul Sauvin)은 백스터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직접 유사한 실험을 했는데, 호숫가의 별장에서 여자 친구와 섹스를 나누고 오르가즘에 도달하던 바로 그 순간에 130km 떨어진 자신의 집에 있던 식물도 매우 격렬한 반응을 보인 기록을 나중에 집에 돌아와 발견한 것이다.

전기 기술자 로렌스(George Lawrence)가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서 살아있는 식물의 생체 조직을 가지고 잡아낸 신호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래프가 아니라 청각 신호로 잡아낸 그 신호는 바로 하늘의 북두칠성 자리로부터 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스미소니언 협회에 의해서도 인정된 이 생체 교신은 식물이 우주와도 교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SETI(외계지성탐색: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계획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의 대다수는 현재의 자연 과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현상들이라서 초자연과학적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들은 현재 자연 과학이 부닥치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생명 현상'은 단순한 자연과학적 법칙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보다 고차원의 현상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들이 언급하고 있듯이 자연과학(physics)과 초자연과학(metaphysics) 간의 결혼식은 이제 바야흐로 시작되었고 식물은 그 자리에 신부의 들러리로 서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에 대하여

피터 톰킨스(Peter Tompkins)는 1919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태어났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 컬럼비아 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저술 활동을 했다. 그가 지은 책으로는 <대피라미드의 비밀(Secret of the Great Pyramid)> 등이 있다.

크리스토퍼 버드(Christopher Bird)는 1928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동양철학 및 동양사를 연구했고, 하와이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소비에트 문화 연구의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타임>지 등에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그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자연 과학과 초자연과학 간의 결혼생활이 순조로운지, 파탄으로 끝났는지 아니면 불화의 연속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분명한 사실은 식물이 언제나 들러리처럼 우리 인간 곁에 다소곳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상의 어느 생명체보다도 예민하게 주위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모든 생명들에게 기본 양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식물의 정신세계>의 저자들은 엄밀한 과학적 논증과 풍부한 인문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식물 왕국의 놀라운 비밀들을 밝혀냄으로써, 생명의 오랜 역사 속에서 식물은 다른 생명체들의 들러리가 아니라 언제나 주역이었으며 지금도 역시 주역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조용히 설득하고 있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수식어를 독점해 온 인간에게 자신의 이름마저 빼앗겼던 갈대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생각하는 갈대'라는 당연한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다.

식물의 정신세계

피터 톰킨스 외, 정신세계사(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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