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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윤
보길도 정자리 뒷산에는 전설 속의 북바위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바람이 불면 바위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북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원래는 두 개의 바위였는데, 지금은 하나뿐이기 때문이지요.

북바위에 올라서 보면 건너 섬 넙도가 바로 코 앞 입니다. 둥그런 바위가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면 바닷물을 퐁퐁 튀기며 넙도까지 닿을 듯도 합니다. 그처럼 가까운 거리다 보니 예전에는 바람 불어 북 바위가 울면 그 소리가 넙도까지 들렸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꼭 북바위 우는소리만 들리면 넙도 처녀들이 바람이 났다는 것이지요. 북소리가 처녀들 가슴을 쾅쾅 울렸던 것일까요.

본디 처녀가 바람나는 것이 어디 탓할 일이기만 하겠습니까.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섬에서 귀한 것이 처년데, 바람난 처녀들이 다 육지로 떠나고 나면 총각들은 어쩌겠습니까.

보다 못한 넙도 주민들이 보길도까지 건너와 북바위를 밀어서 굴려 버렸다지요. 그래서 두 개이던 북바위가 지금처럼 하나가 됐다는군요. 그 후 북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지만 그렇다고 처녀들 바람기가 잦아들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금 북바위 부근에는 그때 넙도 사람들이 밀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바위 하나가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오늘 모처럼 만에 다시 북바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북바위 때문이 아닙니다. 남근석 때문이지요. 북바위 옆에 서 있는, 북바위보다 더 우람하고 의젓한 남근석의 안부가 궁금해서 이지요.

그 남근석은 흔히 있는 그런 류의 남근석이 아닙니다. 과문한 탓인지 내가 보기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크고 멋지게 생긴 남근석이지 싶습니다. 내가 그 남근석, 아니 그 거대한 남근 바위를 처음 본 것은 지난 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산행에 나섰다가 처음 대면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오늘은 아내와 서울서 다니러 온 정란이랑 셋이서 오릅니다. 나는 남근 바위 밑에 먼저 도착해서 어서들 오라고 손짓합니다. 남근 바위의 위용은 여전합니다. 어렵게 암벽을 타고 올라 나무 숲 사이를 빠져 나온 두 여인에게 나는 가만히 남근 바위를 가리킵니다.

두 여인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느낌이 어때요?"
"감동적이에요."

나 역시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감동적이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 강제윤
하늘을 향에 팽팽히 서 있는 거대한 남자의 그것. 저것은 우주를 향해 발기한 남근석이 아니겠는가. 내가 무슨 남근 숭배자나 남근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해받을 것이 두려워 나오는 찬탄을 숨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근곡이 있었으면 그것을 보고서도 찬탄해 마지 않았겠지요.

높이가 족히 10m도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남근 바위. 저 우람한 위용에는 누군들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넙도 처녀가 바람난 것은 북바위 때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남근 바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남근 바위, 그 아래 서자 나는 돌멩이처럼 작아집니다.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습니다. 실상 큰 것이 대단한 것도, 자랑거리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큰 것은 큰 것의 미학이 있고 작은 것은 작은 것의 미학이 있지요. 더구나 저 남근 바위가 사람 눈에 큰 것일 뿐이지 거대한 우주의 자궁 앞에서는 그저 어린 아이의 조그만 고추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초겨울 오후, 보길도 정자리 뒷산, 우주를 향해 발기한 거대한 남근 바위가 저 혼자 뻐기고 서 있으나 우주의 자궁은 미동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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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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