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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드리미디어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현대 인류가 처한 에너지 위기에 대해서 경종을 울린 바 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분석적이었는지,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종은 많은 이들의 즉각적인 실천을 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도 그 한 요인일 터이다.

이런 점에서 <엔트로피> 이후 20여 년 만에 나온 톰 하트만의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은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더럽혀진 우리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이 119 구조원에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톰 하트만은 수억 년 전 바다 식물의 형태로 저장된 태고 햇빛, 즉 우리가 석유라고 부르는 화석연료가 점차 고갈되고 있는 현 상황에 먼저 초점을 맞춘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의 기반이기도 한 석유의 매장량이, 가장 낙관적인 견해에 의하면, 앞으로 45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 이는 2040년대에 이르면 지구상의 모든 석유가 바닥난다는 뜻이다.

우리 세대에서 보게 될 지도 모르는, 그리고 우리 자식들의 세대에서는 분명히 겪게 될 이 사건을 두고 저자는 ‘재난’, 더 나아가 ‘치명적인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연료가 부족할 때마다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식량과 나무를 손에 넣기 위해서 끝없는 침략 전쟁으로 영토확장을 꾀한 로마제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국의 부시 부자가 석유의 통제권을 쥐기 위해 벌인 최근의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둘째, ‘다른 에너지원’이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 밑의 메탄 결정체와 상온 핵융합, 태양 전지 등을 미래의 구원자로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그러한 대체 에너지 기술의 개발에도 석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비(非)석유 에너지원인 태양 전지를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는 석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태양 전지를 가지고 태양 전지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석유의 고갈은 먹거리와 연료를 비롯한 우리 삶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어쩌면 석유가 바닥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추위와 기아로 죽음을 맞이 할 것이다.

이토록 심각하고 다급한 상황이 아직도 우리에게 괜찮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7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이후 계속된 신문화, 즉 정복문화와 지배문화에 우리가 너무나 깊이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톰 하트만에 따르면, 소위 서구문명이라고 부르는 삶의 방식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들은 수메르인들이다. 그들은 저 유명한 ‘레바논의 삼나무 숲’을 닥치는 대로 베어내어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무자비한 삼림파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대서사시 길가메쉬>에도 기록되어 있다. 수십만 년 동안 수렵채취 생활을 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던 인류의 삶의 방식은 수메르 문명의 탄생과 더불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그 기본 토대로 삼는 신문화에서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 어느 문명에서나 예외 없이 존재했고, 석유의 사용으로 더 이상 노예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 19세기까지 존속된 노예제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보장해준 가부장제 역시 신문화의 산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0만년 동안 우리 조상이 살던 방식인 구문화는 햇빛으로 얻을 수 있는 의식주만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문화였다. 정치적 지배구조인 도시와 국가를 단위로 하는 신문화와는 달리 구문화에서는 그 자체로 독립된 정치 단위인 부족이 삶의 터전이었다.

그들은 사유재산보다는 공동체를 더 중시했고, 무자비한 환경약탈이 아니라 현지 자원의 재생을 통해 자원을 확보했다. 부족을 움직이는 힘은 신문화에서처럼 서열식 권위 구조에 입각한 지배가 아니라 평등한 구조에서 형성된 자발적인 협력이었다. 독자적인 정체의식을 지닌 그들은 타 부족의 정체성도 존중했기에 신문화에서처럼 대량학살 전쟁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수천 세대를 내려온 이러한 구문화가 어떻게 불과 200세대를 조금 넘는 신문화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을까? 수메르 문명에서 시작해 그리스ㆍ로마, 중세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까지 이어진 신문화는 어떻게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신문화는 아주 강력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두 개의 문명이 나란히 살면서 오랜 세월 거래를 해왔는데, 한 쪽이 신문화의 세계관에 오염되어버리면, 다른 쪽 문화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 중 하나이다. 도망치거나, 동화되어 신문화의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구문화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전쟁'은 다름 아닌 적의 문화, 즉 신문화의 방식이었다.

물론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싸우거나 노예가 되는 방법 대신에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 부족들이 남아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 정도로 추정되는 이들을 우리는 ‘미개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태고의 지혜야말로 바로 우리가 다음 천년을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가져다 준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몇 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던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전망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톰 하트만은 구문화로부터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전망을 이끌어낸다. 그 것에 입각해서 그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익명으로 조그만 자선행위를 실천하라, 신문화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TV를 끄고 날마다 10분이나 20분 정도 명상하라, 검소하게 살라, 매일 몇 분씩 밖으로 나가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깃든 신성을 느껴라,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의식과 행사를 만들라, 가능하다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해서 함께 나누며 살라, 등등…….

뭔가 획기적이고 거창한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시시하게 여겨질지도 모르는 이러한 대안들이 의미심장한 것은, 이 대안들은 이 세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무생물까지 포함해서)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양자 물리학이 발견한 아원자 입자의 ‘거리초월 현상’처럼, 또한 1930년대 영국에서 우유배달부가 배달해 놓은 우유병을 따는 새 몇 마리가 관찰된 직후 유럽 전역의 새들이 갑자기 우유병을 열기 시작한 것처럼, 몇 사람이 일으킨 작은 변화의 물결이 형태공명(morphic resonance)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급속하게 전파되어 세상을 바꾸는 큰 파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의 지구약탈이 개인의 통제력을 훨씬 벗어난 것이기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뒷짐 지고 물러서서는 안 된다. 자원재활용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약간 덜 운전하고 일년에 몇 차례 환경단체에 후원금 보내는 것으로 우리의 죄책감을 덜려고 해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광야에서 들리는 메시아의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스스로가 일상의 실천을 통하여 들려주는 작은 깨달음이다. 더럽혀진 우리의 둥지를 되살리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세상을 구하는 메시아인 셈이다.

이처럼 톰 하트만의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은 세계를 개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오랜 진리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진리를 삶에서 실천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일 것이다.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

톰 하트만 지음, 아름드리미디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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