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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설날, 추석, 한식
두번째. 대보름, 백중, 단오

모두 우리 나라의 명절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구분지은 첫번째와 두번째의 차이가 뭘까? 큰 명절과 작은 명절?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설과 추석에는 이른바 '민족대이동'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떠나면서 전국의 도로를 메우는 대이동 현상까지 벌어지는 명절치레를 한다. 이런 큰 법석을 떠는 명절치레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오는 2월 5일은 정월대보름이다. 이미 1월 31일과 2월 1일이 주말이라 많은 곳에서 대보름과 관련된 크고작은 행사가 있었다. 오는 대보름날 역시 전국적으로 많은 행사가 있을 것이다. 부럼까먹기, 오곡밥 지어먹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행사들이지만, 진짜로 정월대보름날에 지치도록 흥겹게 놀아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직장을 다니는 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날에 불과하고, 퇴근한 뒤 어디에선가 흥겹게 대보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잔치판에 끼는 이들도 드물다.

▲ 대보름은 한해 최대의 축제일이다.(2002년 2월 전북 임실)
ⓒ 이진욱
정월대보름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예전의 대보름의 모습은 어땠을까. 지금의 대보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설날, 추석, 한식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명절이다. 할아버지부터 어린 손주까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조상님께 차례를 드리며, 푸짐한 명절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덕담을 해준다. 또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가 성묘를 드린다. 잘 만나지 않는 먼 친척이라도 전화라도 한번 해주는 날이다.

이에 비해 정월 대보름, 오월 단오, 칠월 백중은 가족들과만 지내는 날이 아니다. 집안에만 머물러 있는 날이 아니다. 예전부터 정월대보름은 집을 뛰쳐나가 온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추고 놀고 마음껏 즐기는 축제일이었다. 유교 전통이 엄격하던 옛날에도 대보름만은 여자들도 대문밖으로 나가 한바탕 벌어지는 축제분위기를 마음껏 즐기는 그런 날이었다.

칠월 백중날은 예로부터 '머슴들의 명절'이라고 해서 논매기가 거의 끝날 무렵 풍년을 기원하면서 농민들, 서민들이 함께 어울려 놀던 축제일었다. 오월 단오도 잘 알다시피 그네뛰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등의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여성들도 이 날 만큼은 집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던 것이다.

▲ 대보름굿은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이다.(2002년 2월 전북 진안)
ⓒ 이진욱
대보름, 백중, 단오가 '머슴들의 명절'이라면 설, 추석, 한식은 반대로 '양반들의 명절'이었을까? 추측해보면 그럴 듯도 하다. 조상님께 차례를 드리고 성묘를 드리는 것은 주로 자신의 조상을 확실하게 알고 섬길 줄 아는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제사의식 역시 옛 양반들 사회에서 만들어져 전해 내려온 것이다. 복잡한 문자를 쓰며 족보를 따지고 가문을 따지는 양반들이 각종 의식을 엄격하게 치렀지 자신의 뿌리를 잘 모르는 평민들이 각종 조상을 섬기는 의식을 그리 엄격하게 치렀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평민들도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옛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와 관련된 많은 의식들이 있다. 이는 가족단위보다는 마을단위의 의식이다. 대보름날에는 마을 입구의 당산이나 장승 앞에 모여 천지신명께 기원을 드린다. 또 마을의 공동우물에서도 고사를 지낸다. 요즘같이 일기예보도 없고 양수기도 없던 시절, 한해의 농사가 잘되고 안되고는 전적으로 하늘의 뜻에 달렸다. 각종 재해가 없고 병고가 없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 달집태우기에 이르러 대보름굿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2002년 2월 전북 진안)
ⓒ 이진욱
기원을 드리는 의식은 단지 엄숙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축제일은 의식과 더불어 축제가 함께 어우러진다. 하늘에 드리는 기원은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드린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함께 모였을 때 그 힘은 대단한 것이다.

미신이고 아니고를 떠나 온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이것이 옛 사람들의 엄청난 삶의 에너지원이고 활력소인 것이다. 그래서 엄숙한 의식이 끝나면 축제가 벌어진다. 이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어울리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된다. 대보름날은 이렇게 온동네가 떠나갈 듯한 잔치판이 하루종일 계속되는 날이었다.

특히 대보름에는 풍물이 빠질 수 없었다. 풍물패가 앞장서서 대보름날 아침부터 마을 입구부터 동네를 돌며 분위기를 띄운다. 이른바 '길놀이'이다. 풍물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마을입구의 당산이나 장승 앞에서 고사를 드린다. 이른바 '당산굿'이다. 대보름 놀이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자 한해 모든 일이 잘되고 아무 탈이 없기를, 그리고 이날 하루만은 흥겹게 잘 놀아보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마을의 공동우물이 있던 시절에는 '샘굿'도 했다. 요즘에야 집집마다 수도가 나오니 물의 중요함을 잘 모르고 살지만, 예전에는 가뭄이 들어 물이 마르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하는 일도 큰 재앙이었다. 그래서 마을의 우물은 사람들의 생명을 주관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물 앞에서 고사를 드리고 기원을 한다.

▲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2002년 전남 영광)
ⓒ 이진욱
샘굿이 끝나면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풍물패가 앞장서 마을의 각 집을 돌아다니며 각 가정마다 액운이 없어지기를 기원하고 가족들이 무병장수하며 모든 집안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풍물패가 마당에서 흥겹게 풍물을 치며 분위기를 띄우면 그 집의 주인이든 구경꾼이든 신이 나서 함께 분위기에 어울린다.

저녁이 되면 일터에 나갔던 사람들, 다른 동네에서 온 구경꾼들까지 모두 모인다. 동네가 더욱 북적대면 잔치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동네어귀 넓은 마당에 모여 풍물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축제의 분위기를 즐긴다.

그리고 대보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달집태우기가 있다. 대보름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약 3미터 정도 높이의 나무더미에 불을 붙여 태우면 그 열기는 실로 엄청나다. 이로 인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아침부터 이 달집에는 자신들이 한해동안 이룰 소원을 적은 소원지들이 빼곡이 매달린다. 달집이 타올라가면서 자신들의 소원도 하늘로 띄워보내는 것이다. 대보름의 축제분위기는 절정에 다른다.

이렇게 정월대보름은 마을 단위의 가장 큰 축제일이었다. 이름난 마을의 풍물패는 다른 마을로 불려가 그 마을의 대보름굿을 주관하기도 했다. 한참 전성기때의 풍물패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거의 매일같이 마을마다 불려다니며 마을굿을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축제분위기를 즐긴다.(2003년 2월 전북 진안)
ⓒ 이진욱
설날이 한 해가 시작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된다는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절기상으로도 입춘과 비슷한 시기에 있다.

대보름굿의 형태는 지역이나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설명한 내용과 비슷하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풍어제를 지내고, 배 위에서 풍악을 울리며 의식과 축제를 하는 선상굿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양반들의 명절'인 설, 추석, 한식에 비해 '머슴들의 명절'인 대보름, 단오, 백중날에는 이렇게 풍요로운 기원과 축제의 한마당이 마을 단위로 열리는 날이다.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 갔던 많은 세시풍속들 속에 대보름날도 예외일 수 없었다. 새마을운동으로 마을입구의 당산이 잘려나가고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면서 샘굿을 드리던 우물도 썰렁해졌다. 도로가 놓이고 건물이 지어지면서 도시가 생겼다.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던 대보름굿은 마을이 도시로 바뀌면서 사라져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심지어 도심에서도 대보름굿이 되살아나고 있다. 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각종 문화운동도 붐을 이뤘고, 이로 인해 각 대학에는 풍물패며, 탈패며 각종 단체들이 생겼다.

먹고 사는 일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고 뒤를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대보름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각 지역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대보름 지신밟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또한 각 지역 지자체에서도 지역 단위로 대보름 행사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보름굿이 예전에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던 엄청난 흥겨움의 분위기를 가져오던 그 대보름굿과 비교할 만하랴. 거대도시의 한복판에서 과연 예전의 마을굿의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을까. 도심에서도 대보름굿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좀더 기대를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필자는 이러한 마을굿과 같은 풍요로운 대보름날을 되살리기 위해 대보름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면 한다. '양반들의 명절'인 설과 추석은 휴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전날과 다음날 하루씩 더해 삼일씩 휴일이다. 이에 비해 대보름, 단오, 백중은 어느 하나 휴일이 아니다. 생업에 바쁜 도시인들은 대보름이 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모르고 지나는 이들도 많다.

설과 추석이 공휴일인 것은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대보름날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까? 기자 본인도 옛 대보름이 정말 풍요롭게 치러지던 시절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십년 넘게 풍물을 하고 마을 단위 대보름굿이 보존되고 있는 곳을 찾아다녀봤다.

삭막하고 이기적인 사회 속을 살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옆의 동료들도 배려하고 함께 어깨동무도 하고,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여유였으면 한다.

▲ 삶이 힘들수록 서로 돕고 활력소를 만들어나간다.(2002년 12월 전북 고창)
ⓒ 이진욱
날마다 뉴스에는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늘 좋지 않는 소식들이 더 많이 나온다. 정말로 사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우리 선조들은 함께 모여 기원을 드리고 대보름달을 함께 바라보며 축제를 벌였다. 이를 통해 뭉치고 서로 도우며 활력소를 만들어냈다. 대보름의 의미는 바로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반들의 명절인 설과 추석이 공휴일인데 머슴들의 명절 가운데 대보름 하루쯤은 공휴일로 지정되어도 좋지 않을까?

2월 5일은 대보름이다. 이때는 집안에만 있지 말고 가까운 대보름 행사, 축제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 보자. 직장인들도 늦게까지 일터에 남아있지 말고 가능하면 일찍 퇴근해서 축제장을 찾아보자. 가족들과,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가면 더욱 좋다. 흥겨운 풍물가락에 몸을 길어보고, 달집에 자신의 소원을 실어 하늘로 날려보자. 그러면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흥겨움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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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을 하고 학교수업도 하며,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 (http://asteacher.ner)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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