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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가 귀족 및 특권계층의 문화에 속한다면, 우리 전통문화는 민중들과 애환을 함께하는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문화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패는 그 옛날 전국 장터거리를 돌며 우리네 백성과 어울려 놀이 한마당을 만들어 내던 악극과 창 그리고 기예가 혼합된 종합예술이다. 남사당의 특징은 재담을 통해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안성시립 '바우덕이 남사당풍물단'이 매주 토요일 밤마다 관객들과 함께 살판나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된 '남사당 놀이'는 겨울로 접어드는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안성의 남사당전수관에서 열린다.

남사당이라고 하면 양반들이 장죽물고 '어흠'하던 유교적 관습이 엄격한 조선시대 때 광대패라고 해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최하위 천민계층이다. 그러나 이도 꼬장꼬장한 양반들만 그러했을 뿐, 사시사철 온종일 뼈빠지게 노동을 해야 겨우 연명을 할 수 있던 백성들에게 남사당이야말로 한바탕 신나는 놀이마당을 만들어 주는 유일한 연희집단이었다.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라 할 지라도 그 삶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국을 떠돌며 놀이마당을 펼치고 끝나면 던져주는 엽전이나 곡식으로 겨우 살아가는 그들은 겨울이면 추운 곳에서 겨우 숨만 쉬며 겨울잠을 청해야 했다. 피죽도 못 끓여먹는 농사꾼들이 먹는 입 하나 줄이겠다고 자식을 사당패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아이는 재주를 배우면서 떠돌다 객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사당에겐 '잘 하면 살판, 잘 못하면 죽을판'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그들은 죽을뚱살뚱 악기와 기예 그리고 창을 익힌 후 놀이판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여줘야만이 박수가 나오고 엽전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 남사당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최고의 예술가집단으로 예우받고 있다.

안성의 외곽 보개면 양복리에 멋들어진 전수관이 세워졌다. 지난날 개천가에서 연습하던 남사당 전수자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관청의 지원하에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후예들을 길러내고 있다. 안성시 문화공보실에서 파견된 서은석씨에 의하면 "30여명의 상임단원과 20여명의 명예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중 원로라 할 수 있는 김기복씨가 꼭두쇠를,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성광우씨가 상쇠를 맡고 있다.

토요일 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그 날의 연희가 잘 되길 비는 고사굿을 지내고 공연을 시작한다. 첫 무대는 땅재주넘기를 하는 '살판'이다. 살판은 어릿광대와 재주꾼이 재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 땅재주를 부리는 놀이로, 남사당 풍물가락에 흥이 넘친다. 공연은 멍석 위에서 펼쳐진다.

▲ 노을이 지는 가운데 시작되는 남사당놀이
ⓒ 안동희
두번째 무대는 '덧뵈기'다. 덧뵈기는 '탈을 쓰고 덧본다'라는 뜻의 '탈춤놀이'를 말한다. 남사당의 덧뵈기는 양반의 저질성을 풍자하며 고발하는 민중놀이로 재담과 함께 춤사위가 어우러지는 해학과 세련된 만담이 다른 지역의 탈놀이와 차별성을 갖는다고 한다.

▲ 탈춤의 일종인 덧뵈기
ⓒ 안동희
'버나'놀이는 접시처럼 생긴 둥근 체바퀴를 막대기나 장죽으로 돌리며 던지는 묘기다. 여기서도 관중들과의 재담은 끊이지 않는다. 버나는 즉석에서 관중들을 참여시켜 돌려 볼 수 있도록 한다.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중심잡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 관객과 함께하는 버나놀이
ⓒ 안동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덜미'는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하는 인형극이다. 장막속에서 각종 인형들이 펼치는 연기와 재담에 아이들이 까르르 넘어간다.

뭐니 뭐니 해도 남사당놀이의 압권은 '어름'이라고 부르는 줄타기다. 어름이란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듯이 어렵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그래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을 '어름산이'라고 부른다. 어름은 어름산이가 3m 높이의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며 묘기 사이사이 작수목에 서서 관중들과 나누는 재담이 흥을 더한다. 이 재담 속에는 관객들의 쌈지돈을 우려내는 익살이 들어 있어 한층 재미를 더한다

▲ 어름산이 권원태씨 거중틀기 묘기
ⓒ 안동희
특히, 줄 위에서 하늘 높이 몸을 날려 한바퀴 돌아 내려앉는 '거중틀기'는 보는 이들의 입을 절로 벌리게 만든다. 어름은 줄타기 27년 경력의 권원태씨(38)와 안성종합고등학교 1학년 박지나양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서주향양이 매주 번갈아 가며 공연한다.

그중 권원태씨는 얼마전 미국 탬파베이 '세계줄타기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서양 줄타기가 긴 쇠장대를 들고 그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반면에 우리의 줄타기는 부채 하나 달랑 들고 팔랑 팔랑 온갖 재주를 다 부린다. 그러니 그 묘기를 보는 서양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 지 짐작이 간다.

▲ 신나게 돌아치는 풍물놀이
ⓒ 안동희
'풍물놀이'는 남사당 여섯 마당 중 가장 화려하다. 단원들이 총 동원되 꽹가리, 장구, 북, 징, 소고, 태평소 등의 악기 연주와 함께 '진풀이', '무동', '벅구놀이', '채상놀이', '선소리'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웃다리가락'은 경쾌해 관객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풍물패 중앙에서 돌아치는 12발 '상모 돌리기'도 특유의 현란함을 자랑한다.

▲ 12발 상모 돌리기
ⓒ 안동희
무동은 2명으로 시작해 3명이 연출하는 삼동, 5명이 펼치는 오동까지 이어진다. '새미'라고 부르는 어린 아동을 무등에 태워 덩실덩실 춤을 춘다.

▲ 새미와 함께하는 삼동
ⓒ 안동희
마지막으로 관객과 하나가 되는 뒷풀이가 이어진다. 너나없이 나와 '덩덩 덩더쿵' 장단에 맞춰 징이며 꽹가리를 쳐대며 흥겨운 놀이 한판을 마무리한다. 무대 한쪽에서는 머릿고기와 순대에 막걸리 한상이 벌어진다. 이렇게 살판나는 남사당 놀이는 달이 훤하게 비추는 저녁 9시까지 이어진다.

▲ 관객과 하나되는 뒷풀이 한마당
ⓒ 안동희
이번 주말엔 일찌감치 안성땅에 들어가 남사당이 시작된 청룡사를 구경하고 시내로 들어와 안성맞춤의 명품인 안성유기전을 둘러본 다음 저녁 공연 시간에 맞춰 남사당전수관에 자리잡고 한바탕 주말의 여흥을 즐겨보길 권한다.

▲ 남사당전수관 약도
ⓒ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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