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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5일) 늦은 오후, 서리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딸부잣집 채린이네 집에 마실을 갔다. 잔디밭 한 귀퉁이에 지어 논 정자에서 한가하게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하길 바랐는데 난데없이 석성산 야간 등산을 하자고 한다.

등산화도 안 신고 왔는데, 허리가 아픈데, 비가 올 것 같은데 등등 이 핑계 저 핑계 주절거리다 하도 재촉해서 산행 준비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백령사 주차장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네야 등산 가족이 아닌 하이킹족이라 별 준비 없이 나왔지만 채린이네는 땀 흡수와 공기소통이 잘 되는 등산복에 두툼한 등산화를 신고 간단한 배낭에 꼬챙이까지 들고 나왔다. 복장을 보니 로프만 둘러메면 암벽등반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하다.

백령사 스님께서 마당에 천막을 깔고 널어놓았던 것을 한데 모아 커다란 소쿠리에 담고 있었다. 무엇인가 하여 다가가 어깨 너머로 보니 어디서 그렇게도 많이 주워 오셨는지 씨알도 굵직한 햇밤이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스님이 쓱 돌아보시며 씩 웃고는 커다란 두 손으로 밤을 듬뿍 담아 건넨다. 합장하여 인사할 겨를도 없이 넙죽 받아 들었다. 인자한 풍모에 인심도 좋은 스님이다.

콸콸 쏟아지는 약수를 받아 한 바가지 들이키고 대장을 따라 산으로 올랐다. 올라갈수록 경사가 심해지면서 숨이 턱에 차 오른다. 이럴 때마다 '에궁 담배를 끊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산을 내려가 숨을 돌리면 새까맣게 잊어버리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 헤드랜턴을 머리에 부착한 아이들
ⓒ 안동희
중간 지점인 통화사에 이르니 그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채린이 아빠가 배낭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하나씩 나누어준다. 아이들이 머리에 불을 달고 반딧불이(개똥벌레)마냥 신나게 겅중거리며 뛰어오른다.

재차 능선을 따라 오르니 어느새 가슴팍이 땀으로 흠씬 젖었다. 땀 냄새를 맡은 산 모기가 잠깐 쉬는 동안에도 달라붙어 피를 쪽쪽 빨아댄다. 이놈들은 여름이 가는 게 영 못 마땅한가 보다.

비척대며 오르다 드디어 성산 정상에 올랐다. 숨이 확 트여 가슴을 활짝 열고 공기를 듬뿍 들이마신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산 아래쪽에 장작불똥 한 삽을 퍼 마당에 뿌려 놓은 것처럼 인근 시내의 야경이 삼삼하다. 새로 신 시가지가 조성된 구성과 신갈 그리고 멀리 동수원이 눈에 들어온다. 영동고속도로 서울 방향은 일요일 저녁인지라 여지없이 붉은 등을 길게 이어 초파일도 아닌데 연등행사를 하고 있다.

▲ 석성산에 바라 보는 야경
ⓒ 안동희
석성산은 해발 471.5m로 다른 말로 구성산, 성산, 보개산으로도 불린다. 남쪽으로는 용인시, 북쪽으로는 구성읍이 있고 좌측에 신갈, 우측에 에버랜드를 안고 있다. 동북방향 어깻죽지로 영동고속도로가 타고 넘어 갔으나 얼마 전 마성터널을 뚫어 소통시키고 있다. 평상시 교통 소통은 어지간히 해결되었지만 명산 아래쪽을 관통시킨 터널은 영 못마땅하다.

지금도 정상에 통신 중계탑이 있는 성산은 옛날에도 봉수대로 이용되었다. 멀리 화성봉수대의 신호를 받아 강남의 청계산으로 이어주고 청계산에서는 다시 목멱산(남산) 봉화대로 신호를 전달해 궁궐에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잠시나마 왜군들이 지쳐 올라올 때의 그 급박한 상황을 떠올려 본다.

잠시 둘러보고 준비해 간 음료수와 김밥을 펼쳐 놓고 정상에서 성찬을 맛있게 먹는다. 배가 고프던 차에 허겁지겁 먹는데 가슴 한켠이 쓸쓸하다. 채린 엄마가 배낭에서 머루술을 한 병 꺼내 놓는다. 아 그제서야 왜 이 내 가슴 한켠이 그리 쓸쓸했는지 알아챘다. 최고급 와인보다 산에서 김밥을 안주로 먹는 우리네 머루술이 이리 더 맛있을 줄이야.

말이 씨가 되었는지 갑자기 후드득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급하게 짐을 정리하고 도망치듯 산을 내려온다. 작은 아이들을 어른들이 하나씩 들쳐업고 이맛불로 길을 밝혀 뛰듯이 내려오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올라갈 때보다 더 힘이 든다. 이렇게 얼결에 따라 나섰던 야간 산행으로 다리에 알이 배어 지금도 엉기적거리지만 종종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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