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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자마자 아내에게 저녁반찬이 뭐냐고 묻습니다. 아내가 입을 뾰족 내밉니다. 당신은 마누라 얼굴보다도 반찬이 더 중요하냐고 말합니다. 저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날씨 탓인지 도대체가 먹고 싶은 게 없어요.”

정말 그렇습니다. 여름에는 먹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가 봅니다. 사실 요즈음은 일을 해도 생각만큼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머리가 흐릿하고 맥이 탁 풀립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물론 금방 후회하긴 합니다만.

입맛만 해도 그렇습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습니다. 이거다 싶어서 먹으면 금방 실망하고 맙니다. 아내도 제 밥맛 없음을 알았나봅니다. 오늘은 무언가 특별한 음식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저는 주방을 기웃거립니다.

“오늘은 깻잎김치를 담았어요.”

아내가 말합니다. 순간 제 귀가 번쩍 뜨입니다. 저는 유독 깻잎김치를 좋아합니다. 짭짜름하면서도 고소한 게 맛이 일품입니다. 밥맛을 돋구는데도 참 좋습니다. 흔히들 그렇게 얘기하지요.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열무김치, 배추 겉절이, 깻잎김치를 꼽습니다. 모두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깻잎김치를 특히 좋아합니다.

▲ 여름 별미, 깻잎김치입니다
ⓒ 박희우
저녁은 깻잎반찬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진수성찬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한 가지라도 맛있게 먹으면 그게 바로 진수성찬입니다. 깻잎 한 장에 밥 한 숟갈입니다. 밥이 술술 잘도 넘어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셋째 형님이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형님은 깻잎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비닐하우스에서 깻잎을 재배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닌가봅니다. 형수님의 손마디는 1년 365일 검은 물이 배었습니다. 깻잎에서 묻어 나오는 진물 때문입니다.

깻잎농사가 보기보다는 무척 힘든가 봅니다. 하루, 이틀만 한눈 팔다보면 깻잎 싹이 너무 자라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상품가치가 많이 떨어집니다. 어쨌든 깻잎은 제때 잘 솎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맛 좋은 깻잎이 나옵니다. 깻잎농사는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깻잎 자라는 속도가 엄청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며칠 간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셋째 형님은 오후 4시만 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고 합니다. 깻잎농사라는 게 대부분 허리를 구부리거나 쭈그려 앉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깻잎을 따고, 깻잎 열 장을 하나로 묶고, 다시 그것을 상자에 넣는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셋째 형님은 고통이 올 때마다 소주를 드십니다. 맥주 잔에 소주를 따라서는 한 입에 털어 넣습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고통이 싹 가십니다. 저는 형님 댁에 갈 때마다 소주를 한 상자씩 사갑니다. 형님에게는 이만한 선물이 따로 없습니다. 물론 과음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형님은 괜찮다며 너털웃음을 웃곤 했습니다.

“셋째 형님은 잘 계실까?”

저는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그래도 거창에서 살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들렀습니다. 전북 무주를 넘으면 바로 형님이 살고 있는 금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원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는 1년에 한두 번 가는 게 고작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갔다올 수 있는데도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깻잎 덕분에 저녁을 아주 잘 먹었소.”

저는 아내를 칭찬합니다.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합니다. 오늘은 지아비 밥맛 없다고 깻잎김치까지 마련했습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합니다. 저는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셋째 형님에게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전화번호를 누릅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가 봅니다.

다음주 일요일에는 셋째 형님을 찾아 뵈어야겠습니다. 셋째 형님과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해야겠습니다. 물론 깻잎도 많이 따야겠지요. 아내와 아이들도 무척 좋아할 겁니다.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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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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