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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화>는 중요무형문화재 82호로 지정된 큰 만신(무당) 김금화 선생(왼쪽)이 그 모델이다. 오른쪽이 소설가 이경자씨.
ⓒ 오마이뉴스 조은미
"여자의 일생 같다"고 말하자 그는 대뜸 "사람의 일생"이라고 고쳤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절반의 실패'에 대하여 평생 써온 소설가 이경자씨가 이번엔 무당의 세계, 신내림의 세계에 대해 소설로 썼다. <계화>(생각의나무)다. 결국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무당으로, 무당이 누군가, 무당을 무당이게 하는 내림굿은 무엇인가, 굿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게 이 소설 주제라고 딱 잘라 말했다.

소설 <계화>는 지연주란 스물다섯 먹은 여자가 하루 동안 내림굿을 받는 이야기다. 내림굿을 해주는 신어머니가 계화다. 중요무형문화재 82호로 지정된 큰 만신(무당) 김금화 선생이 그 모델이다. 내림굿은 하루 동안 이뤄지지만, 그 안에 그들의 일생이 스쳐가듯 펼쳐진다. 내림굿을 보여주면서 한 여자가 어떻게 무당이 되는지를 보여준달까?

이 소설을 쓴 이경자씨는 꼭 무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정신에도 내림굿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뭔가 욕망에 시달리고 이런 거로부터 후련해 하고 해방감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진정한 자기 발견을 하기 바란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내림굿'의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굿 속에 깊이 빠졌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마치 자궁 속에 따뜻하게 있다가 자궁의 힘을 받아서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굿에 이렇게 심취한 걸까? 그는 영세까지 받은 가톨릭 신자였다. 그도 한때는 굿은 미개한 사람이 하는 거라는 확신에 차있었던 시절이 있다고 했다. 그걸 깨고 무당이 나랑 똑같은 사람, 아니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요, 굿이 가진 엄청난 기능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인정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아끼던 후배가 무병을 앓다가 급기야 김금화 선생에게 신내림 굿을 받는 걸 본 뒤 일어난 일이었다.

"32살에 갑자기 왜 나는 인간인데 남자한테 차별받지? 동시에 무당은 왜 천대받지? 그 화두가 나한테 왔다. 그래서 여자공부를 시작했다. 새삼스럽게. 여성은 왜 차별받지? 아내의 지위는 왜 낮은가? 이런 남녀차별에 대한 의문과 그것이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절반의 실패>를 썼지 않나. 그것과 함께 무당에 대해 공부했는데, 무당에 대한 소설은 쓰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엄마이고 아내이고 딸이고 소설가다. 이걸 직접 경험하잖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잖아. 그건 금방 대화가 된다. 그래서 갈등의 공통점을 얻어내서 소설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무당은 너무 특별해서 샅샅이 알고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다. 굿이 너무 어렵다. 모든 걸 이해해야 하니까, 너무 쓰기 어렵다."

20년 넘게 무당, 굿과 씨름

ⓒ 오마이뉴스 조은미
처음엔 무당 김금화 선생의 일생을 써내려갔다. 김금화 선생을 만나고 그에 대해 써내려 갈수록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루는 산에 가서 전화를 해서 울먹울먹 김금화 선생에게 따졌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고생을 했어요?" 인터뷰한 걸로 소설 쓰다보니 울화가 복받쳐 올라서, 서러워 못 견디겠노라고 따졌다. 그리고 괜히 전화기를 붙잡고 실컷 울었다.

"어떤 때는 내가 '아. 때려치워야지' 그랬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자들이 인정하는, 남자들이 이해하는, 남자들이 인정하고 이해하는 그런 글을 써야지만 내가 이 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남자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기도 거북해하는 차별 받는 여성에 대해 쓰다가, 또 차별 받는 무당에 대해 쓰다간 나는 어떻게 될 건가.

어떨 땐 막 하기 싫었다. <절반의 실패> 쓰고도 이렇게 왕따 되는데, 이거 또 무당 써서, 왕따의 왕따가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했다. 왜 나는 남자를 사랑하고 이런 소설은 못 쓰고, 꼭 이렇게 저항적이고 극단적 소외를 당하는 계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부분에 대해 소설 쓰면 힘이 솟고 이럴까. 난 왜 이런 팔자를 타고 났을까."

그는 쓰다 때려치웠다. 그가 쓰고 싶은 건 '무당의 일생'이 아니었다. 다시 쓰다 또 때려치웠다. 그리고 고민했다. 또 하고 싶었다. 굿을 정면으로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굿은 높고 험한 산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넘고 싶었다. 쓰고 또 썼다.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어쩌면 소설가의 운명도 무당의 운명과 같은 건지도 몰랐다.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은 거, 죽어도 피할 수 없는 게 무당의 운명과 같은 건지도 몰랐다. 그 무당 이야길 쓰면서, 무당이게 만드는 내림굿 이야길 쓰면서, 어쩌면 그는 지금껏 그가 해온 여자 이야기와 같으며 또 다른 여자 이야길 하는지도 몰랐다. 한 인간이 무당이게 만드는 내림굿을 보여주면서, 무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생명을 주고받는 여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무당들의 95%가 여자 아닐까? 뭔가 모계사회의 산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과거엔 낳는 자가 왕이었을 거라고. 인간을 낳는 행위는 굉장한 거다. 낳는 힘, 낳고 기르는 힘을 가진 여성은 그 여성이 우주를 바라보는 직관력, 그런 거는 남자가 따라올 수 없을 거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건, 나를 죽여서 생명을 낳는 거다. 그렇게 낳은 애를 젖 먹여 기른다. 이 경험을 하게끔 만들어진 성과, 그렇지 않은 성은 분명 어떤 차이가 있을 거다. 이 부분에 대한 존경, 존중 없이 평화는 없다. 인간의 평화, 인간의 존엄성은 없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 이 사실에 대해서 자부심 갖지 않으면, 그 여성은 사람으로 살 수 없다. 단언하건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굿엔 낳고 기르고 품고 탄생하는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 그는 그걸 보았다.

나는 왜 글 쓰는 재능을 타고 났을까?

▲ 소설가 이경자씨.
ⓒ 오마이뉴스 조은미
"내가 결혼 안 했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고, 결혼해도 몇 년 못 살고 이혼했을 거라고 믿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내가 28년 동안 결혼 생활 하고 마침내 28년 만에 이혼했다. 내가 이혼한 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소설가 노릇만 열심히 하면 결혼 생활과 충돌한다. 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내, 주부, 며느리, 어머니 전통적으로 요구하는 역할과 소설가의 난 충돌한다. 무당도 무당이면서 가정까지 유지하려면 너무 고통스러울 거다. 어떤 남편, 어떤 자식, 어떤 시어머니 시아버지 동서들이 그 무당과 함께 살고자 하겠나?"

그에게도 이혼은 충격이었다. 이혼하고 나서 그 충격 때문에 아팠다. 경제적으로도 곤란했다. 그러자 온갖 생각들이 그에게 몰아쳤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글 쓰는 재능을 타고 났을까? 나는 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나는 왜 서울로 왔으며, 나는 왜 소설가로 데뷔했나? 나 이거 다 싫다. 나 그냥 시골에서, 강원도 양양에서 그저 초등학교나 중학교 정도 졸업해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한 농부하고 결혼해서 서울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도 못하고, 어쩌다 서울 오면 행복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살았으면 그게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지만 그런 한탄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한탄 뒤에 찾아온 건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이런 생각도 했다.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은 다 온전하지 못하다. 대통령이 뭐가 좋나. 밥을 한 번 저 맘대로 먹을 수가 있나. 누가 죽일까봐 마음대로 길을 걸어 다닐 수가 있나. 그게 뭐가 좋나? 그 팔자가 뭐가 좋나? 돈이 많으면 내가 집이 방방곡곡에 있다 한들, 난 방 한 칸에서밖에 잘 수 없잖나.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하루에 1억을 쓰겠나. 1억을 쓰면 뭐하나. 만 원짜리 한 장 쓰고, 너무나 그 돈이 맛있는 거, 이게 행복한 거 아닌가? 그냥 소박하게 오늘 콩나물 너무 맛있고, 우거짓국 너무나 맛있고, 돈 만 원 가진 거로 계란 한 판 사고 두부 하나 사고 한 5000원 남겨야지. 5000원은 내일도 쓰고 모레도 써야지. 이럴 때 이 만 원이 얼마나 맛있겠나?"

그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경쟁하지 않으니까 참 좋다고 했다. 누구보다 잘 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냥 그가 쓸 수 있는 거, 그가 잘 하는 거, 가부장사회에서 남녀문제, 6ㆍ25, 굿, 무당, 이런 걸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억압받고 차별 받는 무당들에게 이 소설을 통해서 자부심을 주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젊었을 적 열정이 넘쳤다. 어떻게 하면 불륜 한 번 해볼까. 어떻게 하면 불타는 연애 한 번 해볼까. 뼈가 녹는 불륜, 뼈가 녹는 섹스를 해볼까. 이런 열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젠 폐경한 지 몇 년 되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성욕도 날 무지 괴롭히는데 그것도 참 좋다. 그거 없어져서. 예를 들어 한 달이면 뭐 25일을 불타는 성욕에 괴로웠다. 이러면 요즘은 한 이틀? 하하하.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폐경,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내가 물었다. "폐경이 오면 '난 이제 여자가 아니야' 드라마 속에서 여자들이 고민하고 상심하고 그러잖나?"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무 웃겨. 폐경하면 여자가 아니냐고. 내가 폐경하면 갑자기 고추가 생기냐고. 이게 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비하하는 거 아니냐. 너무 창피한 거다. 이게 미개한 생각이다. 여자는 이미 여자다.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다. 다만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 아이를 낳는 것보다 천만 배 더 훌륭한 세상을 보듬는 능력이 생긴다. 인간을 보듬고 우주를 보듬고, 이런 거는 모르고."

그때였다. 김금화 선생이 들어왔다. 칠십이 넘은 김금화 선생은 형형한 얼굴빛과 달리 지친 듯이 보였다. 선생은 방금 점 보러 온 이들에게 말을 많이 해서라고 했다. 그가 김금화 선생의 옷을 매만지더니, 너무 춥지 않냐며 조끼를 입으시라고 가져왔다. 그러곤 또 춥지 않나 옷을 만져보곤 선생의 기색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 안쓰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안쓰러운 기색을 누르고 그가 짐짓 명랑하게 말했다.

"내가 늘 옆에서 선생님을 보면, 우리가 선생님 따라가려면 '새 발에 피'다. 대단하시다. 이 대단한 어른을 무당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 사회가 써먹지 못하고, 써먹지 못하는 만큼 선생님에게도 깊은 슬픔이 있는 거다. 우리 사회가 참 바보다. 김금화 선생님 같은 분은 정부에서 먹여 살리고, 선생님이 저런 점 안 보고 굿이나 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계화

이경자 지음, 생각의나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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