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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석윤 옮김-일본 하이쿠 선집(책세상)
ⓒ 책세상
도서출판 책세상에서 <일본 하이쿠 선집>이 나왔다. 일본의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이다. 열일곱 글자에 자연 풍광과 인간 삶을 고도의 함축으로 담아내는 하이쿠는 이제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 받는 시 문학의 한 장르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하이쿠 애호가만 1.000만 명이 넘는다. 이중 하이쿠 잡지에 글을 발표하는 사람이 3,000여 명에 이른다. 또 2000년에는 <뉴욕 타임스>가 하이쿠를 공모하여 게재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오석윤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 옮긴 <일본 하이쿠 선집>은 일본 하이쿠의 대표 시인 5명의 대표작을 가려 뽑아 만든 책이다. 일본 근세 하이쿠를 대표하는 시인 마쓰오 바쇼·요사 부손·고바야시 잇사 그리고 일본 근대 하이쿠의 대표적 시인인 마사오카 시키, 가와히가시 헤키고토가 그들이다.

이 책의 특징은 원문과 번역문 그리고 짧은 해설도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5-7-5라는 아이쿠의 정형성을 살리기 위해 우리말 번역도 5-7-5의 정형성을 거의 지키고 있다. 그래서 아이쿠 전문가나 시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편안하고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먼저 마쓰오 바쇼(松尾芭焦)의 하이쿠를 보자. 마쓰오 바쇼(1644-1694)는 흔히 일본 하이쿠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말장난과 해학으로 치닫던 초기의 하이쿠 풍조를 반성하고 자연 풍광과 일상의 삶을 작품 속에 잘 녹여냄으로써 아이쿠를 일본 대중시의 새 영역으로 확장·발전시켰다.

장맛비 내려
두루미의 다리가
짧아졌느냐
(五月雨に鶴の足みじかくなれり)


장맛비로 물이 엄청나게 불었다. 당연히 물에 서 있던 두루미의 다리도 물속에 잠기어 짧게 보인다. 그것을 바쇼는 "다리가 짧아졌"다고 표현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인간의 시각을 조류의 이미지로 풀어냈다. (계절어 : 장맛비)

그의 또 다른 작품을 보면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삭은 치아에/ 어쩌다가 씹힌다/ 김 속의 모래" "두견새 날고/ 큰 대숲 담아내는/ 달빛이어라"는 것이 있다. 마쓰오 바쇼는 당시 재기 어린 말장난과 경박한 해학으로 빠지던 하이쿠에 높은 문학성을 부여 하이쿠의 위상을 드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요사 부손(與謝蕪村)의 아이쿠. 요사 부손(1716-1783)의 하이쿠는 "회화적이며 선명한 객관적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도 쉽게 그가 펼쳐놓은 하이쿠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봄의 물줄기가 봄빛을 반사하면서 흘러가는 광경을 그려낸 "봄의 물줄기/ 산이 없는 곳에서/ 흘러가노라"는 독자의 눈길을 단숨에 봄빛에 젖게 만든다. 또 겨울 들판의 해 떨어지는 쓸쓸한 풍경을 포착한 "을씨년 하네/ 돌에 해 떨어지는/ 겨울 들판이여"나, 해와 달 그리고 유채꽃을 하나의 구에 잘 담아낸 "유채꽃이여/ 달은 동쪽에 있고/ 해는 서쪽에", 그리고 여름 저물녘의 한 순간을 잘 포착한 시 "모기의 소리/ 인동꽃 이파리가/ 질 때마다"에 부손의 하이쿠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의 하이쿠는 흔히 "생명 의식으로 가득 찬 시적 에너지의 꾸밈없는 방출"과 "하이쿠 본래의 뜻을 주제로 삼아 강렬한 변주곡을 도출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저녁의 벚꽃
오늘도 또 옛날이
되어버렸네
(夕ざくらけふも昔に成りにけり)


저녁이 되어 벚꽃도 이미 저녁 빛깔에 싸이게 되었다. 그런 시간을 맞이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면 오늘이라는 하루가 옛날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잇사에게도 오늘이라는 시간은 금세 사라져 가는 것 중 하나다. 저녁 벚꽃을 소재로 택한 잇사의 시각이 예리하다. (계절어 : 저녁의 벚꽃)

고바야시 잇사(1763-1872)의 "지는 참억새/ 싸늘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네" "죽은 엄마여/ 바다를 볼 때마다/ 볼 때마다" "아름다워라/ 종다리가 울음 울던/ 하늘의 흔적" "도랑이 있고/ 얼음 위를 달리는/ 쌀뜨물이네" 이런 작품들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는 일본 근대 하이쿠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하이쿠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마사오카 시키(1867-1902)는 요사 부손(與謝蕪村)의 회화적 작풍을 이어받아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하는 사생(寫生)의 방법을 주장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그는 여기에다 민중들의 삶에 주목을 했던 현실주의 시인이기도 했다.

"유채꽃이네/ 확 번져가는 밝은/ 변두리 동네" "살아 있는 눈을/ 쪼러 오는 것일까/ 파리의 소리" "장작을 패는/ 여동생 한 사람의/ 겨울나기여" "귤을 깐다/ 손톱 끝이 노란색/ 겨울나기여"

마지막으로 가와히가시 헤키고토(河東碧梧桐)는 계절어나 정형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노래하자는 신경향 아이쿠 운동을 일으킨 시인이다.

"하늘을 집은/ 게가 죽어 있구나/ 뭉게 구름아"에는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한 대담한 상상력의 구도가 돋보인다. 또 "생각지 않은/ 병아리 태어났네/ 겨울의 장미"에서는 겨울 장미와 병아리라는 의외의 조합이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다시금 찬찬히 음미해보면 참신한 상상력의 적확한 이미지 결합임을 깨닫게 된다.

오석윤 교수가 옮긴 <일본 하이쿠 선집>의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다섯 명의 하이쿠 시인과 옮긴이가 나눈 가상 대담이다.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다섯 명의 하이쿠 시인을 자리에 불러내어 오석윤 교수와 벌이는 대담은 독자에게 하이쿠라는 문학적 장르의 특징과 개별 작가의 작품성을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계절을 상징하는 계절어를 가지고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함축적으로 그려낸 하이쿠 한 수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을 살아가는 일본인의 서정이 간결하게 펼쳐져 있다. 몇 개의 글자로 의미를 최대한 압축하여 메시지를 끌어올리는 하이쿠는 종종 불교의 선(禪)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한다. 짧은 시 형식과 절제된 감정으로 의미를 더 증폭시키고 있는 아이쿠를 읽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일본 하이쿠 선집

마쓰오 바쇼 외 지음, 오석륜 옮김, 책세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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