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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와 구름이 뒤덮인 구인사 풍경
ⓒ 이승철
우선 질문부터 던져보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절이 어딜까?

정답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고 있었다. 양산 통도사나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아니면 서울 종로의 조계사, 뭐 이런 절들이 큰 절에 속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충북지방 여행 중에 단양을 거쳐 구인사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소문은 들었지만 그렇게 큰 규모의 절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주차비를 받은 관리인이 잠깐 기다리면 사찰경내로 들어가는 셔틀버스가 있으니 이용하라고 권한다. 요금도 무료라는 것이었다.

거리는 800m라고 하였다. 800m라면 굳이 기다려서 버스를 탈 이유가 없었다. 요즘은 걷는 것이 취미(?)인 우리들이 아닌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두 우산을 받쳐들고 구인사를 향했다.

잠깐 걸어 올라가노라니 삼거리 갈림길에 '소백산 구인사'라고 한자로 쓴 돌기둥이 서 있다. 왼편으로 잠깐 올라가니 주차장이다. 그런데 이 주차장이 보통 주차장이 아니었다. 절 입구의 주차장과 연결된 셔틀버스 주차장이려니 했지만 규모가 너무 컸다.

▲ 구인사로 오르는 경내 풍경
ⓒ 이승철
▲ 구인사 풍경
ⓒ 이승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인근의 도시들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뿐만 아니라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와 직접 연결된 고속버스터미널도 겸하고 있었다. 한 사찰의 경내에 이런 터미널이 있다니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왼편에 지붕은 한식이지만 5층 규모의 현대식 커다란 빌딩이 서 있다. 일반 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골짜기 안으로 들어갈수록 놀라움은 계속되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골짜기 주변의 산들은 짙은 안개구름에 덮여 있는데 그 좁은 골짜기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은 갈수록 높아지고 또 커지고 있었다. 좁은 협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세운 건물들은 5층 이상만 해도 몇 개 동이나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때문인지 협곡을 가득 메운 건물들과는 달리 사람들은 별로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양쪽 협곡 사이의 건물과 축대 사이를 가로지른 다리 위에는 예쁘게 꽃을 피운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양쪽의 건물들과 구름에 휩싸인 산과 계곡을 바라보며 두리번두리번 올라가노라니 이번엔 넓은 마당과 옥상에 하얀 고깔을 쓴 수많은 독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족히 수백 개는 될 것 같은 큼직한 장독들이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이 정말 대단한 장관이다.

▲ 구인사 풍경2
ⓒ 이승철
▲ 장독대가 있는 풍경
ⓒ 이승철
마침 한쪽 건물에서 나오는 보살인 듯한 여성에게 물으니 장독이라고 한다. 대부분 간장과 된장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누가 다 먹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잘 모른다면서도 이곳 승려들과 신도들이 먹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건물 아래로 난 통로를 이용하여 위로 더 올라가니 골짜기의 맨 위쪽에서는 높고 커다란 8층 콘크리트 건물이 증축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규모다. 올라오며 헤아린 건물만도 40여 채인데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을 또 짓고 있다니.

신축건물 앞 축대의 모양도 아주 특이하다. 위아래를 빗살무늬처럼 쌓아올린 축대를 입구 화장실 근처에서도 보았는데 이건 규모도 엄청 큰 편이어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건물 옥상에는 세 마리의 코끼리 형상을 한 기단 위에 세워진 탑이 이채로운 모습이다. 일행 중 불교신자인 한 사람이 그 탑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한다. 내려오다가 여승 두 명을 만났다.

▲ 기이한 모양의 축대
ⓒ 이승철
▲ 코끼리 기단 위의 탑
ⓒ 이승철
그런데 머리가 삭발한 모양이 아니다. 그래서 보살인가 싶기도 한데 혹시나 하여 "스님!" 하고 불러보았다. 두 여승이 돌아선다. 역시 여승들이었다. 이곳 천태종은 여승들이 삭발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절의 규모에 놀랐다고 말하자 웃는다. 이 절에 상주하는 승려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으니 400명이라고 한다. 전에 TV에서 보았는데 가을 김장을 아주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얼마나 하느냐고 물으니 일정하지는 않지만 대형트럭 10대 정도 했을 거라고 한다.

그럼 신도 수는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자신들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절이겠다고 물으니 서슴없이 그럴 것이라고 한다.

"이 절은 천태종 대처승들이라 가족들도 다 이곳에서 사느냐"고 물으니 "결혼하는 대처승은 태고종이지요"하고 바로 잡아준다. 여승들 앞에서 아는 척하다가 졸지에 내 무식함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천태종은 고려 11대왕 문종의 4째 아들 의천이 창시자다. 그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불교국가였던 왕가의 관례에 따라 출가하여 송나라로 유학하였다가 1086년 3천여권의 불경을 소지하고 14개월만에 귀국했다.

귀국 후 흥국사에 머물며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4700여권의 고려 속장경을 출간하고 천태종을 일으켜 크게 번창했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와 숭유억불정책으로 쇠퇴하였는데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상월원각 대조사가 다시 이곳에서 천태종을 개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 구인사 경내 풍경3
ⓒ 이승철
▲ 다리위의 화분들과 절 입구의 구인사 표지석, 그리고 활짝 핀 철쭉
ⓒ 이승철
이 계곡은 소백산 연화봉 아래로 펼쳐진 계곡의 모양이 연꽃잎을 연상 시킨다 하여 연화지라 불리는데 신비로운 산세로 인해 대승영지로 알려져 왔다. 소백산 제4봉에서 뻗어 내린 수리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칠봉, 왼쪽의 삼봉 사이에 소위 구봉팔문, 금계포란형의 한가운데 연꽃형상을 한 곳이 이 계곡이라는 것이다.

구인사의 사찰경내에 들어서면 우선 엄청난 건물들의 규모에 압도당하여 마치 옛 궁궐에라도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4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 중에는 5층 900평의 대법당과 135평의 목조대강당, 그리고 30칸의 수도실 판도암, 400평의 3층 건물인 총무원만 해도 대단하다.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 본산으로 정확한 신도 수는 파악이 어렵지만 대략 17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상주하는 승려만도 400여명에 1천여명의 신도들이 묵는다고 하니 이만한 절이 또 어디에 있을 것 같지 않다.

"신도수가 200만 명이라면 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를 통틀어도 단위 종교시설로는 가장 큰 규모의 조직이겠는데……."

일행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를 망라한다 해도 이렇게 큰 규모의 단위종교시설은 없을 것 같았다.

▲ 구인사 풍경4
ⓒ 이승철
"정말 대단하구만.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 걸. 골짜기의 규모로 봐서는 작은 암자나 한 채 있을 법한 곳에 이렇게 대단한 절이 들어서 있을 줄이야."

"마치 옛날의 고궁에 들어온 느낌이야. 건물들이 하도 크고 많아서. 계곡이 비좁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좀 답답해 보이긴 하지만."

일행들의 놀라움은 다시 절 입구 주차장에 내려올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뉴스와 시골아이에도 보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 에서 다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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