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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를 추는 이승희
ⓒ 김영조
"나는 그날 난정 이승희님의 춤에서 깊은 연못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장중한 소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으니 무겁게 뿌리고 제치는 그녀의 흰 장삼소매가 만들어내는 곡선과 공간에서 나와 나의 카메라는 완전히 사로잡혀 한동안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위 글은 전문 사진작가인 전 명지대학교 이용남 교수가 이승희의 '승무'를 보고 가슴을 토해낸 글이다. 처음 본 춤에서 그는 전통춤의 진미를 짙게 맛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2월 23일 늦은 4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이승희는 제4회 전통춤 공연을 열었다.

@BRI@이승희는 보통의 춤꾼과는 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조선조 재인청 출신의 마지막 광대로 지난 1995년 세상을 뜬 이동안 선생의 춤, 예술적 기교보다는 전통춤을 원형에 가깝게 후대에 전했다는 그 춤을 올곧게 계승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공연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이승희의 공연에 늘 함께해온 최종민 교수는 먼저 이승희를 소개한다. "옛날엔 기방춤이 아니라 재인춤, 즉 남자들만이 추는 광대춤이 이어졌는데 이런 전통이 이젠 거의 끊겼다. 그런데 이승희는 이 춤을 재인청 춤꾼 이동안에게 배웠고, 그를 그대로 지키고 발전시키려 애써온 사람이다."

▲ 춤추는 듯 멈추고, 멈춘듯 춤추는 태평무를 추는 이승희
ⓒ 김영조
첫 시작은 '태평무(太平舞)'인데 최 교수는 태평무가 조선 말기처럼 나라가 불안하고 어지러운 때 발전한 춤으로 어쩌면 지금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이 춤엔 그 해의 풍년을 축복하고,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는 춤으로 춤꾼의 염원이 발현된다고 설명한다.

태평무는 장단이 복잡해서 가락을 알지 못하고는 춤을 출 수 없고, 동작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으면서 섬세하고 우아한 춤이다. 특히, 발 디딤 모양새가 다양하고 발을 구르는 동작에서 이 춤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이승희의 태평무는 움직이는 듯 멈추고, 멈춘 듯 춤을 추는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이어서 김효정, 황신교, 김윤경, 구교원, 코마다 미호, 김백광, 윤주희 등 이승희의 제자 7명이 펼치는 '전통기본무(傳統基本舞)'인데 이는 전통춤을 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우리 춤의 기본이다. 음양에 기초한 깊이 있는 호흡법을 바탕으로 하여 몸의 기운에 이끌리듯 서서히 움직이며 추는 그들은 각자의 개성과 또 모두의 어울림이 동시에 드러나는 춤을 춘다.

▲ 전통기본무를 추는 이승희의 제자들(김효정, 황신교, 김윤경, 구교원, 코마다 미호, 김백광, 윤주희)
ⓒ 김영조
전통기본무 공연이 끝난 뒤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이수자 한민택씨의 쉽게 볼 수 없는 거문고 산조가 이어진다. 그의 거문고산조는 역시 선비의 깊은 풍류가 한껏 발산되는데 한민택, 그는 천상 전생에 선비였는가?

계속되는 춤은 '엇중모리 신칼대신무'이다. '살풀이춤'과 함께 무속춤에서 발생한 것으로 내적인 감정을 절제된 춤사위로 표현하는 깊이 있는 춤이다. 장구, 대금, 피리, 아쟁, 해금, 징이 함께 한 반주에 구음이 같이하여 사람의 신명을 울리고, 깊은 몰아의 경지로 이끈다. 화려한 재주나 지나친 기교를 억제하면서 머뭇거리다 치솟기도 하고, 좌우로 어긋 매기며, 풀고 맺는 춤사위는 그윽한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은 이승희의 제자 김윤경, 황신교, 코마다 미호, 최은주가 함께 한 검무(劍舞)이다.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 '황진이'에서 나오는 평양검무와는 다르다. 검무는 신라의 황창랑이 백제의 장수를 죽이고 추었다는 고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진주, 통영, 평양 땅에 독특한 검무가 전해지며, 여기 추는 검무는 이동안으로 이어진 재인청류라고 한다. 비교적 전투적이고, 활달한 춤사위가 엿보인다.

▲ 엇중모리신칼대신무로 관객을 깊은 몰아의 경지로 이끄는 이승희
ⓒ 김영조

▲ 재인청류 검무를 추는 이승희의 제자들(김윤경, 황신교, 코마다 미호, 최은주)
ⓒ 김영조

▲ 살풀이춤을 추는 이승희,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 휩싸고 있다.
ⓒ 김영조
검무가 끝나자 이승희는 많은 사람이 익히 추어온 '살풀이춤'을 춘다. 슬픔이 바탕이 되어 그것을 승화시키는 내적 감정을 표현한 깊이의 춤이다. 삼현육각의 반주와 구슬픈 구음에 맞춰 흰 수건을 들고 공간을 휘감듯이 선을 그리고, 태극사위를 이루기도 한다. 청중은 숨을 죽이며, 그 속에 깊이 가라앉는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그치지 아니하는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 하리라"

살풀이춤 뒤엔 청아하고 아름다운 시조창이 그윽하다. 소리를 한 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이수자 변진심씨이다. 예전엔 선비들이 늘 소리하던 것인데 어찌 이렇게 맑고 고운 아름다움이 공연장을 휩싸는가?

이제 이 공연의 마지막 정점 승무가 시작된다. 승무는 일제강점기부터 많이 공연되었던 것으로 승복을 입고 추는 민속춤인데 한국 전통춤 가운데 빼어난 춤사위와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춤이다. 이승희는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장중한 힘에 의해 긴 장삼 소매를 무겁게 뿌리고 제치며 만들어내는 공간미와 내적 깊이를 한층 아울러 이 춤의 예술성과 품격을 제대로 드러낸다.

▲ 살짝 삐져나온 외씨버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승희의 승무
ⓒ 김영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조지훈은 승무를 쓰면서 이승희를 상상하지는 않았을까? 살짝살짝 내비치는 외씨버선은 그의 내면을 수줍은 듯 보여준다. 또 휘날리는 장삼소매와 고깔은 이승희 내면의 신비 속으로 청중을 몰고 간다. 아하! '승무'는 이런 것인가? 저 깊은 이승희의 내면엔 어떤 철학이 깃들어 있을까? 어쩌면 온 세상을 저 가냘픈 한 몸에 껴안고 있는가?

"송구영신(送舊迎新)
송구영신하며 해가 바뀌는 때에 (送舊迎新換歲時)
지난해를 회상하니 꿈 같음을 알겠네. (流年回想夢如知)
서실에서 글 읽을 땐 성인을 만나는 즐거움이요, (書室讀書逢聖樂)
무대에서 춤출 때는 신선이 되는 듯 기쁨이라네 (舞臺演舞化仙怡)
물외 생애에 천 폭의 그림이요. (物外生涯千幅畵)
임천낙도에 백 편의 시로구나 (林泉樂道百篇詩)
새해 아침 빛나는 태양이 승천할 제 (元朝旭日昇天際)
온 나라에 왕운이 기약되길 축원해보네. (祝願邦家旺運期)" -공연 소책자에서 이승희 지음-


"사실 저희는 한국 사람이에요!"
[대담] 검무를 춘 이승희의 제자 코마다 미호와 황신교

▲ 검무를 춘 이승희 제자 황신교(왼쪽)와 코마다 미호
ⓒ김영조
이승희의 전통춤 공연에 청중들의 눈길을 끈 춤꾼들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공연에 참여한 일본인 코마다 미호(26)와 대만 사람 황신교(27)가 그들이다. 외국인으로 어떻게 한국춤을 출 수가 있었을까? 아직 유창하지는 않지만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이 한국말을 하는 그들과 대담을 할 수 있었다.

코마다 미호는 지난해 이승희 공연에도 참여한 사람으로 현재 일본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이며, 대학에서 의료경제를 공부하고 있는데 이번 공연을 위해 일주일 휴가를 냈다고 한다. 황신교는 지금 성균관대 무용과 1학년에 재학중이다.

- 어떻게 한국과 인연이 되고 한국춤을 배웠나?
(미호) “원래는 일본춤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나는 가수 신화를 좋아해서 경희대 국제교육원에 한국어 공부를 하러 왔다. 그런데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먼저 한국춤을 시작했고, 그 친구가 소개해서 나도 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한국에 여행 온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그 뒤 한국 전통문화가 재미있었고, 이제 그 중 하나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황) “나는 6살 때부터 춤을 배웠다. 그런데 올해 텔레비전에서 한국춤을 보고 배우고 싶었는데 이제 그렇게 된 것이다. 가을동화 드라마 예고편을 본 이후 송승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가 좋다.

그동안 나는 한국에 여러 번 왔는데 그때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았다. 박물관에 가보았는데 백제, 신라 문화가 좋았고, 공주 갑사에서 1박 2일간 절체험 행사(템플스테이)에 참여한 한 적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참 친절했고, 나는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 한국에 대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황) “대만 사람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을 너무나 좋아한다. 나는 그것이 걱정스러운데 그에 비하면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나는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며, 그로 인해 나라가 크게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대만 남성들과 달리 한국 남성들은 남성우월주의가 심한 듯하다. 그것은 문제이다.”

(미호) “드라마 대장금을 본 뒤부터 아버지를 비롯하여 식구들은 한복 입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혹시 조상 가운데 한국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족보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춤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황) “나는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건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처형됐다는 말을 듣고 울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은 나도 한국인이 분명하다.”(웃음)

그들과 대담을 하면서 참 소탈한 여성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승희씨가 거든다. “이 두 친구는 참 착하고, 열심이다. 남의 나라에 와서 그것도 어려운 전통춤을 공부하는 그들에게 나는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래 공부를 한 한국인들에 비해 쳐지지 않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춤을 추는 그들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 다음, 대자보, 뉴스프리즘에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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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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