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화병에 걸렸을 땐 마음 속에 고인 화를 밖으로 풀어내야 한다. 사진은 KBS 2TV 일일아침드라마 <아줌마가 간다>.
ⓒ KBS
두 어깨에 우리 사회를 짊어지신 아주머니들, 모두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성병 잘 고치기로 소문난 명의 '소문난'입니다. 본 의원이 아주머니들께 오늘 글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화병에 대한 아줌마식 처방을 담은 '줌마보감 화병편'입니다.

'어인 줌마보감?'이냐며 끌끌 차시는 분들이 많을지 압니다만,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시지요. 과람된 제 명성 탓인지 어느 철이나 여성 환자분이 넘치는 병실이지만 유난히 봄만 되면 우울하다, 화가 더 치민다는 여성분들이 그렇게 많답니다.

"봄 햇살이 비치니 왠지 더 우울합니다."
"베란다를 보면 뛰어내리고 싶어요."


왜 유독 봄에 화가 치민다는 분이 많은지 이 의원 알 길은 없으나 그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몰래 간직하고 있던 극비 처방인 '줌마보감'을 세상에 소개하려 합니다.

이 처방은 제 증조부께서 찾으신 것입니다. 고금동서를 통틀어 이름난 의서의 처방을 써도 도대체 낫지 않는 아줌마 화병 때문에 명약을 찾아 산골 장터 바닥까지 헤매시던 증조부. 결국 어느 시골 동네에서 쉬쉬하며 이 아줌마에서 저 아줌마로 전수되어온 아줌마 식 화병 처방을 발견하셨습니다. 이 처방을 듣고 무릎을 치시던 증조부께서는 명의 허준 선생을 본받아 '줌마보감'을 집필하시어 오늘에 전해진 것입니다.

제 1장 화병의 증상과 원인

화병의 증상

화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화병인지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꽤 많습니다. 다음의 증상이 보이면 화병에 걸린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니 바로 줌마보감을 펴고 처방을 따르도록 하세요. 화병이 죽을병도 아닌데 웬 유난이냐는 아줌마들, 그러다 큰일 납니다. 마음의 병이 깊으면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마음의 화기가 자못 깊어진 이들은 하나뿐인 목숨마저 버리기도 합니다.

만사가 귀찮다. 불안하다. 얼굴이 자주 달아오른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신경질이 난다. 명치 끝이 아프다. 우울하다.
정신집중의 곤란과 기억력의 감퇴.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이 멍하다.


화병, 어디서 오나?

@BRI@화병, 원인은 간단합니다. 맺힌 화가 풀릴 곳 없이 오래 가슴에 머물러 있으면 이것이 화병이 됩니다. 본 의원도 화를 푸는 여러 처방을 양방, 한방 의서에 나온 대로 써보았으나 아줌마들의 화병을 고치는 데는 효과가 미미하였습니다. 당연하지요. 화가 생겨난 지점이 사람마다 다른데 무턱대고 같은 처방을 했으니까요.

아줌마들의 화는 희한하게도 사람들 모두가 이곳에서만은 행복하다는 '가정'에서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정을 행복한 공간으로 만드느라 아줌마들은 정작 자신은 보살필 여가가 없습니다. 아내, 며느리, 어머니 이전에 한 사람일 진데,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아줌마의 희생이 위대하다는 정말 위대한 착각이 나옵니다. 이런 희생과 헌신을 인정이나 해주면 모르겠으나, 무시하는 말들을 툭툭 내뱉기도 합니다. "엄마는 그것도 몰라" "당신은 밥이나 해."

불만이 목까지 차올라도 사랑하는 가족끼리 행여나 등 돌릴까 두려워 참고, 돌아서면 운다는 아줌마들의 하소연이 매일 병실에 넘쳐납니다.

더욱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줌마의 화를 돋우는 또 다른 원인이 됩니다. IMF는 아줌마들의 과소비에서 비롯되었다는 둥, 무식한 여자는 아줌마라는 둥 온갖 고상하지 못한 일에 죄다 아줌마들을 끌어들입니다.

결국 가족들을 보살피고 자신을 희생하는 데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 데서 아줌마들의 화가 비롯되나니 처방도 이에 맞추어야 하겠지요?

물 건너 코쟁이 나라의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라는 양반도 말씀하시길, 인간은 생리적 욕구 위에 자존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하셨으니, 먹고 살만한 아줌마들이 무슨 불만이냐는 아저씨들은 무식한 시정잡배 되겠습니다.

제 2장 화병 치료책

[치료책 1단계] 맺힌 화 풀어내기

우선 마음 속에 고인 화를 밖으로 풀어 내주어야 합니다. 물은 고이면 썩고 화는 고이면 병이 됩니다.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화를 안에서 밖으로 퍼내세요.

① 사람 살리는 '욕'

"욕을 하라니요? 제 인격을 뭘로 보고, 저 이래 봬도 교양있는 아줌마입니다."

아줌마들 말에 착한 아줌마 마음에 골병든다고 비단결 같은 마음 그런 아줌마를 물색하시어 함께 '뒷담화' 모임을 만드십시오. 뒷담화라 비겁하다구요? 정정당당하게 앞담화하고 싶은 아줌마들 마음이야 굴뚝이겠으나, 굴뚝 지을 힘도 없는 아줌마들에게 뒷담화마저 못하게 하다니요.

② 허해야 마땅한 무도회장

유교의 서릿발 같은 규율이 남아있던 일제시대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 모던 걸과 보이들이 있었습니다. 딴스, 시쳇말로 댄스. 요즘 젊은 세대들이야 춤 한 자락 잘 추는 것이 자랑이요, 또래들 사이의 인기비결이라지만 30대 이상 아줌마들에게 춤은 조금 경박한 취미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특히 무도회장 가는 아녀자들은 담배 피우는 아녀자들과 더불어 '한 때 면도칼 씹으며 거리를 누볐다던 칠공주파'의 일원으로 낙인찍히기도 하구요. 그런데 말이죠. 많은 아줌마들이 춤만큼 모든 화를 일순간 싹 날려버리고, 해사한 웃음을 안겨주는 것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아줌마들이 왜 저래" 하는 사람들에게는 딴스홀을 허라라며 일침을 놓았던 일제시대 그 언니들처럼 일침을 놔주세요. "아줌마에게 무도회장을 내놓아라, 아니면 조선시대로 돌아가던가."

▲ 화병 치료책 3단계는 자신의 삶이 충만하고 즐거운 자아실현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치료책 2단계] 나 드러내기, 나 인정받기

2단계는 단순히 화만 풀어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생겨난 그 뿌리를 캐내는 단계입니다. 지금껏 표현하지 못했던 내 생각 표현하기, 떳떳하게 나 인정받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① 아니 하면 큰일 날 '아니 不'

아내, 며느리, 동서, 형님, 형수님, 질부…. 결혼하면 여성들에게는 수많은 이름이 주어지고, 덩달아 수많은 의무들도 주어집니다. 의무에는 응당 권리가 있어야 하나 권리는 쌀알만큼도 없습니다. 이 의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대를 하면 온 집안이 소란스러워지는 부작용이 생기므로, 대부분 아줌마들은 '아니오' 소리를 가슴에 묻고 산다고 합니다.

묻힌 '아니오'는 그대로 화가 변합니다. 그러니 '아니오'를 한 번도 못해보셨다면 당당히 해보십시오. '네'만을 해야 하는 관계란 부처님도 돌아앉을 관계입니다.

② 아줌마 총파업

실제로 행동에 옮겨지면 어마어마한 파급효과가 예상되어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전설의 줌마네 처방, 아줌마 파업.

"흰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집안 뒷정리하기까지 11시간을 훌쩍 넘겨 일하는 나에게 논~다~는 망언을 하다니. 진짜 나 하루라도 없어 봐라."

수많은 아줌마들이 홧김에 되뇌었던 '나 하루라도 없어 봐라'. 이 말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극약 처방입니다. 한날한시에 모든 아줌마들이 함께 궐기하면 내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아줌마들의 노동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부대효과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총파업일, 하루라도 아줌마가 없는 생활이 어떤 생활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참다 못한 국민들이 협상을 요구하면 8시간 노동제, 아줌마 놀토제 등 그동안 쌓아두었던 아줌마들의 염원을 이룬다'는 가상 시나리오도 갖추고 있습니다.

③ 좋은 바가지 주책바가지

"도대체 아줌마는 안되는 일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가끔은 찢어진 청바지도 입고 싶고, 뮤지컬 공연도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아줌마에게는 살림하고 아기 키우는 일 외에는 많은 행동이 금기시된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아줌마는 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감히 인간이 어찌 살신성인하신 예수님의 근처에 갈 수 있겠습니까? 아줌마도 욕구와 희망이 있는, 당당한 한 사람임을 보여주세요. 남들이 주책바가지라고 하면 뭐 어떻습니까? 주책바가지는 좋은 바가지입니다.

④ 싹수 노란 말에는 노란 딱지

아무리 한솥밥 먹는 가족들끼리도 해서 안 될 말이 있습니다. "아유 뚱뚱한 아줌마" "당신이 하는 일이 뭐야" 이런 말들은 서늘한 칼날이 되어 가슴에 꽂힌다고 아줌마들은 종종 이야기하십니다. 이런 싹수 노란 말에는 축구 경기 때 쓰는 노란 딱지(yellow card)가 제격입니다.

아줌마들도 그렇게 경고를 해주세요. 사전에 노란 딱지를 받는 말의 종류와 벌을 똑똑히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누군가 내 화를 돋울 때 심장부터 벌렁거리는 소심한 아줌마들에 특히 효과가 좋다는 임상결과가 있습니다.

[치료책 3단계] 자아실현하기

화병은 마음에 뿌리가 있는 병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충만하고 삶이 즐거운 이에게 화병은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충만하고 즐거운 상태를 이 의원 자아실현이라 부릅니다. 자아실현이라고 하면 무척 거대한 것으로, 무엇이든 일을 해야만 이룰 수 있다고 여기시는 아주머니들, 살림을 하든 아기를 키우든 '나 행복하게 살고 있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자아실현입니다.

줌마보감을 마치며

수많은 병을 다루었지만 '화병'만큼 의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병이 없었습니다. 죄가 있다면 열심히 가족들을 보살핀 일밖에 없는데, 화가 마음에 쌓여 병이 된 이 땅의 아줌마들. 이들을 위해 가족들은 오늘부터라도 그 고마움을 표시해주세요, 우리 사회 역시 아줌마들에 대한 시선을 바꿔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화병 환자 없어지면 이 이원 뭘 먹고 사냐구요? 괜찮습니다. 이 의원 망해도 좋으니 화가 쌓여 남몰래 눈물 흘리는 아줌마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진심입니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12월 <줌마서우>(줌마네 6,7기 문집)에도 실린 글을 수정한 내용입니다.


태그:#화병, #아줌마, #우울증, #여성, #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라는 모토가 신선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각 블로그와 게시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대에는, 정보의 생성자가 모든 이가 됩니다. 이로써 진정한 언론과 소통의 자유가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또 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도 알고 보면 크면 크고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 특히 아줌마들의 다양한 시각, 처한 현실 등에 관심이 많고, 이 바께 책이나 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