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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폭폭 기찻길 옆 오막살이도, 아기아기 잘도 자는 시골 풍경도, 이제는 찾기 어려운 세상이 돼 버렸다. 느림의 미학의 가치가 무능의 소치로 폄하되는 속도의 시대에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내 마음속의 기차역을 따라 길을 한 번 떠나 보고 싶어졌다.

우선 생각나는 게 30년 전 입영열차를 기다리며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매만지던 기억이다. 삼 년이라는 시간동안 날 기다리지 말라는 마음에도 없던 말을 해야만 했던, 약간은 애절하게 끈적거리는 슬픔처럼 목이 메었던 '동래역'의 풍경이다.

소몰이를 하는 듯한 헌병들의 발짓과 손짓 속에서, 이제 막 누가 주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송아지처럼, 그들 말대로 국가의 관물이 되어 열차를 탔던 그곳, 객차 안에는 아주 짧은 손 흔드는 이별의 시간이 지나고, 소위 '침상 위에 수류탄, 침상 아래 수류탄'이라는 쥐잡기 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간 이십 수년의 가을이 시간의 주마등처럼 동래역 플랫폼을 빠져나가면서, 청춘의 일막 일장이 지나가는 기차 바퀴의 소음이 서늘한 가을 오후에 하늘 저편으로 퍼져 나갔다.

대낮인데도 열차 안은 취침 등처럼 흐릿한 불빛 아래서, 소년에서 아저씨가 되는 과정을 아쉬워하는 까까머리들의 한숨이 매캐한 담배연기처럼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한밤중에 연무대 역에서 하차, 진짜 소몰이를 방불케 하는 몰이꾼들의 다그침을 피해 수용연대라는 이상한 막사 안으로 쫓겨 들어가면서 동래 역의 아스라한 입영일기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가을 어느 날 태양이 작열하던 그 동래역의 열기와 한숨을 생각하면 묘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온몸을 스멀거리면서 덜컹거리는 기차 승강구에 뛰어서 올라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물론 이제는 나 혼자서 자유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아주 조용한 간이역을 가보게 되었다. 모 방송국의 드라마 간이역으로 유명해진 경춘선에 있는 '신남역'이 그곳이다. 작가 김유정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곳은 최근에는 김유정 문학제 등 행사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어느덧 유명한 관광지처럼 돼버렸다.

그런데 내가 진짜 이곳에 끌린 것은 거기에 가 보기 전에 드라마의 내용에서 느낀 이미지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늙은 철도원은 정년을 앞두고 있는 역무원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간이역의 부역장이다. 젊은 역장 아래에서 다른 역무원을 관리하고 자기 일에 충실 하는 전형적인 소시민인 그는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이 그의 인생의 희망이자 자랑거리인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버지의 소시민적인 평범한 희망과는 좀 다른 그 당시로서는 생소한, 어쩌면 아직도 좀 그럴 수 있는 고고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전공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어느 결혼 정보업체에 조사한 신랑감의 직업선호도에서 제일 인기없는 남편감의 직업으로 인문계대학원생이 선정되었다는 걸 본 적이 있다. 슬프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고, 그 아버지의 고민이나 걱정도 먹고 사는 문제와 더불어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당연한 마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아들의 어릴 적 동네친구가 금의환향해서 그 내막을 보니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출세의 상장인 예비 판검사가 되어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날 밤 한잔 술에 거나하게 취하고 아들에게 참았던 마음속의 한 마디를 건넨다.

"난 네가 고고학이라는 걸 공부하겠다고 할 적에,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걸 해서 먹고 살 수나 있나 걱정도 됐지만 내 아들이 하는 거니 믿고 다르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언제 밥벌이하고 출세하겠느냐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와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는데, 기분이 착잡해진 나는 얼마 뒤에 덜컹거리는 기차간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신남역으로 향했다.

역은 그야말로 자그맣고 조용하고 시간이 병 속에 갇힌 듯한 정밀한 분위기였다. 물론 드라마 속의 그런 분위기를 주는 역무원은 없었지만 철로 레일을 따라 애리조나 사막의 시퍼런 선인장처럼 뜨거운 햇살 속에서 무성하게 자란 옥수수 잎들의 서거 거리는 소리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 후에 김유정 문학 캠프라는 것도 한 번 가고 신남역을 두세 번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그때 신남역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들이 찾아갈 만한 길모퉁이의 카페는 아니었다. 내 마음속의 두 번째 간이역은 그렇게 빛바랜 사진첩 속의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일 년이 저무는 섣달 그믐에 환상선 눈꽃열차라는 하루 짜리 환상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청량리역을 출발한 열차는 양평, 제천 등을 거쳐 이름 모를 작은 시골역들을 쉬엄쉬엄 잠깐씩 거쳐, 한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번째 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스위치 백' 방식이라는 뒤로 갔다 다시 올라가는 신기한 열차운행체험도 하고, 어느덧 구름도 쉬어 넘는 수준의 고도에 있는 어느 역에 도착했다. 그전에 어느 석탄 산지, 탄광이 있는 시커먼 역에 멈췄을 때 아마 황지 정도였나 보다. 잠깐 쉬는데 배도 고프고 밥 먹을 데도 없어서, 구석에 있는 먼지 묻은 낡은 초소 안에서 석탄 가루를 마시면서 가져간 토스트를 물도 없이 우겨넣었다.

그제야 맛을 운운하기 전에 생존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위대한 자각(?)이 새삼 밀려왔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역, '추전역'에서 바라본 아래 세상은 차가운 겨울의 눈발과 함께, 마치 외로운 양치기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반대쪽 아래에는 재래식 오일장이 서울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얼어붙은 저수지 위로 오랜만에 막대기 두 개로 지치는 얼음 썰매도 타고 공짜로 옥수수 막걸리도 한 잔 얻어먹었다. 그러나 곧 열차가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되고, 환상여행도 겨울 동화도 그렇게 끝났다. 가을날의 밭, 추전이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산다는 게 그래도 아기자기한 구석이 아직도 남아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 하루였다.

하루하루 살벌한 일상 안에서, 그래도 풋풋한 기억의 저편을 간직할 수 있는 내 마음속의 기차역은 이렇게 지나갔다.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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