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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한신계곡을 지났습니다.
ⓒ 서종규
요즈음 지리산 계곡은 맑고 깨끗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점 오욕도 사라진 내 몸은 흐르는 물이 되어 버립니다. 돌 사이를 흐르는 물은 지리산 전체가 됩니다. 동행한 서민호 선생은 "귀가 열리고 눈이 맑아져 내 몸이 계곡이 되어 버렸다"고 나직이 속삭입니다.

"한신계곡에 들어서니 내 귀가 열리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푸른 녹음이며 흐르는 물이 내 귀를 지나갑니다. 내 눈은 옥빛 물빛에 빠져 맑은 물빛이 됩니다. 지나가는 흔들다리 옆으로 뻗어오는 하얀 산목련꽃에도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내 몸이 그대로 계곡이 되었습니다. 한신계곡이 이렇게 좋은 줄을 처음 느낍니다."

지리산엔 이런 계곡들이 많습니다. 가장 길다는 칠성계곡은 절반밖에 개방되어 있지 않지만 그 맑은 물과 돌에 태고의 신비까지 드러내게 하는 원시 상태의 생태계가 있습니다. 뱀사골 계곡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달궁계곡은 야영장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을철 단풍의 속살까지 붉게 비친다는 피아골계곡, 대원사계곡이며 의신계곡, 청학동까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 맑고 깨끗함의 극치를 이루는 지리산 한신계곡
ⓒ 서종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38명은 9일(토)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기 위하여 오전 7시 광주를 출발하였습니다. 88고속도로를 타고 인월 나들목으로 나가 백무동 안내소를 통과하여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천왕봉에 올랐답니다.

천왕봉에서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와 오후 4시,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백무동까지는 약 6.5km에 달하는 한신계곡이 펼쳐집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백무동계곡으로 생각하는데, 이 계곡이 바로 한신계곡입니다.

안내도에 의하면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 하여 '한신계곡(寒新溪谷)', 또는 중국의 한신 장군이 이 계곡에 잠시 피신했던 곳이라 하여 '한신(漢信溪谷)'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 지리산 한신계곡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폭포들도 많습니다.
ⓒ 서종규
세석대피소에서 급경사로 내리막길을 내려갔습니다. 약 30여분 정도 내려가면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폭포가 나옵니다. 여름에는 물이 풍부하겠지만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석대피소로 오르거나, 세석대피소에서 내려오다가 쉴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점입니다. 우리들도 배낭을 내려놓고 폭포로 다가갔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너무 시원하였습니다.

한신계곡은 세석대피소에서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이 험합니다. 그리고 한신폭포 지점까지도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힘이 듭니다. 하지만 울울창창한 그 푸름에 금방 빠져들어 버립니다. 이제 여름을 향하여 손을 내뻗는 나뭇가지들의 출렁거림은 내 마음이 중국영화에서 주인공이 대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것 같이 푸름 속에 유영합니다.

▲ 지리산 한신계곡에 빠져드는 저 푸름
ⓒ 서종규
크고 작은 돌들도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커다란 바위나 작은 돌들 모두 둥글둥글 계곡에 자리 잡고 물에게 자리를 내 줍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물은 나뭇잎의 푸름까지 받아 더 맑은 얼굴이 되어 계곡 전체에 퍼집니다.

사실 한신폭포까지의 길이 어렵지, 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지리산 계곡 중에서 가장 완만한 길입니다. 그래서 한신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지 모릅니다. 계곡의 깊음은 끝이 없는데, 오르내리는 길은 완만하니 피곤은 사라지고 내 몸은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 한신계곡은 있는 그 자체로 맑고 깨끗함을 몸에 가득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 서종규

▲ 한 점 오욕도 사라진 내 몸은 흐르는 물이 되어 버립니다.
ⓒ 서종규
쏟아지는 물소리를 밟고 지나온 길에 여러 폭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신폭포,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첫나들이폭포, 그리고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작고 큰 폭포들, 물소리에 섞인 새소리 바람소리는 다시 폭포 쏟아지는 소리로 합해졌습니다. 튕겨 나오는 그 소리들이 온 계곡을 울리고 멀리 하늘에까지 퍼지니 그 시원한 맛에 어디 한기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 폭포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폭포 양 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줄 위로 건너가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졌답니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하여 '가내소 폭포'라고 이름 붙여진 폭포는 그 시원함이 더욱 가득하였습니다.

▲ 지리산 한신계곡 가내소폭포
ⓒ 서종규
지리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한신계곡에도 놓여 있습니다. 흔들거리는 다리도 있었고, 목재로 튼튼하게 만들어 진 다리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흔들거리는 다리를 지날 때의 기분이 훨씬 큽니다. 다리 옆을 지날 때 하얀 산목련꽃이 너무 순수하였습니다.

▲ 다리 옆을 지날 때 하얀 산목련꽃이 너무 순수하였습니다.
ⓒ 서종규
한신계곡은 있는 그 자체로 맑고 깨끗함을 몸에 가득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지리산 계곡이 이렇게 깊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계곡에 반하여 내 몸에 지리산 사랑을 채울 수 있습니다. 동행한 장미희 선생은 한신계곡을 내려가면서 "꽃에 반하고 물에 반했다"고 말합니다.

"난 계곡의 물에 반하고, 꽃에 반하였습니다. 데려올 수도 없고, 매일 가 볼 수도 없는 그 맑고 순수한 한신계곡의 물에 발만 두 번 담그고 왔습니다. 내 발은 그대로 그 맑은 물 속에 있습니다. 그 물을 벌써 또 보고 싶습니다."

한신계곡을 지나오는 내내 지리산의 깊음을 느꼈습니다. 맑고 깨끗함의 극치를 이루며 깊이 안아주는 산, 지리산은 분명 어머니산임을 느낍니다. 오후 6시 30분 백무동에 도착했을 때 지리산에 대한 경외심으로 내 옷깃을 여밉니다.

▲ 한신계곡은 있는 그 자체로 맑고 깨끗함을 몸에 가득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 서종규

태그:#지리산, #한신계곡, #가내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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