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리산의 구름은 변화무쌍하다.
ⓒ 서종규
어머니의 산, 지리산은 우리들에게 늘 손짓한다. 우리들은 늘 지리산을 꿈꾸지만 정작 지리산이 먼저 어머니처럼 우리들을 부른다. 그래서 어느덧 우리의 발길을 지리산으로 향하고, 그 깊은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서야 그렇게 목말랐던 그리움은 한 줄기 구름이 되에 세상에 퍼진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든 산이 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겠지만, 특히 늘 가슴 가득 치밀어 오르는 지리산에 대한 열망은 다른 방법으로는 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철따라 지리산을 찾아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르는 순간부터 온몸에 차오르는 지리산의 깊음과 가득함을 느끼며 말이다.

그리움이 폭발할 것 같아 그 산을 찾다

▲ 거대한 지리산 줄기을 바라보니 그 봉우리와 능선들에 구름이 넘나들고 있었다.
ⓒ 서종규
지난해 10월 단풍이 지리산 능선을 기어오를 때에 천왕봉을 다녀 온 후 반년이 넘도록 찾지 못한 그리움이 폭발할 것 같아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38명은 9일(토) 오전 7에 광주를 출발하였다. 88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 휴게소를 지나 인원 나들목으로 나가 오전 9시에 백무동이 도착했다.

이번 산행은 지리산 천왕봉이 목표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많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노고단에서 줄기를 타고 30여 km를 지나 오르기도 하고, 대원사 계곡에서 오르기도 하고, 중산리에서 오르기도 한다. 또 백무동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 저 멀리 뻗어있는 지리산의 거대한 산하가 한 눈에 들어온다.
ⓒ 서종규
백무동에서 오르는 길도 쉽지 않다. 백무동 안내소를 지나면 한신계곡과 갈라지는 삼거리부터 시작된다. 천왕봉에 오르려면 장터목까지 5.8km를 올라야 하는데,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약 2km를 오르면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 앞에 서 있는 큰 바위 하나가 있다. 이 바위의 이름이 하동바위이다. 계속 오르다가 오르다가 지쳐서 쉬었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꿀 같은 지점이다.

하동바위 다리 밑에 흐르는 물에 땀을 씻고 다시 출발하여야 한다. 지리산에 오르는 길에선 시간을 계산하면 힘들어진다. 그냥 앞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좋다. 하동바위에서 또 줄기차게 몇 백 미터를 올라가다 보면 참샘이 있다. 장터목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마지막 샘이다.

지리산 산행이 좋은 것은 물이 많다는 것이다. 지리산 계곡의 물이 아니라도 곳곳에 샘이 많다. 오르는 길마다 한두 군데씩 샘이 있다. 백무동을 출발하여 끝없이 오르는 길에서 연신 땀을 쏟아내며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하여 물을 먹다보면 어느새 준비한 물이 다 떨어져 버린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에겐 너무나 좋은 지점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참샘에서 목을 축이고 또 병에 물을 담아 다시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다 보면 이제 지쳐서 다리가 떨려오는 지점에 고개가 나온다. 고개라고 해도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과 참샘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넘어가는 길이 없다. 고개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가지고 간 참외 하나를 깎아 먹었다.

참외 한 조각이 이렇게 힘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 신기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니 백무동에서 3km지점에 소지봉(1312m)이 나온다. 산에 오른 지 1시간 30분이 지났다. 소지봉이 반가운 것은 끝없이 오르기만 하던 길이 능선을 타고 옆으로 돌기도 한다. 그래서 백무동에서 출발한 사람들인 이 소지봉까지 오르는 길에서 인내력의 한계를 체험한다.

▲ 지리산의 울창한 나무들과 구름
ⓒ 서종규
수많은 나무만 바라보면서 돌길을 오르던 발길은 이제 저 멀리 뻗어있는 지리산의 거대한 줄기도 눈에 들어오고, 그 줄기 위에 뭉게뭉게 피어있는 구름과 파란 하늘도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의 날씨가 아주 좋다는 것이다. 아마 지리산을 타는 사람들은 이정도의 날씨를 만나는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소지봉에서 출발하여 1.3km 정도 오르면 또 한 숨을 쉴 수 있는 망바위(1460m)가 나온다. 지나온 발길은 어느새 지리산 능선에 올라 있고, 끝없이 펼쳐진 계곡과 줄기들이 어우러진 거대한 지리산의 산새를 바라다보면 가슴이 툭 트인다.

▲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
ⓒ 서종규
12시가 다 되어서 장터목 대피소(1653m)에 도착하였다. 장터목 대피소는 1971년 지리산에서 최초로 '지리산 산장'이 세워졌고, 1986년에 재건축하여 장터목산장이라 개명하였으며, 1997년에 다시 건축하여 총 150명이 이용할 수 '장터목 대피소'가 되었다.

장터목은 옛날 산청 시천(중산리) 사람들과 함양 마천(백무동) 사람들이 닷새에 한 번씩 만나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리산을 사이에 두고 두 곳의 사람들이 만나 물물을 교환하였다면 그 많은 짐들을 짊어지고 이 높은 지리산 능선까지 올랐단 말인가?

많은 등산객들이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모두 힘든 표정도 없이 왁자지껄 장터를 연상하게 한다. 그 힘든 산행 후 먹은 점심의 맛을 무어라 형언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도 점심을 먹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약간 내려가면 물병에 물을 채웠다.

천왕봉에 올라 '만세'를 외치다

▲ 지리산 제석봉 부근의 고사목 지대
ⓒ 서종규
오후 1시, 식수를 보충한 우리들은 다시 천왕봉을 향하여 제석봉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장터목에서 계단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길을 오르면 제석봉(1808m)이 나온다. 이 제석봉에 오르는 길목이 바로 고사목 지대다. 태고의 신비를 자아내게 하는 지리산의 고사목이 가장 많은 곳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50여년 이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짙은 푸름을 드러내던 곳이었단다. 한데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고 불을 질렀단다. 그래서 제석봉을 몽땅 태워서 고사목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자 차츰 그 죽은 고사목도 땅 속으로 스며들어 그리 많지가 않았다.

▲ 연한 분홍빛 철쭉 위에 서 있는 고사목은 우리들에게 더 많은 신비를 자아내게 하였다.
ⓒ 서종규
이 고사목 지대는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인하여 많이 훼손되어 식생 복원을 위하여 통행금지를 시켰고, 그 이후 많은 노력을 하여 푸른 나무들과 풀이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그 푸른 풀 위로 우뚝 솟아있는 고사목은 우리들에게 더 많은 신비를 자아내게 하였다.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아직도 연한 분홍빛 철쭉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2주 전에 갔던 소백산의 철쭉보다 더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지리산의 높은 지대에 남아 있는 연한 철쭉은 고사목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장터목에서 1.7km밖에 되지 않은 천왕봉은 우리들을 쉽게 맞이하지 않는다. 통천굴(1814m)을 지나 청왕봉에 오르는 가파른 경사면은 우리들을 마지막 힘을 다 쏟아내야만 하였다. 오후 2시, 그렇게 오른 천왕봉이었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려가는 사람들
ⓒ 서종규
천왕봉에 처음 올랐다는 박정하 선생은 천왕봉에 오른 첫 소감을 "만세"라고 외쳤다. 또 지리산을 그렇게 많이 찾았지만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천왕봉에 올랐다는 고익종 선생은 "지리산 천왕봉에 처음 올라 왔는데 천왕봉은 내게 처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흥분하였다.

"그동안 수없이 노고단에 오르거나 뱀사골 등 계곡을 찾았지만 천왕봉은 처음입니다. 이번 천왕봉 산행을 위하여 뱃살도 많이 뺐고, 뒷산을 열심히 올라서 준비를 하였습니다. 천왕봉에 발을 딛는 순간 벅찬 감동이 구름처럼 가슴 가득차 올랐습니다. 더구나 그 변화무쌍한 구름들은 순식간에 벅차올라 감동하는 처녀들 마음처럼 내게 큰 기쁨으로 다가 왔습니다."

▲ 그 변화무쌍한 구름들은 순식간에 벅차올라 감동하는 처녀들 마음처럼 내게 큰 기쁨으로 다가 왔습니다.
ⓒ 서종규
천왕봉(1915m)에 올라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노고단까지 뻗어 있는 능선을 바라보니 그 봉우리와 능선들에 구름이 넘나들고 있었다. 지리산의 구름은 변화무쌍하다. 때로는 온산을 가득 덮고 있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때도 있고, 때로는 쨍쨍 맑은 하늘에 새털처럼 능선을 넘는다.

▲ 천왕봉(1,915m)에 올라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노고단까지 뻗어 있는 능선을 바라보니 그 봉우리와 능선들에 구름이 넘나들고 있었다.
ⓒ 서종규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서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