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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과 <여행의 기술>
ⓒ 이레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평수를 늘려가며 행복을 맛보는 공간, 재테크의 수단이자 소유하고 싶은 곳. 많은 사람들은 집을 이런 대상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모두 건축 속에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건물이나 집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이삼년에 한번 씩 방의 벽지를 바꾸거나 재테크를 위해 이사를 계획하는 정도다. 이렇게 별 의미를 두지 않던 집이 때로는 커다란 의미를 갖고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집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행복의 건축>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Kiss & Tell)>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집'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집, 건축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집은 그 고통의 순간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고 전한다.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중년이 되도록 보람 없는 일만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상처가 남았을 때 비로소 건축은 우리에게 눈에 띄는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기존에도 그곳에 항상 그 모습으로 존재하건만 건축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특질을 눈여겨 볼만한 마음의 열림이 없다가 슬프고 넓은 현실과 부딪힐 때,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힘든 세상과 달리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좁은 공간, 시야에 맞닥뜨리게 되는 건물의 벽 등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축물임에도 많은 이들은 그 미학성을 간과한다. 과거의 집들은 기후나 주변 환경, 얻을 수 있는 재료 등을 고려하여 지어졌다. 그래서 다수의 집주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돌, 나무 흙에 군말 없이 만족해야만 했다. 게다가 인쇄비가 비쌀 때에는 세계 다른 지역의 집을 볼 수 있는 사람조차 소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건축가들의 끊임없는 탐구와 자기 계발 끝에 집은 미학적 가치를 내포하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거의 모든 건물에 대하여 어떤 주어진 분위기에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종교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고 현대적인 분위기이거나 전원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으며 사교적인 분위기, 혹은 가정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건물이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흥분시켜주기를 바랄 수도 있으며, 조화의 느낌을 풍기기를 바랄 수도 있고 절제의 느낌을 풍기기를 바랄 수도 있다. 우리는 건물이 우리를 과거와 연결시켜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미래의 상징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수도 있다. 만일 이런 부차적이고, 미학적이고, 표현적인 수준의 기능이 무시된다면 욕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처럼 불평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집에 대해 무언가를 기대한다. 그 '무언가'는 정신적인 평안함, 특정한 분위기, 즐거움과 행복, 발랄하고 상쾌한 기분 등 다양할 것이다. 우리는 하다 못해 아파트 외벽의 색칠 상태나 거실 벽의 포인트 벽지, 텔레비전과 장롱의 색이나 디자인, 배치 등에 집착하면서 집의 분위기가 나의 정신세계를 개선해 주리라 믿는다.

저자는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우리 인격의 복잡다단한 성격 덕분에 인간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기에 집의 디자인은 기능적 측면과 함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결국 오늘날의 인간은 건축이라는 환경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에 그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된다.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감정이 늘 변함없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영속적 가치를 믿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과 건축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취향은 변덕스럽게 변화해왔음을 발견할 것이다.

"선례들에 비추어 볼 때, 나중 세대도 언젠가는 우리가 살던 집들을 지나가면서 우리가 지금 죽은 자들의 소유를 볼 때 그러는 것처럼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벽지와 소파를 보고 놀랄 것이며, 우리가 미학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했다고 조롱할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멋지게 지어 놓은 주택단지는 모더니즘의 전형이 되었다. 장식이 없는 상자 모양, 긴 직사각형의 창, 평평한 지붕 등은 고전적인 주택 양식과는 다른 형태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곳에 입주한 세입자들은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들 나름의 새로운 장식을 추가해 버린다.

입주 노동자들은 위대한 건축가의 설계를 망친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꽃무늬 벽지를 바르고, 말뚝 울타리를 세우고, 작은 여닫이 창문을 단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집'이라는 공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들로 채운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기준과 형태는 늘 변화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국 집은 자기만족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집을 꾸미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산다. 때로는 얼룩진 벽지나 색이 바랜 창틀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능력 상 쉽게 바꿀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 집에서 살게 되는 피치 못한 상황도 왕왕 발생하다.

기왕이면 작은 화분 하나라도 가꾸면서 아름다움과 행복의 요소를 갖춘 집을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이 시대의 위대한 문필가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 싶은 건축도 바로 그렇다. '행복의 건축'. 우리가 속한 모든 공간은 행복을 가져다 줄 의무가 있지 않은가!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11)


태그:#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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