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7년 6월 14일 캐나다 토론토 맑음. 쿠바 아바나 비가 많이 옴.

00시 04분. 캐나다 토론토 공항 안 공중전화 앞 의자에 앉아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어제 12시가 다 되어서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15분 전에 입국심사를 겨우 통과하고 짐 검사하다가 또 제지를 당했다. "떡과 기내식 빵 8개, 딸기잼, 버터" 등이 발각된(?) 것이다. 옆 자리에 앉았던 한국 아주머니께서 아들 같은 청년이 밥을 굶을까 봐 일행의 빵을 모두 걷어준 걸 좋아하며 챙겨놓았던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다행히 다음부터 한 번만 더 그러면 200달러를 내야 한다는 경고만 받고 최대한 빨리 달려서 갔는데 "비행기표가 보이지 않는다." 분실한 것 같다. 해당 항공사에서 영수증을 보여주고 재발행을 받은 후에 원래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출발할 수 있었다.

▲ 검색대에서 발각된 떡과 기내식 빵
ⓒ 박정규
밤 11시가 다 되어서 토론토 공항에 도착한 후 짐을 찾으러 갔는데 한 중국 여대생이 짐 찾는 걸 도와 달란다. 자신 있게 짐 찾는 걸 최대한 도와줬는데 짐이 나오지 않아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친구의 짐은 몬트리올로 바로 가는 거라고 한다. 환승 항공편이 다음날 있는 경우에만 짐을 찾고 친구처럼 바로 연결되는 경우에는 짐을 찾을 필요가 없는데 내가 깜빡하고 찾아주려고 했던 거다. 결국 친구도 내 덕분에 다음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옆자리의 캐나다 아주머니가 여행 계획을 듣고 나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콜롬비아에 있는 아들의 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연락처를 손에 들고 공항 한 모퉁이의 공중전화 아래의 소켓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사진정리를 하다가 슬리핑 백만 덮고 잤다. 사람도 거의 없었고 조용하고 전혀 춥지 않았다.

▲ 하룻밤 숙소가 되어 주었던 캐나다 공항 공중전화 앞 의자.
ⓒ 박정규
쿠바행 항공편에 짐을 싣는데 또 자전거 운송료를 요구한다. "돈 낼 준비가 되었나요?"라는 금발머리 아주머니의 질문을 여러 번 받으며 조금 뜯어진 짐을 다시 포장하며 기다려달라고 계속 말하면서 포장을 마친 후에 마치 방금 막차를 놓친 표정으로…"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경비 여행자라…" 아주 슬프고 할인을 원한다"고 말하니까 결국에는 운송료 50달러를 무료로 해주셨다.

▲ 아바나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 박정규
토론토에서 3시간 30분을 날아서 드디어 쿠바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여행자 카드를 작성했는데 별도의 돈을(원래는 15달러) 내지도 않았고 입국심사도 아주 간단하게 통과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 조립을 마치고 나니 그렇게 맑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잠시 생각하다가 신고식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물어서 하바나 대학을 찾아서 출발! 1시간 조금 넘게 길을 헤매며 겨우 아바나 대학교 앞 도착했다.

▲ 조립하는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조립 전·후의 사진.
ⓒ 박정규
저녁 6시라 은행에도 갈 수 없고 비도 오고 돈도 없고 잘 만한 곳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조금 난감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온 다이안과 일본인 카주마사가 먼저 인사를 했다. 상황을 말하자 자신들이 묶고 있는 숙소 주인의 소개를 받아서 인근의 다른 숙소를 소개해주며 돈은 내일 계산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조나단(자전거)'과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비로 흠뻑 물들었지만 벌써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니 시작이 나쁘지 않다. 다이안과 카주마사가 인근을 안내해주면서 어디서 음식을 싸게 사먹을 수 있는지 인터넷 사용은 어디서 할 수 있는지 유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해 알려주었다.

▲ 비 오는 거리 풍경
ⓒ 박정규
▲ 체 게바라 얼굴이 크게 보이던 건물
ⓒ 박정규
▲ 드디어 아바나 대학교 앞 도착!
ⓒ 박정규


2007년 6월 15일 하루종일 맑고 더움

조나단을 청소하고 캐나다 짐 검사를 무사 통과한 200달러짜리 '기내식 빵'에 초고추장과 딸기잼을 발라 먹으며 아침을 대신했다. 사진 정리, 대금 연습, 산티아고행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스페인어 회화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따로 수첩에 메모한 뒤에 은행으로 갔다. 300달러를 여행자용 돈인 300CUC로 100달러당 20%의 수수료를 내고 환전했고, 20CUC을 현지인 돈인 480페소로 환전했다. 1CUC에 24페소인 셈이다. 너무 높은 수수료에 조금 기분이 상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 왼쪽이 카주마사(일본), 다이안(이스라엘)
ⓒ 박정규
▲ 거리에서 사 먹었던 길거리 피자(10페소)
ⓒ 박정규
▲ 이 마크가 붙어 있는 집이 안전하고 저렴한 민박집이다.(1일. 15‐25$)
ⓒ 박정규


2007년 6월 16일 오전 맑고 더움. 오후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다이안과 카주마사가 아침에 찾아왔다. 카주마사의 조언대로 3일치 숙박비로 60CUC를 먼저 지불했다. 그리고 아바나에 온 이상 꼭 가봐야 한다는 아름다운 방파제로 이끌려 갔다.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해서 거기까지 데려다 주고 자기들은 인근의 좋은 호텔에서 책을 읽을 거란다.

아름다운 해변보다 그림 같은 구름들과 더위를 피해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수 많은 사람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어떤 꼬마들은 중앙 횡단에서 차가 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속력으로 달려서 바다 속으로 뛰어들기까지 했다.

▲ 카주마사와 다이안이 책을 보러 간다던 호텔. 마법의 성 같다.
ⓒ 박정규
▲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 박정규
▲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 박정규
▲ 저 끝까지 해변이 이어져 있다.
ⓒ 박정규
카주마사의 말대로 돌아가는 길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배수구 시설이 좋지 않은 지역에는 순식간에 물이 차서 소형차의 바퀴 3분의 1 이상이 물에 잠겼다. 대부분 어른들은 비를 피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비를 맞으며 웃고 있었고, 웃통을 벗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날 보며 웃으며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했지만 난 그들이 부러웠다.

저녁에 다이안과 카주마사 숙소로 찾아가서 희망 질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하고 세계의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희망영상"도 찍었다. 내일 산티아고로 간다고 하니까 쿠바 지도와 산티아고 도심지 지도를 선물로 주었다.

▲ 이렇게 비가 많이 왔다.
ⓒ 박정규
▲ 그래도 비를 즐기며 인라인 타는 친구들도 있었다.
ⓒ 박정규
▲ 아바나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친구들과 함께
ⓒ 박정규
2007년 6월 17일 하루종일 맑고 더움.

아무래도 한국에 안부 메일을 보내야 할 것 같아서 큰맘 먹고 인근 호텔로 갔다. 15분에 3.5달러다. 시간은 돈이란 게 실감난다. 100m 달리기하듯이 15분 만에 일을 마치고 터미널까지 물어 물어서 드디어 VIZUL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출발 1시간 전에 산티아고행 티켓을 51CUC를 주고 구입했다.

▲ 인터넷을 하러 간 호텔. 15분에 3.5달러나 했다.
ⓒ 박정규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피에로 아폴로'란 프랑스 친구가 먼저 말을 건다. 10개월 전에 프랑스에서 인도,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칠레, 볼리비아, 페루를 거쳐 쿠바에 왔고 마지막 여행지인 'Maria la gorda'로 갔다가 스페인 마드리드를 거쳐서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한다.

여행의 특별한 테마는 없다고 했지만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걸로 보아서 나름대로 답을 얻어 가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볼리비아가 그렇게 좋다가 말했고, 돌아가서는 원래 직업인 조명 기술자의 삶을 계속 이어 갈 거라고 했다.

차 시간이 되자 조나단을 짐칸에 싣는데 짐칸이 워낙 크고 넓어서 "쏘옥"하고 들어갔다. 다행히 별도의 요금은 지불하지 않았다. 차 안에는 에어컨 바람이 넘쳐났다. 추워서 근처의 구멍을 모두 막았는데 군데군데 구멍 마개 자체가 없는 게 제법 있었다. 미리 겉옷을 꺼내는 게 좋았을 텐데…….

7명의 승객을 태운 48인승 관광버스는 아바나에서 오후3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 7시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 또는 지역 터미널에서 사람들을 조금 더 태우고 내리고를 반복했지만 10명이 넘었던 적은 없었다. 2~3명의 기사가 번갈아 가면서 운전을 하면서 서비스로 작은 캔디를 몇 개 주었고 의무감으로 오토바이 관련 영화도 틀어줬다. 작은 화장실도 있었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 산티아고행 버스 모습
ⓒ 박정규
▲ 버스에 조나단을 실은 모습.
ⓒ 박정규
여러 도심지를 지나가는데 옴니버스라고 적힌 버스 안에 다양한 트럭 짐칸에 사람들이 가득 타고…… 아니, 실려가고 있었는데…… 내가 탄 버스의 기사는 마치 비행기 승무원의 기장 같은 느낌의 옷을 입고 있었고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너무 빨랐다. 덕분에 지금 버스를 타고 있는 건지 작은 비행기를 타고 있는 건지 헷갈렸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엽서 속의 풍경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는 느낌에 조금 불쾌했다.

▲ 관광차가 저렇게나 많았다.
ⓒ 박정규
▲ 이런 길을 거의 날다시피 달렸다.
ⓒ 박정규
▲ 체 게바라는 다양한 모습들로 여기저기에 살아 있었다.
ⓒ 박정규


-2007년 6월 17일 산티아고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태그:#자전거여행, #하바나, #체 게바라, #쿠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