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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에도 고전이 있다. 고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기에 그냥 지나치려고 하니 뒤가 개운치 않고 그렇다고 다가서려고 하니 뾰쪽한 수가 없어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과학의 양면성에 대한 논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과학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고전 논제는 어떻게 하면 참신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제공하여 주고, 글의 흐름을 익히기에도 좋은 논제 거리가 되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떻게 참신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이 참신성은 서론에서 출발한다. 너무나 뻔한 논제에 어떻게 관심을 유발시키고 논제에 접근시킬 수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글의 흐름을 익힐 수 있다. 과학을 떠난 현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글의 흐름도 자연스레 과학의 긍정적인 면을 먼저 이야기 하고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헤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과학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곧 서론 - 본론1(과학의 긍정적인 면) - 본론2(과학의 부정적인 면) - 결론(부정적인 면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으로 정반합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익힐 수 있다. 학생이 쓴 글을 보면서 이야기를 펼쳐보자.

중국의 고사 중에 천 개의 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손에 천 개의 칼을 쥐고 있는데, 그 중에는 사람을 살리는 ‘활인도’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도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천 개의 칼을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또한 이와 같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 목적이 변하는 양날의 칼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인류가 처음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인간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해왔다. 한때는 종교의 힘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 누구도 과학기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과학은 컴퓨터와 TV, 인터넷이 보편화된 세상을 이룩해냈고, 그럼으로써 전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게 되었다. 유비쿼터스 주거 형태나 대학 캠퍼스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고, 각국은 앞 다투어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그러나 칼의 날카로운 한 면처럼 과학기술은 무시무시한 폭력성과 파괴력까지 함께 갖추고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하나가 수십 년 지난 지금, 전쟁 세대의 후손들까지 피해를 주고 있으며,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삼림은 난개발로 인해 삼분의 일이 파괴되어 환경재앙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까지 영향을 미쳐, 과학기술이 주는 편리함을 맛본 사람들은 그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은 이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올랐지만 그러한 문제점은 결국 과학을 올바르게 이용하지 않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의학계에서 툭하면 일어나는 논문 표절이나 조작 시비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과학을 개인 영달의 추구 수단으로 보고, 잘못된 논문을 검증된 사실인양 꾸며 내놓는 일이 만연한 과학계에서 진정으로 인류와 환경을 생각하는 연구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의 부작용은 결국 인간이 초래한 것이므로 뒤늦게나마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학이 가져올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의 윤리 의식 함양이다. 과학계를 끌어나가는 일원으로서 과학자들은 연구 과정에서 사익보다 공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이런 의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학생들에게도 올바른 과학 지식과 과학 윤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두 번째로 친환경 사업·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조림 사업이나 녹지 보호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이와 아울러 국민들의 의식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개 사람들은 환경 문제를 사회 ‘문제’일 뿐 개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순적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하루빨리 버리도록 선도하는 일 또한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지금 과학이 가져온 모든 피해를 치유하고 원상 복귀하기엔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과학의 양면성은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못할 것은 없다. 천 개의 칼과 같이 과학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임을 명심하고 다시는 과학이 주는 쾌락에만 빠져 그것이 가져올 혼란을 잊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부산국제외고 3학년 구민지


이 글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천개의 칼을 인용하여 관심유발을 일으키고 있다. 칼은 활인도도 되고 살인도도 된다며 과학의 양면성에 접근하고 있다. 서론의 참신성이 돋보이는 글이다.

논제인 과학의 양면성을 논함에 과학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를 하였기에 오늘날 그 누구도 과학기술의 가치에 대해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며 과학의 긍정적인 면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이 보급되어 세계는 하나가 되었으며,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을 논거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양날의 칼처럼 과학에도 부정적인 면이 있다.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아마존의 난개발, 과학을 영달의 수단으로 여기는 의식 등을 논거로 들면서 과학의 부정적인 면을 구체화하였다.

그렇다고 과학을 팽개쳐버릴 수 없으니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두 가지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과학자들의 윤리 의식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 지원의 확대다.

그리고 서론에서 언급했던 양날의 칼을 다시 인용하여 과학이 주는 쾌락에만 빠지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듯 논술에서 고전이 된 과학의 양면성을 직접 서술하여 봄으로써 참신한 서론 쓰기와 글의 흐름을 제대로 익힐 수 있다. 논술에서도 고전의 향기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태그:#논술, #과학, #양면성, #윤리의식,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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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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