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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담보대출 홍보가 한창인 판교 신도시 견본주택 전시장 앞.(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안홍기
[사례] 맞벌이 교사 부부인 손아무개씨 가정은 부채를 1억가량 갖고 있다. 아파트 담보대출로 4000만원, 전세자금 대출 2000만원, 신용대출 3500만원, 최근 대학에 진학한 자녀의 등록금 대출로 100만원가량이 있다. 그렇다고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여년간 맞벌이로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갖고 있는 자산은 부동산 자산 외 금융자산으로 700여만원이 전부다. 부동산 자산도 실제 팔아서 빚을 처분할 상황이 안된다. 소유 아파트는 시동생이 살고 있고 본인들은 정작 25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최근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부인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다. 버는 대로 갚는다고 갚는데 이자가 줄어들기는커녕 금리 상승으로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몇 차례 주식투자 실패로 생긴 부채가 이자 갚는 생활을 만들어 버렸다. 차라리 금리가 오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간 남편은 '레버리지(지렛대 효과)' 운운하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오랜 맞벌이 끝에 자산이 늘어나기는커녕 번 돈이 무색할 정도의 경제 성적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부의 신용등급이었다.

맞벌이 교사 부부이다 보니 신용등급이 대단히 우수했던 것이다. 매일 날아오는 마이너스 통장 홍보지에는 교사 우대금리 적용, 특별한도 적용 등 빚내기를 유혹하는 달콤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보수적인 성향의 부인과 달리 남편 손씨는 낮은 이자를 받고 저축하는 것을 싫어했다. 어차피 고용도 안정되어 있는 편이고 노후도 상대적으로 사학연금에 대한 믿음이 있어 걱정이 덜한 편이었다. 저축으로 조금씩 자산을 늘리는 것은 답답한 것이며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남편은 빚내서 투자하는 것을 반복했다.

남편의 이런 위험한 선택이 늘 불안해 말리고 싶었지만 말리기도 전에 이미 남편은 쉽게 대출을 받아왔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주식을 사고 빚내서 아파트를 사고 전셋집에도 대출이 껴있다. 이제 대학에 진학한 첫 아이 등록금조차 빚으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부인은 허탈하기까지 하다. 맞벌이 소득의 25%가량이 빚 갚는 데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 목돈 지출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다시 마이너스가 늘어난다. 갚고 빌리고 또 갚고 빌리기를 반복하는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 손씨 부부는 주거래 은행의 VIP가 되었다.

대출에 카드에 할부까지...신용으로 사는 가계, 과연 신용할 만한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신용카드 사용의 급증, 모기지 대출의 대중화는 결국 많은 가정을 빚더미에 앉게 했다. 1억 정도의 빚은 과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적지 않다.

소득이 늘어도 금융비용으로 카드 결제 대금으로 매월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나면 월급일이 며칠 지나지 않아 잔고는 거의 바닥에 이른다. 다시 생활은 마이너스와 신용카드로 이뤄지고 할부소비까지 더해져 고정지출이 늘어난다. 저축은 불가능해지고 자산을 불릴 기회는 대박 한방에 기웃거리게 한다. 신용으로 생활하고 신용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손씨 가정은 매월 원리금 상환까지 포함해 금융비용만으로 150만원가량이 지출된다. 당장은 신용으로 살고 있는 생활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한 쪽 소득이 중단될 만한 중대한 변수가 발생한다면 가계는 파산까지 이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혹은 그런 극단적인 변수가 아니더라도 남은 은퇴시기가 8년이다. 8년 안에 부채를 전부 상환하지 않으면 연금소득의 상당부분을 금융비용으로 감당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빚으로 산 아파트가 더 오를 것이란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올라봤자 소폭일 것이란 나름의 경제 변수에 대한 예측, 직업적 특수성으로 우대금리 적용대상이라는 것도 빚을 잊고 살게 하는 원인이다.

이제 첫 아이 등록금마저 대출로 지출하고 있고 3년 후면 둘째까지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이 가정의 미래 신용성적은 분명히 낙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주거래 은행은 이들의 미래를 계산에 넣지 않는 신용점수로 이들을 빚에 둔감하게 만들고 있다.

▲ 한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연기

전문가들의 저금리 장사가 보통 가정을 신용 과소비로 몰아

'저금리 시대 저축에서 투자로'가 2000년대 화두를 장식하며 주식시장의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게 했다. 분명히 안전하게만 돈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길게 보면 저금리 구조하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못한 이자율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돈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간접투자시장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금리의 위험은 간접투자시장을 키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대박의 기회를 기웃거리게까지 한 것이다. 한때 재테크 지면을 연일 장식했던 내용 중 '저질러서 집 사는 것이 돈 버는 길'이라는 것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 '저질러서'는 보통 가정에서는 빚내는 길밖에 없었다. '부채도 자산이다', '빚 잘 내는 법' 등 부채를 부추기는 내용이 적지 않게 재테크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심지어 모 일간지에서는 부채 한도를 제한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강한 비판까지 서슴지 않았다. 시장논리에 반한다는 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채를 제한해도 다른 편법으로 피해갈 수 있음까지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 친절한 방법에는 3개월간 사채를 잠시 이용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비치기까지 했다.

심지어 어느 전문가는 "요즘 전 세계 헤지펀드들의 평균 레버리지(원금 대비 총투자 금액)가 10을 넘었다. 저금리 시대의 투자는 바로 이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을 해야 된다. 정말 능력 있는 자산관리사라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기 이전에 고객의 신용관리를 먼저 해서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대출 받아 투자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적극 권장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팔 걷어붙이고 보통 가정을 신용 과소비, 투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신용팽창에 대한 우려가 심각해 지고 있고 레버리지가 10이 넘는 헤지펀드들이 하나 둘 휘청거리고 있는 최근의 글로벌경제는 전문가들의 신용장사를 악마의 유혹처럼 기억하게 만든다.

위험 통제 벗어난 신용 사용...레버리지 환상에서 깨어나야

신용사용은 위험통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위험통제가 가능한 재무상황일 때, 즉 안전자산이 풍부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다. 빚은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은 옛말만은 아닌 것이다. 점점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미래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용 과소비, 신용으로 투자하는 것은 인생을 건 도박이다. 만약을 대비해야 할 마이너스통장, 카드 대출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부채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우리 가계가 부채에 대해 안일하게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전세계 유동성이 급격하게 위험해 지고 있는 상황을 유심히 돌이켜 봐야 한다. 점점 경제가 글로벌화되어 가면서 경제변수들의 위험 예측을 전문가들도 비켜가고 있는 현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대한 진단을 불과 며 칠 전까지만 해도 낙관했던 전문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던 것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 '어디까지 그 여파가 미칠지 파악이 분명치 않다'라는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쉽고 빠르게 부자가 되겠다는 조급함으로 보통 가정이 레버리지 운운하는 것은 인생을 건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이 도박판에서 보통사람들의 판돈은 가족의 미래 행복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생명이 될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봐야 한다. 세계시장을 누비는 거대자본 헤지펀드들의 레버리지조차 깨지고 있는 과정을 보며 하물며 평범한 우리의 레버리지가 얼마나 큰 환상일 수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자산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자산 재분배 과정이 필요하다. 과감히 마이너스통장을 없애고 카드 신용한도를 낮은 수준으로 조절해놓자. 부담스런 부채로 부동산 투자를 했다면 부동산 매각을 서두르고 안전자산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그것은 곧 유동성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레버리지란?

레버리지는 말 그대로 지렛대다. 지렛대를 이용하면 무거운 돌도 작은 힘으로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다. 투자에서 레버리지 효과라 함은 타인에게 빌린 자본을 지렛대 삼아 자기 자본 이익률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즉 내 자본만 1억을 투자해서 1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면 자기자본이익률은 10%가 되지만 내 자본은 1000만원만 투자하고 9000만원을 차입해서 투자했다면 자기자본이익률은 100%가 되는 것이다.

펀드의 레버리지가 10이라는 말은 레버리지비율(자기자본 대비 총자산 비율)이 10배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위에 언급한 예에서 내 자본은 1000만원만 투자하고 9000만원은 차입해서 투자한 경우가 레버리지비율이 10배가 되는 예이다.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는 자기자본이 작더라도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금리가 오르면 차입비용 자체가 올라가게 되므로 그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되면 앉아서 자기자본을 까먹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더구나 정말 큰 문제는 레버리지 효과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정(正)의 레버리지 효과만을 생각할 뿐 부(負)의 레버리지 효과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태그:#레버리지, #대출, #빚, #저금리,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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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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