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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 저희 집 며느리들 간 사이에는 명절 전부터 어두운 먹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때문이었습니다.

위로 두 명이나 되는 시누이들이 합류한다는 소식을 들은 저희들은 생머리를 앓기 시작했습니다. 명절날 시누이들이? 그것도 한명도 아닌 둘씩이나?

'오마이갓~' 상상만 해도 심히 심난합니다. 슬슬 짜증도 밀려옵니다. 그렇잖아도 명절을 앞두고 골치가 지끈지끈거리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실로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그 이름은 시누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딸·손녀들이 함께 모여앉아 송편을 빚고있는 모습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딸·손녀들이 함께 모여앉아 송편을 빚고있는 모습입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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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이랬습니다.

큰시누이 시부모님은 캐나다에 있는 큰 아들네 집으로 명절을 쇠러 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긴 연휴 동안 서울에 덩그러니 있느니 차라리 고생을 감내하면서도 전주 외갓집에 가자는 굳은 의지가 발동한 것입니다. 더구나 큰시누이 가족도 내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갈 예정이라고 하니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명절을 같이 보내겠냐는 '석별의 정'도 함께 포함되었던 것이죠.

작은시누이는 한 집안의 외며느리라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은 바였지만, 이번 명절은 어찌어찌 여차여차해서 작은시누이 가족들만 보내게 되었답니다. 사촌들끼리도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외갓집도 가본 지 오래 되었고, 게다가 언니네 식구들도 친정에 간다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뭉쳐보자는 거였죠. 뭐, 어쨌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솔직히 짜증나더군요. "못된 올케, 며느리"라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먹는 밥상에 숟갈만 몇 개 더 놓으면 되지'라고 생각하실 분은 설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위는 '백년손님' 아닙니까. 시누이보다 더 어렵고 난감한 게 시누이 남편들의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다 사람 사는 재미이고 정이려니'하며 넘어갈 만큼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저도 아니고요.

그래도 별 수 있습니까. 저와 윗동서는 구시렁구시렁 대면서 음식을 8인분씩 더 준비해야 했습니다. 수저와 밥공기도 배로 준비해야 했고 이부자리도 다시 점검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시누이 올케지간은 아닙니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의기투합하여 수다도 신나게 떨고 밤새도록 함께 술잔도 기울일 줄 아는 막역한 사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절날 시누이 가족들이 '따블'로 온다는 건 아무래도 며느리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시누이 가족들이 도착하고 나서 어색하고 서먹한 기류가 감돌았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절대 눈치챌 수 없는 것이죠.

시어머님을 비롯하여 며느리 둘, 딸 둘은 서로 자기의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운 더듬이를 곤두세워서 서로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출가외인이 명절날 친정행이 웬 말이야. 명절날 힘든 거 뻔히 알면서 오고 싶을까?'
'겉으로만 반가운 척 하는 거 다 안다. 속으로는 우리집에 왜 왔니 노래 부르고 싶지?'
'팔 걷어 부치진 않더라도 맨 입으로 놀고먹진 않겠지. 염치가 있는데 누워만 있으려고?'
'너희들도 친정가면 딸 아냐? 오랜만에 친정 왔으니까 두 다리 뻗고 좀 쉬겠다 이거야~'

우리 집에 왜 왔니!... 며느리 VS 딸의 속마음

그래도 어찌됐든 명절날 가사 일은 며느리 몫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두 배나 더 힘든 명절이었습니다. 며느리 대 딸, 여기에 어정쩡한 자세의 시어머니까지 다섯 여인이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이 나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추석 전날, 음식 장만과 여러 잡다한 준비를 다 마치고 난후 평소 같으면 맥주 한 잔이라도 했을 텐데, 이날만큼은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충 씻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큰동서가 우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올케, 벌써 자려구? 그러지 말고 거실로 나와. 내가 뭐 준비한 게 있어."
"…. 뭔데요?"
"어쨌든 나와. 얼굴만 간단히 씻고 나와."


'도대체 무엇을 해준다는 것일까'라는 호기심보다는 오로지 귀찮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큰시누이가 하는 말인데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 거실로 나갔습니다. 얼굴에 간단히 세수만 하구요. 거실에 나갔더니 그 곳에는 하얀 밀가루와 수건·화장지 등이 있더군요. 

"내가 며칠 전 친구한테 해초팩 마사지를 받았는데 정말 끝내주게 좋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일부러 친구한테 배워가지고 왔잖아. 돈 주고 배웠다면서 안 알려 주려는 걸 간신히 어르고 달래고 협박까지 해서 알아오고 재료까지 얻어왔다. 엄마랑 올케들 해주려구. 자, 여기 누워봐. 누구부터 할래? 큰올케부터 해라"

큰시누이는 자못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큰동서는 큰시누이가 해놓은 해초팩 반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표정에는 약간 곤혹스러움과 못 미더움이 있었습니다. 말할까, 말까하는 표정이었어요.

"왜? 올케 하기 싫어?"
"아뇨. 그게 아니라…."
"응. 그럼 뭔데?"
"저 해초팩 배웠거든요."


그랬습니다. 어깨너머 반 협박 반 회유로 반나절 잠깐 배운 큰시누이와 달리 큰동서는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받아서 배웠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자격증만 없다뿐이지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큰시누이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의욕이 상실됐는지 잠시 망연하고 무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어, 그렇구나. 올케도 배웠구나. 그런데?"
"이거 반죽이 좀 된 것 같아서요. 좀 묽은듯해야 나중에 잘 굳거든요. 그래야 떼어내기도 쉽고요."


큰동서 대 큰시누이 '해초팩 배틀'

삶아 으깬 단호박을 넣은 반죽으로 만든 송편. 올해 송편은 며느리·딸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작품들이 선보였습니다. 송편을 만들 때도 딸과 며느리들이 은근히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는 후문.
 삶아 으깬 단호박을 넣은 반죽으로 만든 송편. 올해 송편은 며느리·딸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작품들이 선보였습니다. 송편을 만들 때도 딸과 며느리들이 은근히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는 후문.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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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동서는 평소에 잘난 척을 많이 한다거나 남의 기를 꺾어놓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해초팩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이야기를 한 것뿐이었습니다. 큰시누이는 큰동서의 말을 듣고는 반죽을 잠시 보았습니다. 모처럼 큰시누이가 마음 좀 내서 마사지 해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잔소리가 심하냐는 듯한 표정이 그녀의 굳은 얼굴에 씌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 친구도 전문가 수준이야. 나도 제대로 배웠다고. 이렇게 하니까 잘만 되던데 뭘. 올케 선생이 혹시 야매(가짜) 아냐?"
"아니예요. 형님."


우리는 큰시누이의 말에 따라 웃었습니다.

"뜨거운 물 좀 더 넣으세요. 저도 형님처럼 첨엔 너무 묽은 것 같아서 되게 반죽했다가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싫어!"


큰동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시누이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잘만 됐단 말이야. 난 내 식대로 할거야. 얼른 누워. 괜찮아 나만 믿어봐. 이래 뵈도 나한테 마사지 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어."
"반죽이 되다니깐요 형님."
"아 글쎄 내 말 들으라니까. 시누이 말을 안 듣네. 시누이 무서운 줄을 몰라."
"형님. 반죽이 너무 되요. 이러면 나중에 떡 돼서 떼어내지도 못해요!"
"아니라니까"
"떡 된다니까욧!"
"슷~!!!"


막무가내였습니다.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의 큰시누이의 '슷~' 한 마디에 동서는 입을 다물어야했습니다. 큰시누이도 평소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 날따라 웬 오기와 고집이 발동했는지 윗동서의 충고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굳이 그 반죽을 쓰겠다는 것입니다.

수술대에 오른 큰동서... "어떻게 해, 떡 됐어"

다섯 여인이 만났던 그 순간부터 작동했던 그 미묘한 신경전이 바로 '해초팩 헤게모니'라는 해괴한 형태로 터진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해초팩의 '반죽이 되냐, 묽냐'의 문제는 일찌감치 산으로 올라가버린 듯 했습니다. 문제는 해초팩이 아니라 '며느리냐 딸이냐, 혹은 큰딸이냐 큰며느리냐'의 이상한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는 듯 했습니다.

거의 반강제로 누운 윗동서의 표정은 수술대에 누운 환자처럼 불안해보였습니다. 한편으로 담담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큰시누이는 해초팩을 동서의 얼굴을 척척 펴 바르면서 해초팩의 성능과 뛰어난 효능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도 뜰 수 없고 대꾸도 할 수 없는 큰동서였지만 얼굴에 떠오른 체념의 빛만큼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초팩 범벅이 되어 있는 윗동서의 얼굴을 힐끔거리면서 해초팩의 성능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큰시누이의 말씨가 어느 순간부터 차츰 느려지고 굼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반죽을 살짝 눌러보면서 갸우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불안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해초팩의 성능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설명을 늘어놓긴 했지만 신경은 오로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윗동서한테 가 있는 듯 했습니다.

지금쯤 반죽을 걷어내야 할 시간이라는 듯 윗동서가 행동을 취했습니다. '잠깐만'을 외치는 큰시누이는 마치 뚫어지게 바라보면 반죽이 잘 스며들기라도 되는 듯이 윗동서의 얼굴을 코앞에 대고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윗동서와 큰시누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여자는 이미 상황파악을 다 끝난 뒤였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윗동서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큰시누이만 단지 모를 뿐이었습니다. 웃음을 잘 참지 못하는 저는 웃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건으로 입을 가려야했습니다.

답답해진 윗동서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이 턱부터 반죽을 떼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큰시누이가 얼른 동서의 손을 잡아 행동을 제지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이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자는 심정이었을까요? 그 때 큰시누이의 입에서 아주 힘겹게 터져나온 한마디.

"올케, 어떡해…. 떡 됐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파안대소를 터트렸습니다. 제3자였던 시어머님과 작은 시누이, 저는 유쾌한 웃음이었고 큰시누이는 미안한 마음에서 나온 웃음이었고 윗동서는 그 미안한 마음을 배려하기 위한 웃음이었습니다.

거칠어진 그녀의 손... 우리가 왜 싸웠을까요?

윗동서의 얼굴은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밥풀 묻은 흥부의 얼굴처럼 미처 잘 떨어지지 않았던 해초팩 반죽의 파편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머리카락·목·귀밑머리 모두 난리였습니다.

얼굴에 묻은 반죽을 서로 떼어주며 우리는 웃고 또 웃었습니다. 단지 큰동서의 모양이 우스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 웃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웃는 사이, 다섯 명의 여인을 감싸고 있었던 그 묘한 기류는 봄 눈 녹듯이 스러졌습니다. 참 묘한 일이었습니다.

"미안해, 올케. 올케 말을 들었어 야했는데. 내가 괜히 오기 부려서 아까운 재료 다 날렸어."
"아니예요. 다음엔 제가 해초팩 해드릴게요. 제대로요."
"그럴래? 그게 낫겠다."


'그녀가 미워질 때면 그녀의 손을 보라' 우리는 반죽의 파편이 아깝다면서 서로의 손등에 발라줬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보았습니다. 3박4일 동안 음식 장만과 명절준비로 거칠어진 손이었습니다. 우리는 팩 반죽을 서로의 손등에 발라주면서 서로의 손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각이 한 집안의 며느리이기에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고, 누구의 딸임과 동시에 한 집안의 며느리인 존재였습니다. 며느리와 딸, 그들이 어떻게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구조가 될 수 있을까요? 가장 빼닮은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으로 인해 이런 교훈을 하나 얻게 되었답니다. 시누이가 미워질 때면, 시누이가 시누이라고 느껴질 때면 그녀의 손을 보자고요. 결혼을 한 시누이라면 어느 집안 며느리의 손일 것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곧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될 손이라고 생각하자고요. 그럼 마음이 한결 더 푸근하고 넉넉해진다는 걸요.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풍경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며느리와 딸, #추석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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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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