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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높고 푸른 하늘에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 풍성한 수확의 계절 한가위 높고 푸른 하늘에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 최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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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올 여름은 비가 자주 오고 후텁지근했다. 여름 비가 그치지않고 계속 올것만 같더니, 올해도 어김없이 예년보다 이른 한가위가 돌아왔고 결혼 4년차(아기없으니 아직 신혼이랄수 있는)인 아들내외가 명절쇠러 우리집에 왔다.

둘다 직장생활 하는지라 손님같은 며느리는 설거지와 전 부치기 담당이었다. 아들이 밀가루 묻혀서 계란에 담갔다가 건네주며 도와주니 일 진행이 무척 빨랐다.

"엄마! 우리 얼른 끝내고 생맥주 한잔하러 나가요.저녁 외식하는 거예요."

아들 좋아하는 생밤을 싸서 보내려고 열심히 까던 남편이 화들짝 놀라며 "냉장고안에 맥주시원하게 해 뒀는데 안주거리도 푸짐하고…"하기에 얼른 말을 막았다.

"마누라 설거지 덜어주느라 그러지? 이 많은 음식은 다 어떡하고?"라고 웃으며 말하니 "날씨도 덥고 기름냄새 진력이 났을 테고 엄마, 아버지 다 좋아 하시잖아요. 애기(자기 애긴가 우리 애기지)도 먹고 싶어하고…."

신식 시어머니 되고싶은 욕심과 아들 사랑에 엎어졌는지라(남편생각) 얼른 그러자고 했다.
나는 몇일전부터 청소하랴,장보랴  오늘은 온종일 혼자서 차례준비 하느라 입술도 터지고 파김치가 되어 정말 쉬고 싶었지만 흔쾌히 따라 나섰다.

34년간 명절준비를 해왔지만 음식 다 해놓고 외식하러 나가는건 처음인지라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추석 전날패밀리 레스토랑은 파리날릴 거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매장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젊은 커플들이긴 했지만….

명절 전 날  부모, 형제들 도와 차례준비하는 세대가 아닌 것이다. 올 추석도 해외여행자가 여름휴가 수준인 몇십만명 이라니 휴양지 콘도에서 간이 차례상 차리는건 한줄 뉴스거리도 못되는가 보다.

맞벌이부부가 주류를 이룬 이 현실에 예전처럼 정성껏 음식준비하여 차례상 마련하고  돌아가신 조상들 추모하는 일은 우리 세대로 거의 끝난것 아닌가.

부모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마지막 세대,샌드위치 쉰 세대라더니만. 작금의 현실에서 명절은 무얼 의미하는가?

유래없이 긴 휴가.흩어져 살던 가족이 오랫만에 만나 즐거운 집도 많겠으나 칼부림등 가족의 불화로 비극적인 사건의 발단이 되는 명절. 돌아가신 부모를 제대로 기억하고 가족끼리 (딸 내외는 유학생으로 미국체류중)모여 주는것 만으로도 대견해 해야할 처지이니….

형제,자매가 많아도 각자의 핑게가 난무하여 언제부턴가 혼자서 차례상 차리느라 분주하기만 했는데 가족외식하며 화기애애한 시간 갖는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세상사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보니 피로하지만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서울거리가 텅텅 비어 마치 낯선 도시에 팽개쳐 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결혼전 우리집은 1년에 13번 제사( 명절까지 15번 )를 지내던 종갓집 아닌 종가였다. 백부가 일찍 돌아가셔서 차남이 장남으로 되었다.

언제나 많은 식구와 손님들로 붐비던 집안에 제사, 명절 때면 친지들이 많이 오셔서 용돈주지, 맛있는 음식이 지천이지 얼마나 신이 났던지…. 언제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시집와 보니 그것이 얼마나 힘든 고행이었는지 그 시절엔 상상이나 했겠는가.그래서 결혼하면 진정한 성인이 되나보다.

큰 사업으로 언제나 바쁘셨던 아버지는 깨끗한 두루마기를 단정히 차려입고 우리가 전혀 못본 조상의 면면을 도란도란 얘기해 주시며 그분들이 남긴 갖가지 일화,가르침등을 얘기해 주셨다.

그것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내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는 이제 인생의 가을로 들어서고 있다.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며 즐겁게 살고싶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약간 이그러진  보름달아래 집으로 돌아오며 며느리 머리를 누르며 장난치는 아들을 보며 우리 부부는 크게 웃어본다.

낮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난 벨도 없나봐.시집살이 호되게 치루고도 쟤들 심한 애정표현도예쁘기만 하니…." 멋적어진 남편이 내게 꿀밤을 주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풍경>응모작



태그:#한가위, #추석전야붐빈레스토랑, #명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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