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선 아라리' 창극 모습. 창극단원들은 동네 아낙들이다.
ⓒ 강기희

관련영상보기

 

가을색이 곱게 물들었다. 산 정상에서 시작된 단풍은 산촌의 집 마당에까지 풀어졌다. 정선의 산야를 물들인 단풍은 멀미가 날 정도로 그 빛이 곱고도 서럽다. 초라하게 사라지는 인간의 삶과 달리 자연의 삶은 마지막이 화려하다.

 

모든 것이 쉽게 잊혀져 가는 세상. 단풍은 저를 잊지 말라고 연인을 잃은 청춘의 눈물처럼 처연하다.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는 단풍은 우리네 삶의 일부이자 짧은 역사이다. 감았던 눈을 떠 주변을 잠시만 바라보아도 눈은 금세 단풍빛으로 충혈된다. 


정선아라리는 민중들이 만들어낸 '한의 소리'

 

민중의 소리인 정선아라리를 찾아 떠난다. 정선아라리는 강원도 무형문화제 1호로 지정되어있다. 정선아라리는 슬프면서도 한스러운 소리이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흐느낌은 절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선사람들은 가슴에 품은 한을 해학으로 풀었다. 한 생애를 살아온 이들의 고단한 삶은 정선아라리 가락으로 승화되었다. 정선아라리는 정선사람들의 역사이자 그들이 살아내온 궤적이다. 2000여수나 되는 정선아라리 가사가 정선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를 증명한다.


"우리 부모가 나를 기를 땐 금옥같이 하더니
외딴 골목 절벽 밑에다 왜 주었소


사발 그릇이 깨여지며는 두 세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여지며는 한덩어리로 뭉친다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정선아라리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민중의 역사가 기록되지 않던 시절, 정선아라리는 그 시절 민중의 삶을 유추할 수 소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정선아라리는 언제 태어났을까


정선아라리의 근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설만 분분하지 정선아라리의 태생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고려 말 이성계를 포함한 신군부 세력을 피해 정선으로 숨어든 7인이 불렀다는 노래가 역사적으로는 가장 깊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가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 울어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만수산은 개성에 있는 산이다. '검은 구름'은 이성계의 군대이다. 정선에 숨어든 7인의 선비들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두문동에 은거했다가 정선으로 왔다. 그들은 백이숙제처럼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목숨을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정선아라리의 시원이라 평가받는 위의 가사는 조선조부터 불린 소리이다. 하지만 그 이전이라고 정선아라리가 없었을까. 정선아라리는 민중들이 만든 소리이다.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 숱한 가사가 생겨나고 소멸되었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2000여수의 가사들은 그 시기를 대표하고 보편성을 획득한 가사들이다. 조선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까지 지난 민중의 역사가 정선아라리 가사에 다 담겨있다. 그러함에 정선아라리는 문학의 보고이자 소리의 보고이다.


정선아라리를 만들어낸 것은 정선사람들의 섧은 가슴


수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정선아라리는 메나리조의 소리이다. 정선아라리는 정선의 산천과 사람들의 심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배우기도 부르기도 힘들다. 산비탈의 각도가 어느 지방보다 큰 정선. 사람들은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오르며 정선아라리를 흥얼거렸다.


산길을 따라 한발씩 발을 옮기며 부르는 정선아라리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 따라 하기 어렵다. 정선사람들이 토해내는 호흡이 다른 지방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 정선아라리는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두성에 가깝다.


정선아라리를 만들어낸 것은 정선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전민요인 정선아라리를 채집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라리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매년 정선아리랑제를 개최한다.


정선아라리를 전승보급하는 일은 '정선아리랑전수관(관장 홍동주)'에서 한다. 정선아라리의 대표적인 가사를 만들어낸 '아우라지'에 있는 전수관은 정선아라리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겐 꿀단지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정선아라리를 배운 이들이 정선의 소리를 알리고 전통의 소리를 이어간다.

 

정선아라리가 좋아 정선으로 이사온 이가 있다. 김한종(48세)씨와 그의 부인인 한승연(39세)씨다. 며칠 전 그들을 만나러 집으로 갔다. 늦은 밤이었고 도회지에서 온 여자분이 소리를 잘 한다는 말을 듣고 난 직후였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행정구역상 정선군 북면 지경리이다. 


서울에 살던 한씨는 어느 날 국악 프로그램에서 전수관 관장인 홍동주씨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남도 소리를 배운 적 있는 그녀는 정선아라리를 듣는 순간 '아, 저 소리다'라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그리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정선아라리를 배우려고 마음까지 먹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지 두어 달 후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바람 같이 떠돌기를 좋아하던 남편 김씨가 정선으로 이사를 가자며 짐을 싸자고 했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살던 집을 내 놓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짐을 쌌다.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딸도 부모와 함께 정선으로 왔다. 5년 전의 일이었다. 2002년 가을, 태풍 루사로 인해 정선으로 가는 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정선아라리가 좋아 정선을 찾은 사람들


서울에서 아침 8시에 출발했지만 그들이 살아야 할 곳인 지경리 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끊어진 길을 겨우겨우 넘으며 한숨도 나왔다. 아이들은 긴 여행에 잠이 들었고 밤 하늘엔 환장하도록 별이 떠 있었다.


한씨는 밤 하늘 가득 떠있는 별을 보며 '세상에, 이렇게 많은 별이 있다니' 하고 감탄했다. 별 마저 없었다면 서울을 떠난 것을 후회했을 지도 몰랐다는 한씨는 이사하던 날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기가 막혔어요.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맡기고 정선으로 오는데 무슨 별이 그렇게도 많은지요."


무작정 남편을 따라나선 길. 이삿짐을 풀고 보니 정선은 다름 아닌 자신이 배우고자 했던 소리의 고장이었다. 새삼 남편이 고마웠다. 물어물어 아리랑전수관으로 갔다. 전수관 관장을 만나고 보니 TV에서 보았던 홍동주 관장이었다. 반가움에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홍 관장은 그녀에게 아무 소리나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남도 소리 한가락을 선보였다. 말없이 듣고 있던 홍 관장이 내일부터 소리를 배우러 나오라고 했다. 뛸 듯이 기뻤다. 다음 날부터 전수관으로 갔다.


정선아라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곡조가 신기하기도 했다. 열심히 배웠다. 정선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리가 되지 않는 정선아라리. 사투리를 익히는 일이 급선무였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말투는 정선의 여느 아낙과 비슷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그녀는 지금 정선아라리 창극단에서 활동한다. 한 때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녀였기에 창극단에 지원했고 오디션에도 합격했다. 창극 공연은 정선 장날마다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한다. 이제 그녀는 창극 공연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정선아라리와 함께 하는 그녀의 행복한 삶은 남편 김씨가 있기에 가능했다. 남편의 직업은 목수. 살고 있는 집도 손수 지었다. 요즘은 시간나는 대로 조각을 한다. 그들을 만나러 간 늦은 밤에도 남편 김씨는 거실에서 조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밤이 꽤나 깊었지만 그들은 손님에게 술상을 내놓았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남편 김씨가 아내에게 소리를 청했다. 방문객도 그녀가 부르는 아라리 소리가 궁금했던 터였다. 그녀가 젓가락으로 장단을 치며 정선아라리를 불렀다.

 

정선아라리는 애닯은 심정을 품고 불러야 제 맛


방문객이 보기엔 잘한다 싶었지만 남편은 아직 50점밖에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라는 게 소리는 잘하지만 민중들의 가슴에 있는 한과 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의 말이 맞다 싶었다. 정선아라리는 소리가 가진 독특함이 있는데 그것을 표현해 내지 못하면 생명력이 떨어진다.


남편 김씨는 아내에게 틈날 때마다 동네 아낙들에게 소리를 배우라고 한다. 아낙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소리가 진짜 소리라는 것이다. 그 말은 방문객도 인정한다. 정선아라리 가락을 만들어낸 이들이 이름 없는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골 깊은 정선은 어느 곳으로 가도 그 지형이 정선아라리 가락을 닮아있다. 정선아라리를 만든 것은 정선의 땅과 그 땅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정선아라리 가락 흥얼거리며 산 길을 돌아 나오면 또 다른 가사가 만들어 지고 그 가사는 우리네 삶이 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아우라지는 정선아라리의 대표적인 가사를 만들어냈다. 정선아라리와 함께 하는 정선 기행은 아우라지 뱃사공을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세월이 흘러 소리를 만들어 냈던 처녀와 총각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애절한 정선아라리 가락은 지금도 남아있다. 정선아라리.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정선아라리 가락은 오늘도 그렇게 이어진다.


태그:#정선아라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