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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 벽에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그림을 그려 놓았다.
 뒷간 벽에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그림을 그려 놓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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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왜 그려?"
"그냥…."

뒷간에 다녀온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실실 웃어가며 세면장으로 들어섭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않고 푸드덕푸드덕 거푸 세수만 합니다.

"왜 그러는디? 똥 누다가 쥐새끼한티 꼬추라도 물린 겨?"
"아니…."
"그럼 뭐여?"
"똥물이 튀겼어."

"그람 엉덩이를 씻어야지 얼굴은 왜 씻는겨?"
"엉덩이가 아니라 얼굴에 튀겼어."
"뭐?"

우리 집 뒷간은 장마철이 되면 똥통에 빗물이 스며들곤 합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알밤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에도 장마 비가 내려 볼일을 볼 때마다 똥통에서 퐁당 소리를 내며 ‘엉덩이 조심경보’를 울려댔습니다. 똥통 안에 빗물이 스며들어 출렁거리면 신문지를 깔아 놓고 볼일을 봐야 합니다.

신문지 몇 장을 펼쳐 놓았다 하여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신문지가 깔린 부분에 정조준하지 않으면 엉덩이는 여전히 똥물 파편의 위험에 노출 되고 맙니다. 그런데 엉덩이가 아닌 얼굴에 똥물이 튀겼다니?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얼굴에 튀긴겨? 묘기라두 부린겨? 아빠는 일부러 그렇게 하려 해도 안 될 것 인디…."
"밑에 쳐다보다가….'

녀석은 신문지가 깔린 부분에 정조준 하여 정확히 발사하기 위해 똥통 안을 들여다 본 모양입니다. 녀석의 얼굴에 '똥물 튀긴 사건'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녀석은 똥통에 깔린 신문지에 정조준 하기 위해 아랫배로 방아쇠를 당겨 발사를 했고 목표지점을 확인하기도 전에 풍덩 소리를 들었을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와 동시에 똥물 파편이 얼굴로 튀어 올랐던 것입니다.

"에이 바보, 고것두 못 맞춰가지구, 아빠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바보야."

그 날 밤 인상이 녀석을 실실 약 올려놓고 뒷간을 찾았습니다. 우리 집 뒷간은 두 칸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똥통은 하나지만 가운데에 벽을 만들어 두 개의 문짝을 달아 놓았습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집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던 모양새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뒷간 벽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알기 시작하면서 문짝에 '어른용', '아이들용'이라고 크레용으로 써놨습니다. 하지만 애어른 가리지 않고 혼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장마철뿐만 아니라 똥통이 꽁꽁 얼어붙게 되는 한겨울에도 고생 좀 해야 합니다. 삼면이 막혀 있는 뒷간이지만 머리 위쪽은 눈비를 막아 주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 찬바람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뒷간이 너무 추워 궁리 끝에 세면장에다가 이동식 뒷간을 설치해 주었습니다.

이동식 뒷간이라 해봤자 별거 없습니다. 튼실한 양동이 위에 좌변기를 씌워 놓는 보조기를 올려놓은 것입니다. 볼일을 보고 나면 그 보조기를 떼어내고 양동이만 들고 나가 호박구덩이나 밭에 뿌려 놓으면 요긴한 거름이 됩니다. 그 무렵 뒷간의 똥을 퍼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만큼 따로 똥을 퍼 나르지 않아도 되었기에 일거양득이었습니다.

'이동식 뒷간'은 녀석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더 이상 필요치 않았습니다. 녀석들은 한겨울에도 당당하게 뒷간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시리면 뒷간 문을 닫고 촛불로 훈기를 조절하는데 녀석들은 볼일을 보면서 촛불놀이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좌변기에 익숙한 도시 아이들이 우리집 뒷간에서 볼일을 제대로 못 보듯 우리 집 아이들 역시 좌변기에서 볼일을 제대로 못 봅니다. 어쩌다 비대가 설치되어 있는 좌변기에서 볼일을 보다가 얼굴에 물 세례를 당하곤 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그래도 똥물이 튀기는 뒷간은 비위생적이라고요? 분명 똥물이 위생적이지는 않습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병원균이 이러니저러니 하여 이런 저런 병이 생기느니 의학적으로 걱정하겠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통물 튀기는 뒷간 때문에 병난 적이 없습니다. 한겨울 시린 엉덩이를 까 내리고 볼일을 보고 있지만 감기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지 않습니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본 일이 언제 적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몸의 균형을 흔들어 놓는 병원균이 득실거리면 자연 상태에서는 그 병원균에 저항할만한 또 다른 병원균이 생기듯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겨울에는 엉덩이가 시리고 장마철에는 똥물 파편을 맞지 않기 위해 신문지를 깔고 정조준 하거나 정조준에 실패하면 파편을 피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여야 하는 불편함을 견뎌내야 하지만 우리 집 뒷간에는 그 이상의 즐거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뒷간 문짝을 활짝 열어 놓고 볼일을 봅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적당히 떨어진, 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뒷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볼일을 봐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뒷간과 옆집이 비껴 보이긴 하지만 홀로 사신 던 옆집 할아버지께서 서울 아들네 집으로 떠나 빈집이 된 지 이미 오랩니다.

거적문으로 되어 있었던 예전의 시골 뒷간은 문고리조차 없어 문을 열어놓고 볼일 보다가 누군가 등장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문짝은 손을 길게 뻗지 않아도 문고리를 바로 잡아 당길 수 있기에 민망한 사태가 벌어지게 될 염려도 없습니다.

뒷간 코앞에는 야트막한 담장이 있고 그 너머 울창한 나무들이 보입니다. 밤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오동나무들이 큰 키를 자랑하며 줄지어 있습니다. 그 아래로 작은 개울이 흐릅니다. 개울물은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산물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무들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새들도 보입니다. 새들의 소리도 들려옵니다. 노래를 하는지 벌레들이 무지하게 많다고 지들끼리 뭐라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새들은 물소리만큼이나 듣기 좋은 소리를 냅니다.

올 여름에는 뒷간 바로 앞에 멋진 줄을 쳐놓고 먹이를 노리는 줄무늬 선명한 거미가 내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9월로 접어들면서 철수를 했지만 우리 집 아이들 말로는 호랑거미라고 합니다.

호랑거미가 지난 여름내내 뒷간 처마와 벽 사이에 진을 치고 있었다.
 호랑거미가 지난 여름내내 뒷간 처마와 벽 사이에 진을 치고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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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울 건너 오동나무 나뭇가지와 뒷간 담장 사이로 오가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거미도 있었습니다. 오동나무 가지와 뒷간 담장 사이의 공간은 어림잡아 2m 정도 됩니다. 거미 녀석은 어떻게 그 멀리까지 줄을 잇댈 수 있었을까? 아이들의 상상을 키워줍니다.

아, 또 있습니다. 늦은 봄이나 초가을 밤, 뒷간에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어쩌다 반딧불이의 유형을 숨죽이고 훔쳐보기까지 합니다. 재수가 좋으면 반딧불이의 춤사위를 보면서 기분 좋은 볼일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반딧불이가 춤을 추는데 밤하늘의 별들은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인상이 녀석의 얼굴에 똥물이 튀기던 그날 밤, 뒷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쪼그려 앉아 별을 보다가 그만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어이쿠!"

풍덩 소리와 함께 운동신경을 최대한 발휘해 엉덩이를 들었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별에 취해 방심한 틈을 타 똥물 파편이 엉덩이에 꽂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휴지로 적당히 닦아내고 어기적어기적 세면장에 들어가 엉덩이를 씻어내면서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똥물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똥을 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똥을 푸지 않았던 것입니다. 똥을 퍼 농사를 지을 때는 장마철에도 똥물에 위협 받지 않았습니다. 똥물의 위협은 욕심껏 밭을 넓히고부터였습니다. 밭을 넓히면서 똥오줌을 푸지 않았습니다. 밭을 늘려나가자 일손이 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똥오줌을 퍼날라 농사를 짓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식구가 1년 동안 쏟아낸 똥오줌으로는 그 너른 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지례 짐작하여 똥 푸는 일을 아예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먹을거리에 대한 욕심이 늘어난 것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식구가 먹는 음식들은 자연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연으로 되돌려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똥물의 위협은 먹은 만큼 자연에 되돌려 놓지 않은 것에 대한 준엄한 경고장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에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이 어디 똥오줌뿐이겠습니까? 되돌려 받고 있는 것이 똥물뿐이겠습니까?

세면장에서 엉덩이를 씻고 있다가 인상이 녀석과 마주쳤습니다. 비실비실 웃음을 던지자 뭔 일인가 싶어 녀석이 빤히 쳐다봅니다.

"인상아! 아빠도 당했다…."
"뭘?"
"아빠가 더 바보였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격월간지 '자연과 생태' 11,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연으로 되돌려 주기, #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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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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