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온이 급강하하였다. 갑자기 추워지니, 몸이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몸과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보다. 몸이 날씨에 적응을 하지 못하니, 체감하는 온도는 더욱더 낮아진다. 기온이 분명 영하로 떨어진 것은 아닌데, 실제로는 훨씬 더 춥게 느껴진다. 집사람은 추위를 더 참지 못하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게 되니, 추위가 무서워져요. 해놓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아픈 곳은 많아지고 날씨까지 추워지니, 견딜 수가 없어요.”

 

집사람 못지않게 나 또한 추위가 이제는 무섭다. 그렇다고 하여 따라서 죽겠다고 불평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직은 자존심이 남아 있으니,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소극적인 나 자신과 집사람을 마음을 단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추위와 당당하게 맞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섰다. 햇살이 맑아도 기온은 예상을 훨씬 더 상회하였다. 얼굴이 할퀴고 지나가는 바람 끝에는 날카로움이 살아 있었다. 살갗이 놀라서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자동차 안으로 들어서니, 그렇게 안온할 수가 없었다. 집사람은 계속 불만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구이 저수지 부근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야! 아름답다.”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억새의 모습이 그렇게 돋보일 수가 없었다. 움츠러들고만 있던 집사람도 우뚝한 풍광에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아직도 그 위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달랐다.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예리함이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하얀 억새에 의해 그 힘을 잃은 것이 분명하였다.

 

억새가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의 모습이 곱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군락을 이루고 끝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장관이었다. 억새의 물결은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억새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 다니면서도 무덤덤하였었다.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얼마나 둔감하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의 눈을 뜬다면 언제든지 볼 수 있었겠지만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구이 저수지는 모악산 경각산 오봉산 등의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모은 곳이다. 이물은 다시 흘러 만경강을 이루고 새만금 앞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전라북도의 아주 중요한 수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억새를 통해 완주군 구이면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동안에 소홀하게 대접하였던 일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억새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한 눈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니, 그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우뚝할 수가 없었다.

 

텅 비어 있는 벌판의 모습까지도 아름답다. 수확을 마치고 텅 비어 있음에 가슴이 확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어 있는 저곳을 다시 채우기 위하여 땀 흘릴 것을 생각하니, 힘이 용솟음치는 것이다. 비어 있기에 고마운 것이다. 다시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야! 곱다.”

집사람의 감탄사에 바라보았다. 도로변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였다. 어찌나 잘 정돈이 되어 있는지, 바라만 보아도 공부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학교 교정에 커다란 소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름드리 단풍나무 고목이 두 그루가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반절쯤 떨어진 나무는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가을이 저만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단풍 이파리의 색깔도 가지가지다. 붉은색으로만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연록색에서부터 시작하여 노란색과 분홍색, 그리고 주황색과 붉은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파리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단풍나무가 고운 것은 다양한 색깔들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같은 나무라 할지라도 이파리의 색깔은 모두가 달랐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자연의 놀라운 배려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것을 제대로 보지 않고 불평만 늘어놓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구이면을 벗어나니, 곧바로 임실군이다. 이곳이 바로 옥정호다. 칠보 수력발전소를 비롯한 다목적 댐이다. 주변의 풍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되었을 정도이다. 어디를 보아도 아름다워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수력발전을 하고 난 뒤에 정읍 쪽으로 흐르는 물은 김제를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맑은 물 파란 하늘이 감동으로 몰아넣는 아름다운 곳이다. 옥정호는 임실군과 정읍시 그리고 완주군을 아우르는 큰 호수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맑은 물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정겹게 인사하고 웃는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산천의 정기를 그대로 닮아간다는 말은 사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옥정호가 끝자락을 이루고 있는 정읍시 산내면에서는 매년 구절초 축제를 벌인다. 호수의 맑은 물과 파란 하늘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은 구절초를 가꾸어 축제를 하는 것이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구절초를 심고 벌이는 축제 한 마당은 소박하지만 아름답다. 옛날부터 구절재라고 하는 고개가 있어 고절초가 자생하고 있어 축제의 의미를 더 해주기도 한다.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과 일치하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옥정호 주변의 도로를 느긋한 마음으로 달리다 보면 참 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인 숨쉬기가 하였던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살아가게 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지 않은가? 물처럼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는 고운 향이 배어난다고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게 된다.

 

숨을 들이쉴 때에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면 편해진다. 부정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살아가는 방법이다. 숨을 내쉴 땐 세상살이의 온갖 고뇌와 근심을 내어놓으면 된다. 감춘다고 하여 감춰지는 것도 아니다.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더 복잡해질 뿐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으면 사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사는 방법이다.

 

옥정호의 맑은 물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집사람의 얼굴에도 홍조가 띤다. 춥다고 움츠리고 있던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얼굴에는 호수의 맑은 물의 정기가 배어 있고 파란 하늘의 자유로움이 깃들어져 있었다. 추위는 어느 사이에 어디론가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차가운 기운이 기분을 쇄락하게 해준다.

 

완주군 구이면에서는 억새의 뛰어는 풍광에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임실군 옥정호에서는 맑은 호수의 정기를 듬뿍 마실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겨울의 문턱에서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맛에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여행은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 경이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해준다. 맑은 물, 파란 하늘에 구름 따라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시진은 전북 완주군과 임실군에서 촬영(2007.11.18)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 기사


태그:#억새, #자연, #여행, #맛, #멋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