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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을 닮은 차리스 산맥
 테이블마운틴을 닮은 차리스 산맥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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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짭한 육포인 빌통의 맛이 그만이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나우클루프트 캠핑장에서 일찍 출발했다. 세스리엠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불스포트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샀다. 나는 말린 고기인 육포를 샀는데, 빌통(Biltong)이라고 쓰여 있다. 빌통에는 쇠고기와 쿠두, 스프링복, 타조 등 야생 사파리 동물들이 모두 있었다. 나는 쿠두 빌통을 두포 샀다.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좋다. 쫄깃쫄깃하니 씹히는 맛도 있고, 양념이 되어 있어 짭짤한 맛도 있다.

우리 육포는 그냥 고기를 말린 것인데, 빌통은 양념을 해서 더욱 입맛을 당긴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 비상식량과 간식으로는 빌통이 최고다. 나는 빈트후크로 오는 도중 두포의 빌통을 모두 먹어치웠다. 양념을 한 빌통이어서 목이 말라 갈증이 생겼지만, 맛 하나 만큼은 그만이었다.

세스리엠에서 불스포트로 오는 길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차리스 산맥의 모습이다. 마치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을 보는 듯한, 산봉우리가 평평한 테이블 같이 생긴 정상이 펼쳐지는데, 테이블마운틴보다 훨씬 크다.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을 나비미아 사막에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산 모양이 비슷하다.

차량  앞쪽으로 커다란 영양을 닮은 야생동물 무리들이 길을 가로질러 벽을 뛰어 넘어 달아난다. 쿠두(Kudu)이다. 키는 150cm이지만, 뿔은 160cm이다. 수컷만이 뿔을 갖고 있다. 빈트후크 시내에서 구리상으로 서 있는 쿠두가 사막에서 자유를 찾아 뛰어 다니고 있었다. 빈트후크에서 나미브 사막을 오가는 길에는 쿠두와 스프링복, 오릭스, 임팔라, 이랜드, 다마란 딕딕, 개코원숭이, 타조, 땅굴 다람쥐 등을 볼 수 있다.

화살 통 만드는 키버 나무와 웰위치아(벨비치아.Welwitschia) 등 희귀식물들도 볼 수 있다. 특히 나미비아와 앙골라에서만 서식하는 웰위치아는 1천년 이상을 사는 식물로 ‘살아있는 화석 식물’이라 불린다. 사막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축 늘어진 웰위치아는 줄기와 잎사귀가 죽어가면서도 꽃을 피우고 씨를 바람에 날려 새싹을 돋게 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한다.
차량은, 갈 때와 달리 올 때는 세스리엠과 불스포트를 지나 레호보트를 거쳐 빈트후크의 사파리 회사에 도착했다. 서로들 각자의 행선지로 가느라 순식간에 뿔뿔이 헤어진다.

차리스 산맥 근처의 쿠두 떼
 차리스 산맥 근처의 쿠두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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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트후크에서 스와콥문트로 가는 길의 도시들

빈트후크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30분. 나도 서둘러 스와콥문트로 가는 미니버스 정류장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나미비아의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인 미니버스는 승객이 꽉 차지 않았는데도 정각에 출발한다. 승객이 찰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다르다. 13인승 미니버스인데 10명이 탔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린다. 빈트후크 북쪽으로 72km에 오카한자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헤레로족의 집단거주 지역이자 행정 중심지이다. 독일의 식민지배에 맞서 싸웠던 헤레로족 지도자인 호세아 쿠타코와 빌렘 마헤레로, 나마족 지도자인 얀 욘커 등의 무덤이 있다. 6월과 8월에 푸른 기와 빨간 기에 전통의상을 입고 독일군에 희생된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단단하고 품질 좋은 대리석이 나오는 카리비브 지역을 지나 미니버스는 우사코스에 잠시 정차했다. 우사코스는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이다. 빈트후크에서 2시간 정도 걸렸다. 작은 마을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공동묘지가 보인다. 사람이 사는 마을 안에 묘지가 공존하는 유럽식 화장 문화이다. 공동묘지 여기저기에도 야생 알로에(Aloe hereoensis)가 말라버린 조화처럼 비석 옆에 서 있었다. 주유소 겸 휴게실에서 차가 20여 분 간 정차한다. 아프리카 미니버스가 정각에 출발하고 중간에 승객을 태우지 않는 것도 나미비아가 유일하다.

내가 묵었던 스와콥문트의 유로파 호텔과 뒤쪽의 대서양
 내가 묵었던 스와콥문트의 유로파 호텔과 뒤쪽의 대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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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브사막을 달리는 ‘사막 특급열차’

“스와콥문트 146km”라는 도로 팻말이 있다. 아스팔트 도로가 2차선으로 잘 깔려 있다. 우사코스에서 20km 달리니 오른쪽에 산족의 바위그림 팻말이 있다. 철길도 보인다. 좁은 협궤의 단선철도이다. 1902년 완공된 빈트후크와 스와콥문트를 잇는 트랜스나미브 철도이다.

트랜스나미브 철길로는 이름도 근사한 ‘데저트 특급열차(사막 특급열차. Desert Express)’가 빈트후크와 스와콥문트를 지나 뤼데리츠까지 여행객을 태우고 기적소리를 내며 달린다. 모래를 가르며 사막을 달리는 기차는 얼마나 멋있을까. ‘데저트 특급열차’에 비교할 말한 열차는 아마 ‘오리엔트 특급열차(Orient Express)’ 밖에 더 있을까. 영국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인 <오리엔트 특급열차 살인사건>의 무대이기도 한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영국의 런던에서 파리를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열차를 타고 달리는 꿈을 꾼다. 소설을 영화화한 <오리엔트 특급열차 살인사건>에서도 명탐정 포와르가 의문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갈 무렵 열차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우사코스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뾰족한 산봉우리로 유명해 ‘아프리카의 마테호른’로 불리는 스피치코프와 선사시대의 가장 유명한 바위그림중 하나인 ‘흰 코끼리 바위그림’이 발견되는 등 산족의 바위그림으로 유명한 에롱고 산으로 가는 길목이다.

버스는 우사코스에서 조금 더 달려서 아란디스(Arandis)라는 작은 마을에 정차해 승객을 내려준다. 아란디스 마을 입구에는 오른쪽으로 우라늄 광산 팻말이 보이고, 그 팻말 뒤로는 광산용 철로가 놓여 있고, 우라늄을 실은 화물열차가 철길 위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미비아는 세계 5위의 핵연료 광물자원인 우라늄 생산국이다. 나미비아는 어디를 가나 우라늄, 다이아몬드, 대리석 등의 광산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광물이 풍부하다. 아란디스와 10km 떨어진 뢰싱(Rössing)은 바로 세계 최대의 노천 우라늄 광산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란디스 마을 안쪽으로는 아카시아 나무거리가 있었다. 아란디스에도 “스와콥문트 56km”라는 팻말이 있어 스와콥문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와콥문트의 '더 터그' 레스토랑
 스와콥문트의 '더 터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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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휴양도시 스와콥문트에 도착하다

운전사가 중간에 쉬지 않고 빨리 달린다. 앞좌석에 앉은 내가 속도계를 보니 무려 120km이다. 아란디스와 뢰싱을 지나자 스와콥문트가 10km 남았다는 팻말이 보인다. 왼쪽에 골프장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스카이다이빙 클럽 팻말이 보인다. 스와콥문트는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 내리는 스카이다이빙과 사막에서 네 바퀴 오토바이를 타는 쿼드바이킹으로도 유명하다.

빈트후크에서 356km 떨어진 스와콥문트를 4시간 만에 도착했다. 오후 5시 30분. 이미 해는 져서 어둠이 시내에 깔렸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조용한 도시의 밤이다. 가장 싸면서 유명한 스와콥문트 롯지나 데저트 스카이 백팩커스, 둔 백팩커스 등의 여행객 숙소를 다녔으나 방이 하나도 없다. 오늘도 숙소를  잡느라고 고생을 해야 했다. 스와콥문트에도 유럽의 여름방학과 휴가철이 겹치면서 가족단위와 직장인, 학생들이 몰려들어 싼 방을 잡을 수가 없다. 나미비아인에게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곳이다.

결국 나는 해안가에 가까운 ‘호텔 유로파 호프(Hotel Europa Hof)’에 들어갔다. 빈트후크와 스와콥문트 등 나미비아의 여행지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여름에 방을 잡기가 쉽지 않다.
저녁은 해변에 있는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더 터그(The Tug)’라는 식당으로 갔다. 예인선이라는 이름 그대로 배 모양의 레스토랑이다. 파도치는 해변에 위치해 2층의 레스토랑에서도 파도소리가 들린다. 전망도 파도치는 모습을 보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낭만적이다. 그러나 레스토랑은 일요일 주말이어서 그런지 모두 예약이 끝났다. 어디를 가나 유명한 곳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행히 레스토랑에 붙은 안쪽의 바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바에는 대부분 손님들이 나처럼 예약 없이 왔다가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내 옆의 여자 2명도 역시 독일 말을 쓴다. 다양한 생선에 쌀밥을 주는 생선 케밥(Fish Kebab)을 시켰더니 꽤나 맛이 있다. 타펠(Tafel)이라는 상표의 나미비아 맥주는 진한 맛이 났다. 숙소로 걸어서 돌아오는 데, 대서양의 파도는 더욱 기세를 부리고, 소리도 커진다.

1906년 세워진 스와콥문트의 호헨졸렌 호텔
 1906년 세워진 스와콥문트의 호헨졸렌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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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식민지시대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스와콥문트

아침 일찍 일어나 대서양의 바닷가로 달려갔다. 숙소는 바로 대서양과 붙어 있다. 밤사이에도 파도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파도가 거칠고, 바람도 세다. 부지런한 갈매기들은 파도를 타면서 잠이 덜 깬 어수룩한 고기를 잡고 있다. ‘더 터그’ 식당에서 바다 쪽으로 만든 철제 다리 같은 방파제에 하얀 파도가 부딪치며 깨어지는 포말이 아름답다. 포인터 개와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백인 할머니도 보이고, 운동복을 입고 바닷가 도로를 조깅하는 젊은 백인 여성도 있다.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시내 구경에 나섰다. 배낭을 숙소에 놓고 몸만 다니니 날아갈 것 같이 가볍다. 여행하면서 항상 배낭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전날 밤에 보이지 않았던 시내의 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어느 작은 도시를 통째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스와콥문트는 독일 식민지 시절 빈트후크보다 2년 뒤인 1892년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의 주요 항구로서 건설되었다. 총독부 수도인 빈트후크와 항구도시인 스와콥문트는 철도로 연결된 식민지 통치와 수탈의 양대 축으로 발전했다.

야자수와 파인애플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고, 넓은 도로들은 해변을 향해 뻗어 있다. 19세기 독일식 건축양식에다 커다란 베란다를 설치해 아프리카의 강한 햇볕을 차단하려는 건축양식들이 눈에 띈다. 스와콥문트는 도시 자체가 대서양을 따라 만들어진 해변 휴양도시이다.

모두 1901년에서 1908년 사이에 지어진 독일 식민지 시대 건물들이 용도만을 달리한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내 숙소 옆의 옛날 철도회사 건물로 지은 요새 같은 알테 카제르네와 총독부 책임자의 집무실로 지어진 카이제르리헤스 베지르크스게리히트, 사립학교로 지어진 알테스 암츠게리히트, 기차역인 반호프, 바로크 양식의 호텔로 지어진 호헨졸렌, 무역회사 건물이었던 뵈르만하우스. 루터 교회 건물도 독일 풍을 물씬 풍긴다. 독일계 나미비아인들이 많이 사는 별장식 저택이 들어선 옛날 룬 스트라세 거리와 해안가를 향해 야자수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는 다니엘 촌가레로 스트리트 거리에는 노란색의 가톨릭성당이 인상적이다.

가톨릭성당에서 야자수를 따라 바닷가로 가다보면 총독부 집무실 뒤편으로 등대가 보인다. 100여 년 전에 세워진 하얀색과 붉은색의 등대는 팜비치 해변을 바라보고 서 있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변하여 여행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지만, 옛날에는 대서양 아프리카 서해안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희망의 불빛이었다.

등대에서 대서양의 ‘소금도로’를 따라 앙골라 쪽으로 올라가면 죽음의 바닷가인 ‘해골 해안(Skeleton Coast)’이 나온다. 스와콥문트에서 북쪽 해안은 거센 폭풍과 거친 파도, 짙은 안개, 얕은 수심으로 항해하는 배들에게는 죽음의 항로였다. 지금도 좌초한 난파선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오죽 했으면 ‘해골 해안’이라고 이름 붙였겠는가. 아프리카의 대서양 바다는 이처럼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어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스와콥문트는 희망봉에서 올라오는 벵겔라 한류의 영향으로 서늘하고 안개가 많지만, 비가 적어 극심한 사막 지대를 보인다.

총독부 집무실이었던 카이제르리헤스 베지르크스게리히트와 등대
 총독부 집무실이었던 카이제르리헤스 베지르크스게리히트와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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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풍의 이국적인 스와콥문트의 매력

다이아몬드의 나라답게 보석가게들도 눈에 띈다. 크리스털 갈레리라는 보석가게에는 무려 5억2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수정 크리스털이 전시되어 있는데, 무게가 14t이 넘고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커다란 크리스털 덩어리이다. 다른 보석 가게에는 다이아몬드와 석류석(가넷), 남옥(아콰마린), 천하석(아마조나이트) 등의 원석들도 전시해 놓아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나미비아에서 생산되는 보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한번 들러볼 만하다.

스와콥문트는 어디 하나 독일냄새가 안 나는 곳이 없다. 땅과 바다만 아프리카이고, 넓은 도로와 교회양식, 건물과 집 등 모든 것이 독일식이다. 독일보다 더 독일다운 도시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프리카속의 ‘이국적인 도시’라는 표현이 맞는 도시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보면 독일식의 이국적이고, 유럽인들이 보면 아프리카답지 않은 도시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유산이든 아프리카의 현대화된 유럽식 도시이든, 스와콥문트는 독일식 도시라는 명성으로 유럽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행객들은 아프리카 서해안의 사막도시 스와콥문트의 ‘현대화된 유럽도시’와 ‘아프리카 본래의 모래사막과 해변’에 흠뻑 빠져 스와콥문트로 몰려들고 있다. 거리에는 현지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유럽 여행객로 가득 찰 정도로 사람도 이국적이다.

대서양과 나미브 사막을 끼고 있는 스와콥문트는 독일 풍의 도시와 저녁 해질 무렵의 해안가 커피와 맥주 한 잔, 사막 위로 떨어지는 스카이다이빙과 쿼드바이킹이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바다와 사막의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스와콥문트의 매력이 떠나려는 여행객의 발길을 잡아당긴다.

스와콥문트의 나미브사막에서 퀘드바이킹하는 모습
 스와콥문트의 나미브사막에서 퀘드바이킹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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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콥문트에서 웰비스 베이로 가는 풍경

나는 시내구경을 한 뒤 웰비스 베이로 가기로 했다. 스와콥문트에서 웰비스 베이까지는 30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차량으로 30분이면 가는 거리이다. 나는 오후 5시 빈트후크에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 가는 인터케이프 버스표를 예매해 놓았는데, 내가 타고 가려는 인터케이프 버스의 출발지가 마침 웰비스 베이였다. 웰비스 베이로 가서 구경도 하고 버스도 타면 되는 일석이조였다.

웰비스 베이가 나를 이끈 이유는 단연 바다 플라밍고 떼였다. 케냐의 나쿠루, 탄자니아의 마니아라와 응고롱고로에는 호수에 플라밍고가 있지만, 웰비스 베이에는 바다에 플라밍고 떼가 있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니 웰비스 베이까지 가서 구경하고 버스를 타야할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다.

길거리에서 차를 잡는데,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버스는 오지 않는다. 웰비스 베이를 포기하고 애초대로 스와콥문트에서 빈트후크로 가야 할 상황이다. 바둑 세계에서 침착하기로 유명한 이창호 9단이 초읽기에 몰려 시간패를 당하기 일보 직전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그 때 소형 픽업트럭이 다가왔다. 나는 바둑돌을 던지는 심정으로 손을 들었다. 이기느냐, 깨끗이 기권하느냐의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픽업트럭이 선다. 나의 히치하이킹은 성공이었다. 70대의 백인 할아버지가 차를 몰고 있다. 웰비스 베이에 간다고 하자 “배낭여행객이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웰비스 베이에 일하러 가는 길이라며 나를 태워준다. 할아버지는 애초 남아공에서 태어났으나 25년 전 나미비아로 옮겨 왔다고 한다.

스와콥문트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모래사막이 나타났다. 왼쪽으로 “데저트 익스플로러(Desert Explorer)”라는 사막 레포츠회사가 보이고, 7명의 여행객들이 쿼드바이킹을 위해 네 바퀴 오토바이를 끌고 사막으로 가고 있었다. 여행객은 사막 초입인데도 기분이 좋은지 오토바이에서 일어나 두 손을 하늘로 쳐들다. 쿼드바이킹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차에서 뛰어내려 사막으로 달려가고 싶다.

스와콥문트는 다양하고 모험적인 사막 스포츠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관광만이 아닌, 직접 사막에서 뒹굴고 모래에 흠뻑 빠져보는 체험여행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쿼드바이킹 하는 사람들이 뒤로 멀어지면서, 눈앞에 다가오는 사막의 붉은 모래언덕에 갑자기 숨이 멈춘다.  왼쪽으로는 붉은 모래언덕이 차안으로 무너져 내려오는 듯하고, 오른쪽으로는 대서양의 푸른 바다가 하얀 파도와 함께 달리는 차속으로 밀려온다. 끝없는 붉은 모래사막만 보다 푸른 대서양 바다를 보니 풍덩 물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푸른 바다와 붉은 사막이 어울리는 사막해변이다. 이 사막해변은 남쪽으로 뤼데리츠를 지나 출입 금지구역인 다이아몬드 지역까지 뻗어있다.

웰비스 베이로 가는 길의 모래언덕
 웰비스 베이로 가는 길의 모래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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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스플라이 모래언덕과 웰비스 베이 모래언덕의 차이

작은 모래언덕은 끊어지지 않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포물선의 연속이다. 그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허리 같다. 모래 색깔도 살색에 가까운 붉은 색이다. 발가벗은 여인이 바다를 등지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20~30m 높이에 완만한 경사가 아기자기한 예쁜 언덕이다. 소수스플라이 사막 언덕이 100m 이상의 높은 산의 정상처럼 웅장한 아름다움을 뽐낸다면, 웰비스 베이로 가는 해변의 모래언덕은 동네마을 어귀의 작은 동산같이 정감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소수스플라이가 활짝 핀 꽃의 중년의 매력이라면, 웰비스 베이의 모래언덕은 아직 꽃봉오리가 터지기 전의 20대의 풋풋한 아름다움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서 바람에 날려가는 웰비스 베이 해안가의 모래는 소수스플라이의 모래언덕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미 소수스플라이의 모래언덕에 매료된 나는 해변의 작은 모래언덕을 보자 다시 가슴이 울렁거린다. 멎었던 호흡도 다시 뛰기 시작하고, 맥박도 빨라진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집 앞의 두 갈래 머리를 땋은 신발가게 여고생을 보면 뛰었던 그 심장박동소리다.

웰비스 베이가 가까울수록 사막의 붉은 모래언덕은 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웰비스 베이의 작은 모래언덕은 소수스플라이 모래언덕까지 이어진다. 웰비스 베이의 모래언덕은 바다의 강한 바람 때문에 오늘 쌓였던 모래가 내일 다시 그만큼 날아가기 때문에 높은 모래언덕을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해변의 모래언덕은 항상 저 만큼의 모래언덕으로 남아 있다. 소수스플라이는 대서양의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온 해변의 모래가 바람이 약해지면서 계속 쌓이기 때문에 높은 산만큼의 언덕을 자랑한다. 저 해변의 사막언덕에 있는 모래는 새벽이면 바람에 날려 소수스플라이로 이사를 간다.

해안가의 작은 붉은 모래언덕을 보자 사춘기 소년 때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소수스플라이의 커다란 붉은 모래언덕에서도 그런 감정은 없었는데. 심장이 멎었다 다시 뛰고, 다시 멎었다가 더 빨리 뛴다. 나미비아 해변의 모래언덕이 나를 사춘기 소년으로 되돌려 놓았다. 검은 치마에 하얀 상의의 교복을 입고 두 갈래로 뒷머리를 딴 여고생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적이 어느 세월인데, 나미비아의 붉은 모래언덕이 다시 나의 심장을 멎게 한다.

웰비스 베이로 가는 내내 모래언덕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스와콥문트에서 웰비스 베이로 가는 30분이 없었다면, 아프리카 여행에 커다란 구멍이 남았을 것이다. 허전했던 마음 한구석이 꽉 채워지는 충만감을 느꼈다. 온몸에서 전율하듯 행복감이 밀려왔다. 살아오면서 내 마음 속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젊었을 때 일에 치이다 보니, 그 무언가가 부족했던 것이다. 여유, 사색, 행복, 사랑.

웰비스 베이 항구 모습
 웰비스 베이 항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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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머문 호텔은 이미 유명 관광지

웰비스 베이에서 북동쪽으로 8km 떨어진 사막은 ‘모래언덕 7(Dune 7)’으로 유명하다. 나미브 사막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으로 소수스플라이의 ‘빅 마마’와 비교해 ‘빅 대디(Big Daddy)’라고 부른다. 높이가 무려 383m로 세계에서도 3번째로 높은 모래언덕이다. 몇 대의 사파리 차량들이 사막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마도 ‘빅 대디’ 모래언덕을 오르려는 여행객이다.

웰비스 베이에 가까이 가다보면 해안가에 고급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할아버지가 한 고급 리조트식 호텔을 가리킨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애를 낳은 곳”이라고 한다. 내가 방문하기 두 달 전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스와콥문트에서 딸을 낳았다고 언론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해안가에 있는 ‘버닝 쇼어 롯지(The Burning Shore Lodge)’가 바로 피트와 졸리가 머물던 곳이다. 보기에도 화려하고 비싼 최고급 리조트이다.

방마다 테라스가 있는 2층짜리 버닝 쇼어 리조트는 스와콥문트와 웰비스 베이 사이에 있는 해안가에 있는데, 행정구역상으로 웰비스 베이의 롱비치 거리에 속한다. 웰비스 베이 고급 호텔을 소개한 책자에 보니 버닝 쇼어 리조트만이 정해진 가격이 없고 “손님의 요구사항에 따른 가격 산정”이란다. 할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 촬영지가 관광지가 되듯이, 대중스타가 머물던 장소가 관광 상품이 되는 현실이다.

웰비스 베이 시내 모습
 웰비스 베이 시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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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은 왜 웰비스 베이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나

바다에 수많은 배들이 떠 있다. 화물을 싣는 대형선박에서 관광용 소형 선박까지 얽혀 있다. 웰비스 베이다. 바다에는 배가 있어야 더욱 운치가 있다. 그 배 뒤로는 작은 점 같은 육지가 보이는데, 펠리컨이 많이 사는 펠리컨 포인트 모래곶이다. 펠리컨 포인트 모래곶이 웰비스 베이를 감싸듯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천혜의 만을 만들고 있다. 포르투갈 항해가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인도양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희망봉으로 가기 전 1487년 12월 8일 닻을 내렸던 곳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항구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이 버리자 항구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차린 영국은 1840년 웰비스 베이를 점령해 독일의 나미비아 식민지배 시절에도 웰비스 베이만은 영국의 땅이었다. 물론, 웰비스 베이에도 수천 년 동안 나미비아의 원주민인 코이코이(호텐호트)족이 살고 있었다.

나미비아에서의 독일의 팽창을 견제하고 남아공 케이프식민지를 오가는 영국 배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웰비스 베이는 무엇보다도 나미비아 뤼데리츠와 앙골라 루안다 사이에 유일한 대서양 천연 항구로서 전략적 가치가 컸다. 영국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은 남아공은 1990년 나미비아 독립 이후에도 웰비스 베이를 차지하려다 1994년에야 겨우 나미비아에 주권을 넘겼다.

붉은 모래언덕이 배경으로 든든히 버티어 섰고, 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 웰비스 베이는 유치원 아이들이 그리는 바다와 해변마을의 모습 그대로다.  웰비스 베이 입구에는 “웰비스 베이, 기회의 오아시스(The Oasis of Opportunities)”라고 쓰여 있다. ‘작지만 큰 항구’의 역할을 지향하는 웰비스 베이에 정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웰비스 베이의 플라밍고 떼
 웰비스 베이의 플라밍고 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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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섬처럼 떠 있는 웰비스 베이의 플라밍고

웰비스 베이에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어느 주택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개인집의 주차장에 가서 줄자로 차고의 높이와 길이를 잰 뒤 다시 돌아온다. 1분도 채 안 걸린다. 인터케이프 버스 시간까지는 30분도 채 안 남았다.

내가 플라밍고를 보고 싶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며 기꺼이 차를 몬다. 케냐의 나쿠루 호수의 플라밍고 떼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고, 탄자니아 아루샤에서도 겨우 수천 마리만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여 주인공 카렌과 연인 데니스가 쌍발 경비행기를 타고 나쿠루 호수 위를 날자 그 밑으로 수만 마리의 플라밍고 떼가 붉은 구름처럼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웰비스 베이 라군(습지대)에 도착했다. 새들의 낙원이라고 불리고, 바닷물로 소금을 생산하는 소금밭(염전)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는 “클라인스 보금자리”라는 팻말이 있었다. 플라밍고의 집단 서식지이다. 웰비스 베이의 산호초로 인해 얕은 바다가 만들어지면서 플라밍고 떼가 몰려들고 있다.

바다 위에는 2개의 붉은 섬이 떠 있었다. 실제 섬이 아니라, 플라밍고 떼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이 보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만 마리에서 수십만 마리의 플라밍고 떼들이 바다 위에 모여서 마치 2개의 붉은 섬을 만들고 있다. 호수가 아닌 바다에 저렇게 많은 플라밍고 떼들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플라밍고는 바닷물 아래 산호초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산호초가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한참 동안 플라밍고 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플라밍고의 반 이상이 이곳 웰비스 베이 습지대에 살고 있다.

플라밍고는 저 넓은 바다에 흩어져 있지 않고, 한곳에 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일까. 바다독수리로부터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넓은 바다에 혼자 떠 있으면 외로워서 일까.  케냐와 탄자니아의 호수에서 보지 못한 플라밍고의 아쉬움을 충족하고도 남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웰비스 베이의 얕은 바다, 라군에는 플라밍고뿐 아니라 해안가 가까운 곳에 펠리컨과 제비갈매기, 물떼새 등 40여종의 수많은 물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웰비스 베이 라군은 16만 마리의 새들의 안식처이고, 해마다 20만 마리의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새들의 정거장이다.

스와콥문트의 룬 스트라세 거리 모습
 스와콥문트의 룬 스트라세 거리 모습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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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만남이지만 뇌리에 남은 나미비아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차에서 그대로 기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돌아오면서 또 다른 집의 주차장에서 똑같은 줄자로 높이와 길이를 잰 뒤 노트북에 적고는 다시 차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일이 궁금했다. “무슨 일을 하시는 거죠”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소개하는 책자를 보여주었다. “아프리칸 도어스(African Doors)”라는 회사이다. 주로 주차장의 자동문을 설치해주는 회사이다.

스와콥문트에 사무실이 있는데, 웰비스 베이에서 주문이 있어 차를 몰고 온 것이다. 차를 모는 동안에도 두 차례나 핸드폰으로 공사 주문을 받기도 했다. 70이 넘었는데도, 직접 주문을 받고 차를 몰아 현장에 가서 사전조사를 하고, 직접 공사를 한단다. 나이를 잊고 사는  ‘젊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웰비스 베이의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출발시간 10분이 남았다. 할아버지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40나미비아달러를 건네자 받지를 않는다. 오히려 할아버지는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격려한다.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짧은 만남이지만 가장 뇌리에 남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스와콥문트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픽업트럭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버스정류장 옆에는 레스토랑과 클릭스 슈퍼마켓, 모델 슈퍼마켓이 있었다. 오토바이 가게가 있는데, 혼다의 쿼드바이킹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류장 옆의 공중화장실도 깨끗하다. 웰비스 베이는 깔끔한 도시였다.

잠시 후 도착한 인터케이프버스에 올라탔다. 결코 짧지 않은 아프리카 대륙 종단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돌아온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이다. 웰비스 베이에서 출발해 스와콥문트와 빈트후크를 거쳐 남아공의 어핑톤(Upington)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요하네스버그까지 가는 길이다. 무려 30시간에 걸친 긴 버스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긴 탑승시간이다. 버스에 올라 빈트후크로 오는 내내 그 백인 할아버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와콥문트의 가톨릭 성당
 스와콥문트의 가톨릭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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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인가

빈트후크에 도착해 다른 인터케이프 버스로 바꿔 타고 오후 5시께 다시 출발할 때는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빈트후크는 사흘간 머물렀던 도시여서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데, 낯익은 건물과 도로들이 보인다. 이틀 동안 샅샅이 누비고 다녀 시내 어지간한 곳은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마지막 여행이어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행은 항상 처음 도착해서는 낯설다가, 지리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홀연히 떠나야 한다. 여행은 끊임없는 이동이고, 한 곳에 안주할 수는 없다. 안주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정착이다. 인간은 유목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정착했다. 유목민은 계절에 따라 지난해 왔던 곳을 다시 찾아오는 경우는 있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여행은 어찌 보면 유목생활로의 회귀이다.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여행에 목말라하는 것은 인간에 감춰진 이동본능 때문이다. 한번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그 ‘떠남의 쾌락’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여행은 사실 이동 금단현상에 따른 중독이다.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은 그 중독성에서 마약을 훨씬 능가한다. 여행은 술, 담배와 함께 사회적으로 공인된 마약이다. 그러나 술, 담배와 달리 여행은 개인적으로 삶의 의욕을 북돋우고,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하는 비타민이다.

여행에서는 매일 매일이 선택이고 결단이다. 어디를 가고 어디를 건너 뛸 것인가, 한 순간도 결정을 미룰 수가 없다. 여행객이 결정을 미루면, 시간이 여행객을 밀어낸다. 어차피 여행은 다소간의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다면, 육체적인 고통은 감수하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에서 육체적 고통을 통해 육체는 더욱 건강해진다.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10분간 머물기 위해 4박 5일간의 육체적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여행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과,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는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 <여행자>는 여행자에게는 등대이자 나침반이다. 여행의 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프로스트가 ‘숲속에 난 두 갈래 길에서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함으로써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한 것처럼 여행하는 사람은 힘들더라도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을 가게 되고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마차도가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어간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듯 여행자에게는 자신이 가는 길이 곧 여행지이다.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가 중요하지, 정해진 여행코스란 없는 법이다. 자기 분야에서 혁명가로 꼽히는 김산과 체 게바라, 김광석과 프레디 머큐리, 줄리어스 니에레레와 넬슨 만델라는 모두 자신이 개척한 새로운 길을 걸어갔지, 결코 남이 만든 길을 따라 가지 않았다.

버스는 또다시 어두운 밤을 쉬지 않고 달려간다. 여러 번 휴게소에서 정차한 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새벽 2시 30분 나미비아 국경 출입국사무소인 아리암스플라이(Ariamsvlei)에 도착했다. 빈트후크에서 달려온 버스는 그뤼나우(Grünau)에서 케이프타운 쪽이 아닌, 카라스버그 쪽으로 빠져 남아공 어핑톤으로 가는 국경으로 달려온 것이다. 차안에서 새우잠을 자던 승객들은 피곤한 눈을 비비고, 차에서 내려 출국신고서를 작성한다. 나미비아와 남아공 국경의 출입국 수속은 각각 20여분 만에 모든 승객의 절차가 끝날 정도로 신속하고 간단했다. 첨단 컴퓨터에 의한 수속을 하기 때문이다.

빈트후크 시내 인터케이프버스 정류장과 뒤쪽의 나미비아 대법원 건물
 빈트후크 시내 인터케이프버스 정류장과 뒤쪽의 나미비아 대법원 건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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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프리카, #웰비스 베이, #나미비아, #스왑콥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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