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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내린 시골 풍경 광양 옥룡 대매마을입니다. 지난 달 30일 봄비내린 시골풍경을 담아보았습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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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대로 할까?”

“하머(그럼)”

“아이고, 이제 안하지”

“자식들 키워 버려는 데 (일을)뭘 하려고 해”

“아이고, 그리 안 해”

“허기는 그런데”

“사는 인생이 죽어야 (일을)마는 거라”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제 갈길 찾아 집을 떠나고 이제는 늙은 내외만 남았습니다. 자식들 키우느라 늘 바쁘기만 했던 젊은 날들, 이제 자식들은 떠나 한가함만이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쁘기만 한 날들입니다.

 

감자씨앗을 심던 할머니는 ‘일을 무엇 하려 하느냐’고하십니다. 괜한 넋두리이지요. 평생을 하던 일이라 호미를 잡고 사는 게 더 마음 편한 합니다. 심다 남은 감자를 그냥 둘 수가 없어 자투리땅에 감자씨앗을 심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 일을 하여야 하는지 모릅니다. 일이 없는 그 순간이 곧 죽는 그 날이겠지요.

 

할머니는 호미 날로 감자를 반으로 자르고 있습니다. 매년 하는 일이라 무척 쉽게 감자를 자릅니다. 감자의 눈(새싹이 돋을 부위)을 기준으로 두 조각 네 조각으로 잘로 자릅니다. 하나의 감자는 두 쪽 네 쪽으로 잘려 흙속에서 더 많은 감자를 씨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식물을 키워내는 흙. 모성의 흙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아침부터 내린 봄비에 땅을 조금 촉촉합니다. 감자씨앗을 심기위해 호미로 이랑을 만드는데 흙속에서 개구리가 나옵니다. 경칩이 지난지도 20여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밖에서 활동하기에는 추운 모양인지 개구리는 몸을 움크리고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갑작스런 사건에 ‘껑충’ 점프를 하면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끔뻑끔뻑합니다.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며 겨울 내내 꼼짝 안하고 동면 탓이라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개구리의 잠을 방해한 것이 미안한지 이랑 밖 땅에다 다시 파묻어줍니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매화꽃을 시작으로 시골 들녘 어디를 가나 봄꽃 가득합니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어렸을 적 마냥 불렀던 노래가 오늘은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봄비를 머금은 청 보리는 더욱 푸르러 시골들녘을 푸른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까칠할 것 같은 뾰족한 보리수염은 손끝에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노란민들레 꽃 하얀 냉이 꽃을 찾아 이리 저리 날아가는 하얀 나비의 몸짓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일정하게 날아가는 꿀벌과는 다르게 이리 저리 갈지자로 나는 몸짓은 불안하기만 하지만 꽃술을 찾는 녀석의 몸놀림은 아주 안정적입니다.

 

시골집 마당 한편에는 찬란한 5월을 꿈꾸는 ‘모란’의 꽃봉오리가 맺혔습니다. 작년 봄에는 4월 중순쯤에 피어습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붉은 꽃은 원숙한 봄을 더 느끼게 합니다. 이제는 완연한 형체를 갖춘 여린 잎에는 봄비가 방울방울 되어 보석처럼 달려있습니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붉은 동백꽃도 봄비에 촉촉이 젖어 있습니다. 장미모양으로 생긴 동백을 아버지는 특이하다고 애지중지 키운 꽃입니다. 봄비에 세수한 꽃잎은 더욱 싱그럽게만 느껴집니다. 복숭아나무 줄기에는 엇박자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연분홍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봄비에 흠뻑 젖은 꽃송이가 더욱 싱그럽습니다.

 

마당 앞쪽에 심어놓은 장미나무 잎사귀에도 봄비는 영롱한 구슬을 만들어 조롱조롱 달아놓아 습니다. 여린 잎 새는 아직 붉은 빛을 띠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화분에 심어놓은 천리향은 코끝을 얼얼하게 만듭니다. 출입문 앞에 놓여있는 천리향은 문을 드나들 때 마다 풋풋한 향기로 발걸음을 멈추게 유혹을 합니다.

 

밭 한쪽에 심어놓은 매끈한 유채 잎에도 봄비는 영롱한 구슬이 되어 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물방울은 추락 할 것처럼 위태하게 보이지만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꿀벌은 언제 알았는지 유채꽃 마력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새로운 봄날은 또 이렇게 유채꽃 노랑꽃잎처럼 깊어 가고 있습니다.

 

봄비 머금어 더욱 푸르러진 청 보리밭 한쪽에는 벌써 연둣빛 뾰족한 가시를 내밀고 청 보리밭 사이로 멀리 보이는 시골집이 더욱 정겹게 다가옵니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봄비, #시골, #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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